작은 못 이야기
우리 집 옆에는 작은 못이 있습니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흘러온 물이 그 작은 못에 모였다가 못 둑 아래에 있는 다랑이 논배미가 마를 때쯤이면 조금씩 물을 흘려줍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논은 그 물을 먹고 자랐습니다. 젖살이 오른 우리 집 염소 새끼처럼 곡식을 토실토실하게 키워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논들이 물을 싫어합니다. 논 임자이신 할아버지, 할머님이 기운이 없어져 골짜기에 있는 논에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돌담이 내 키의 두 배는 되는 논들이 묵정이가 되었습니다. 대신 예쁜 들꽃이 피고 새들이 둥지를 틀고, 노루나 산토끼가 뛰어다니는 풀밭이 되어 나를 즐겁게 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물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에 작은 못에 고였던 물은 시나브로 물 배미를 타고 흘러 마을 옆에 있는 큰 못까지 물을 나누어 줄 뿐입니다. 그래도 작은 우리 못에는 붕어와 피라미, 새우 등이 사이좋게 살고 있습니다. 올챙이와 거머리, 소금쟁이와 방게가 집을 지어 살고 있습니다.
나는 그 작은 못이 참 좋습니다. 못 둑에서 버들가지를 꺾어 물장구를 치기도 하고, 돌팔매질을 하면서 놀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물을 마시러 오는 노루와, 너구리, 멧돼지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이 깊은 산속에 아빠가 집을 지어 이사했을 때에는 혼자 무섭고 외로워서 슬펐습니다. 하루 내 거친 바람소리만 나뭇가지를 흔들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마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 외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산이 무서웠고, 친구가 그리웠습니다. 집 옆을 흘러 못으로 들어가는 푸른 물 흐르는 소리가 무서워 울기도 했습니다. 우리 집은 염소를 산에 풀어 키우는 염소 집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늘 바쁩니다. 나는 나와 놀아주지 않는 엄마의 뒤를 쫄쫄 따라다니며 징징 짜기도 하면서 성가시게 하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나는 겨우 여섯 살짜리 꼬마 아가씨니까요. 그러다가 작은 못이 친구가 되었습니다. 엄마가 염소 떼의 꽁무니를 쫓아 산으로 오르고 나면 나는 못 둑에 나가서 예쁜 들꽃도 꺾고, 풀잎도 따면서 작은 못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작은 못은 우리 할아버지처럼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나는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못이 자꾸 좋아졌습니다. 나는 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물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물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못 가장자리에 가서 부딪히곤 했습니다. 나는 까르르 웃으며 물을 자꾸만 퍼 올렸습니다. 못의 물이 나보고 들어와 보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지난여름 날이었습니다. 나는 허벅지를 적시며 물속에 들어가 놀다가 엄마에게 들켰습니다. 엄마는 기겁을 하듯이 달려와 나를 달랑 들어 올리더니 사정없이 궁둥이를 후려쳤습니다.
“너 또 못에 들어갈래? 커다란 이무기가 입을 적 벌리고 네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줄 모르니? 한 입에 덥석 물고 들어가려고 벼르는데?”
그다음부터 엄마는 못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습니다. 선녀들에게 죄를 짓은 청년이 이무기가 되어 옥살이를 하기 때문에 못물이 저렇게 푸른 것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이무기는 나처럼 귀엽고 작은 아이를 좋아한다고도 했습니다. 혼자 못 속 가장 깊은 곳에 사는 것이 심심해서 아이를 끌고 들어가 못 바닥에서 같이 논다는 것입니다. 이무기를 따라 못 속으로 들어간 아이는 두 번 다시 사랑하는 엄마도, 아빠도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영원히 이무기랑 어둡고 깊은 물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못을 바라보니 진짜로 커다란 이무기가 꿈틀거리면서 나에게 손짓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언젠가 동물원에서 본 엄청나게 큰 비단구렁이가 내 몸뚱이를 칭칭 감고 나랑 같이 가자고 긴 혀를 날름거렸습니다. 어찌나 놀랐는지 비명을 지르다 깨어보니 이부자리가 흥건했습니다.
나는 절대로 그 작은 못 가까이 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그 작은 못을 쳐다보는 것도 무서워하는 줄 알자 빙그레 웃으며 안심하는 것 같았습니다.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산새가 짜더라 지저귀고, 뻐꾸기가 울고, 해님이 상그레 웃으며 내려다보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만든 나무 의자를 들어다 작은 못을 내려다볼 수 있는 햇살 좋은 곳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 의자에 앉아 못을 바라보았습니다. 커다란 소나무 그늘이 못을 반이나 가렸습니다. 소금쟁이가 원을 그리며 물장구를 치고 붕어가 팔딱 뛰어오르며 은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엄마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 꼭 껴안아 주며 물었습니다.
“너는 저 못이 무섭니?”
“엄마가 커다란 이무기가 산다고 했잖아.”
“그래, 엄마가 정말 신기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 줄게. 저 못은 물방울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선녀의 눈물이 고여서 생긴 못이란다. 이무기는 그 선녀의 눈물을 먹고 용이 될 날을 기다리는 중이란다. 천년이 지나면 이무기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거래.”
“엄마, 진짜 이무기가 저 속에 살아?
“그럼. 아주 잘 생긴 아저씨가 이무기가 되어 저 못 속에 산단다.”
“왜 이무기가 되었는데? 빨리 이야기해 줘.”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옛날 이곳은 참으로 골이 깊고 숲이 울창했던 깊은 산골이었단다. 하루 종일 기다려도 사람이 오지 않는 곳이었지. 곰과 호랑이가 살고, 노루와 여우, 다람쥐와 산새가 사는 아름답고 조용한 곳이었지. 저 못이 그때는 아주 깊고 더 커다란 소였단다. 골짜기에는 늘 물이 철철 넘치게 흐르고, 못 둑 대신 집채만 한 바위들이 우뚝우뚝 선 깊은 계곡이었단다. 저 못가에 있는 늙은 소나무들 있지? 저 소나무들 보다 더 우람한 소나무들이 빼곡히 들어 찬 바위산이었다는구나. 오늘처럼 화창한 봄날이었어. 커다란 바랑을 짊어진 젊은이가 한 명 이 산속을 찾아들었지. 아주 잘 생긴 젊은 이었다는구나. 그 젊은이는 이 못에서 세수를 하고 우리 집 뒷산 골짜기를 타고 올라갔단다. 저 높은 산봉우리가 보이지? 그 중간쯤에 가면 산길 옆에 허물어진 돌담과 숯을 구웠던 흔적이 남아있단다. 그 돌담이 바로 그 젊은이가 작은 오두막집을 지어 놓고 살았던 곳 이래. 전에 너랑 염소 찾아갔던 곳 기억나? 엄마가 돌배랑, 으름이랑 머루, 돌 복숭아를 따 주었던 곳 말이야. 네가 뱀을 보고 기겁을 했던 곳 알지? 그날 네가 얼마나 놀랐는지 밤에 경기를 해서 이 어미 애간장을 태웠었지. 하필이면 네가 앉으려던 돌 위에 그 징그러운 놈이 똬리를 틀고 있을 게 뭐였 담.
그 젊은이가 살던 오두막 옆 골짜기 건너편에 깎아지른 절벽이 있었단다. 그 절벽 아래 바위벽에 큰 굴이 있었대. 그 굴에서 젊은이는 도사가 되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구나. 젊은이는 그 굴속에서 도를 닦다가 쉬기 위해 잠깐씩 오두막에 나오곤 했대. 도사란 게 뭐냐고? 너도 알지? 옛날 옛적에 란 비디오에서 많이 봤잖아. 수리수리 마하수리 곰이 되어라 얏! 하면 사람이 곰이 되는 거.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도사란다. 한 곳에 앉아서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환히 아는 사람을 도사라고 해. 절에 계신 스님들이 공부를 많이 하면 도통한다고 하지? 그런 거야. 그 젊은이가 산속에 들어온 뒤에도 세월은 쉬지 않고 흘렀지. 봄이 가고, 여름, 가을 그리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고. 그 젊은이는 혼자서 풀뿌리 같은 약초를 캐어 말리기도 하고, 나무도 해다가 숯을 구워서 불을 피우기도 했어. 먹는 거라고는 생식이었지 생식이란 열매나, 칡뿌리, 솔잎 등을 날 것으로 먹는 것을 말하는 거야. 그리곤 열심히 책을 읽고, 깊은 사색을 했단다.
그 젊은이가 이 산속에 들어와 공부를 한지 한 3년쯤 된 어느 가을날이었대. 서늘한 바람이 연일 나뭇가지를 흔들고, 나뭇잎들이 울긋불긋하게 단풍이 들어 바람에 휘날리고, 저 작은 못 옆에 갈대와 억새꽃이 하얗게 피어 아름다웠지. 들국화, 구절초, 쑥부쟁이 같은 가을 들꽃이 저 못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서 일렁거리면서 사람을 유혹하는 날 밤이었다는구나.
그 젊은이는 공부를 하다가 달빛이 굴 속 깊이까지 비쳐 들자 이상하게 마음이 설레면서 밖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났단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얼굴이 불그레하게 달아오르면서 자꾸만 달빛이 보고 싶더래. 누가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도 올 사람도 없는 데 누군가가 몹시 그립고, 기다려지는 거야. 젊은이는 참을 수 없어서 굴 밖으로 나왔지. 대낮 같이 환한 보름달이 나뭇가지 사이로 싱그레 웃었어. 젊은이는 계곡의 너럭바위에 앉아 하염없이 산 아래를 바라보았지. 달빛 때문인지 모르지만 잊고 지냈던 고향에 계신 늙은 부모님이 생각나자 자신이 무척 불효자 같아서 마음이 아파오는 거야. 우리 공주님처럼 마음씨 착하고 예쁜 색시에게 장가들어 손자를 안겨 주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 그래서 젊은이는 마음이 많이 슬펐단다.
그때였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