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이야기 2

by 박래여

군불을 때어주고, 끼니와 옷가지 등을 챙겨주는 토골 댁을 이르는 말이다. 그녀는 먼 친척 동생뻘이 되는 여인이었다. 아들은 하숙비 명목으로 그 여인에게 매달 돈을 보내준다고 했다. 토골 댁은 무뚝뚝하기는 했지만 솜씨가 좋아서 밥상을 깔끔하게 챙겨주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요즘엔 심드렁한 것이 뭔가 자기에게 서운한 것 같고, 뭔가 숨기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 낮에 한 마디 한 것 때문에 그런가? 별 말도 아니었다.

“당장 석구랑 구봉이 오라 캐서 선산에 띠풀 뽑아내도록 해라. 뭐 하는 짓들인지 모르겠다.”

석구와 구봉이 역시 같은 성씨를 가진 친족이기는 하지만 예전에 그의 집 머슴살이를 한 사람들이었다. 그의 선산을 돌봐오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지금 마을의 유지들이었다. 석구는 이장이었고, 봉구는 농촌 개발 위원인가 뭔가를 한다고 했다. 그들은 자식들이 다 잘 되어 있어서 살림살이도 넉넉했고 이웃 간에 덕을 쌓고 살아서 인지 그 마을에서만이 아니라 면 소재지에서도 어른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하대를 했다. 그들은 그에게 깍듯이 대했다. 그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점심상을 차리던 토골 댁은

“오빠가 온제부터 선산 챙겼다고 그랍니꺼? 오빠 없을 때도 여 있는 친척들이 다 알아서 벌초하고, 떼잔디 입히고, 성묘 다 했습니더. 사람이 너무 그라모 안 됩니더. 고향에 와 살모 소싯적 기억 안 나고로 해야지 예 오빠가 머 잘한 기 있다꼬 넘 하술리 봅니꺼. 그라지 마이소. 우리 동네는 아직도 돈 보다 앞서는 기 친 인척 간의 정이고, 이웃 간의 정인기라 예. 요새 세상에 누가 하인 노릇 할라 쿨낍니꺼. 해라가 뉘 집 강아지 이름입니꺼. 나도 인자 오빠 괴팍스런 성질 못 받아 주것십니더. 차라리 공장에 댕기는 기 낫제. 동네 사람들이 머라쿠는지 알기나 합니꺼? 제 버릇 개 준다 샀십니더. 순사 똥은 개도 안 묵는다디 예. 오빠가 그 말을 잊었을 리 없지 예. 고향에 돌아왔시모 고향 사람이 돼야지 예. 우째서 아직도 호령입니꺼. 아무도 그 호령받아줄 사람 없십니더. 젊은 사람들 손가락질해 예. 오빠 겉은 사람 땜에 나라가 이 모양이 된 기라꼬. 그라고 그 잘난 아드님은 우째서 코빼기도 안 뵈는지 알기나 합니꺼?”

“우리 아가 농사꾼이가? 할 일이 태산 같을 낀데. 못 오는 기 당연 하제.”

“하이고, 팔자 늘어진 소리만 하요. 모르모 가만히 있기나 하이소.”

속이 깊고 말을 함부로 하지 않던 토골 댁이 팽 토라져서 나가며 던진 말이다. 그는 날카로운 가시 하나가 심장에 와 박히는 것 같았다. 아들한테서 무슨 기별을 받은 것은 아닐까. 그는 나중에 토골 댁이 오면 상세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토골 댁도, 마을 사람들도 갈수록 푸대접을 하는 것 같아서 속이 시렸다. 이유가 무엇일까. 자식이 자주 오고 가지 않는 것 때문인가. 모두들 제 살기 바쁜데 자주 찾아오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개는 축담에 올라와 까치의 깃을 뜯어내고 있었다.

“너도 배가 고픈 모양이구나. 오늘따라 임자가 그립구려. 명이나 길게 태어나지.”

그는 개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외로웠다. 고향에 오면 그 외로움이 사라질 줄 알았다. 젊어서 도박이다, 여자다. 해서 속을 끓이게 한 덕인지 아내는 환갑을 겨우 넘기고 죽어버렸다. 아내가 죽고 나서야 그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깨닫기는 했다. 며느리의 눈치가 시작된 것도 아내가 죽고 나서부터가 아닐까 싶었다. 늘 독선적이고 목소리와 고집이 세었던 그는 며느리와 사사건건 부딪혔다. 대학물을 먹은 며느리는 변호사 부인답게 허영과 사치라면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손자들도 그를 등외 시 했다.

“아버지도 이젠 연세 생각해서 좀 젊잖아지세요. 일제 강점기 때 순경 했다는 것이 무슨 큰 자랑거리라고 그러세요? 남들 알까 무섭다고요. 그 시절에 순경한 사람 치고 모질고 독하다는 소리 안 들은 사람 어디 있으며, 사람들의 원성을 얼마나 샀어요. 제발 자랑할 거리가 아니니 자중하셔요.”

아들의 그 말은 그의 가슴에 푸른 멍을 남겼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이 순경 질을 한 것을 부끄럽다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순경을 했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 시절이나, 육이오 동란 같은 격동의 시절을 잘 빠져나올 수 있었고, 떵떵거리고 살만한 재산을 모울 수 있었고, 자식을 대학 공부까지 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남에게 못할 짓도 많이 한 것은 사실이라 해도 그것은 엄연히 공무수행이었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던 처사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들과 손자들, 나아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사람이 살아가는 여러 가지 길 중에 한 길을 택해 걸어왔을 뿐이다.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었다.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기 마련인 것처럼 그가 택한 길은 자기의 안위와 가족이 우선이었을 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도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그 많은 재산과 집을 몰수당하다시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고향을 떠날 때는 고향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이 더 컸었다. 무언의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고향을 떴지만 두고두고 후회를 했다.

지금보다 더 젊어서는 사실 고향에 돌아올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정년퇴직을 하고도 낚시다, 골프다, 산행이다 해서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과 어울려 세상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아내가 죽고,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 문밖출입이 조금씩 불편해지자 친구들도 그를 외면했고, 아들과 며느리도 뒷방 노인네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제야 고향을 생각했다. 새삼스럽게 고향의 품이 그리웠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거울 속에 또 하나의 자기가 마주 보듯이 마주 볼 수 있는 고향이 그에겐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늙은 노인네가 되어 고향에 돌아와 보니 기억 속에 지워졌다고 생각한 망령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자기를 아는 사람들은 여전히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그런데 왜 그 사람들과 자기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금이 그어져 있다고 느껴지는 것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이곳의 토박이 이웃들 속에 그는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겉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겉으로는 웃으면서 인사하지만 마음까지 그를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다는 사실을 그는 견디기 힘들었다. 마을길을 포장하라고 목돈을 내놓기도 했고, 경로당 운영비도 지불했다. 어쩌면 자기가 더 순진했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탈이 아니었을까. 자기만 한 배경을 가지고 고향에 나타나면 고향 사람들이 다들 우러러보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며 어른 대우는 톡톡히 해 주리라 여겼다. 잘하면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포부를 가진 아들의 표밭도 다질 수 있다는 계산도 물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늘 짓누르는 검은 구름 덩이 같은 그것을 깨끗이 지우는 일이 그에겐 필요했다. 고향 사람들은 다 잊은 옛일을 자기만 가슴속에 넣어두고 애를 끓이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그가 누구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고향은 옛 고향이면서 옛 고향이 아니었고, 사람도 옛사람이면서 옛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변한 것처럼 고향도, 사람도 변해 있었다. 다만 잊지 않은 것이 있었다. 기억, 그에 대한 기억을 사람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바다를 떠다니던 큰 배에 구멍 하나가 나서 그 배를 가라앉히듯 기억은 세월에 묻혀 앙금 덩어리가 되어 가라앉아 있었다. 다만 그의 아집이 그것을 보는 것을 거부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정년퇴직을 한 경찰관의 직관으로 꿰뚫어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 앙금 덩어리가 조금씩 풀리면서 새로운 말거리가 되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그가 고향에 돌아오고부터라는 것을. 자기 말 한마디면 벌벌 떠는 시늉까지 하던 인물도 이젠 그가 죽기 위해서 고향에 의탁하러 온 불쌍한 노인네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우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전의 그 어수룩하고 순종적이던 고향 사람들이 아니었다. 현실에 발맞추어 자기 잇속 챙기려 드는 실속파로 편한 것 같았다. 겉으론 어수룩해 보이지만 그것은 오랜 세월을 권력에 휘둘리면서 살아온 처세술에 불과했다. 권력에 아부하는 근성, 한 사람이 밀면 너도나도 무조건 미는 단순함은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힘 있는 쪽으로 기울어야 살아남는다는 단순한 생존의 법칙이 그를 냉대할 수 없게 만드는지 모르지만 고향사람들의 배타성은 의외로 깊고 질겼다. 고향에도 노인의 외로움을 달래줄 아무것도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더 깊은 외로움에 헐떡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는 우리가 어째서 그리 어리석었는지. 대부분 당하기만 하고 살았지.”

“이리 좋은 시상 만낼 줄 알았으면 한 밑천 단단히 잡아 놓을 낀데.”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거야 누구나 아는 이치 아니던가?”

“어르신은 참 현명하십니더. 다음 선거에는 우리 마을에도 국회의원이 나오지 않겠습니꺼? 아드님이 국회로 가신다고요? 참 부럽습니더.”

“평생 땅만 파고 산 우리야 어르신네 발뒤꿈치나 따라가겠습니꺼.”

“참 선견지명을 가지신 분이라 예.”

“돈 많이 벌어 좋은 일도 하시니 올매나 좋습니꺼.”

고향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이 내뱉는 말속에 든 의미를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자기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줄 착각했다. ‘앞을 내다볼 안목이 없었으니 너희들은 평생 농사꾼 못 면하지.’하면서 그는 너그럽게 웃어줄 여유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자신이 소외당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야만 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따질 필요도 없었다. 그는 고향에서 이미 타인이었다.

“좀 더 일찍 돌아와야 했는데. 늙고 병들어서 내가 뭐하려 고향이라고 기어들었는고. 그래도 오고 싶었는걸. 도꾸야, 너는 내 속 알제? 나도 사람 인기라.”

그는 한숨을 푸욱 쉬었다. 언덕배기에 앉아 욕설을 하던 조금 전의 고집 센 노인네의 모습은 간 곳 없고, 외로움에 찌든 초라한 노인네가 마루에 앉아 중얼거리고 있었다.

집 앞의 늙은 은행나무 가지에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앉더니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축담 쪽을 향해 날개를 퍼덕거리며 깍깍거렸다.

“허참, 까치는 금실이 좋다더니 아마 짝이었던가 베.”

노인은 축담 기둥 옆에서 까치의 날갯죽지를 물어뜯고 있는 개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개는 이제 까치의 몸통을 뜯어 발기고 있었다. 사방으로 날리는 깃털 사이로 개는 속살이 드러난 까치를 앞다리 두 개로 머리와 꼬리 부분을 꽉 누르고 배 부분을 잘근잘근 씹었다. 불그스름한 핏방울이 축담에 뚝 떨어졌다.

나뭇가지의 까치는 여전히 새된 소리로 울부짖었다.

“훠이, 저리 가거라. 니 짝은 이미 날 샜다. 니가 기운이 있어 저 놈의 개를 이기겠느냐? 이기면 또 뭐 하노? 이미 죽어 삔 걸. 니 아무리 짖어도 소용없다. 도꾸야, 니는 거기 맛있냐? 아암 고소할 끼라. 고소하고말고. 쇠괴기 육회가 올매나 맛있다고. 맛본 사람은 알제. 이 놈아 니도 탈 났다. 눈먼 까치가 어디 또 있겠느냐. 어쩌다 니가 운이 좋아서 그놈을 덮친 거지. 지 짝 찾아와 우는 저 까치가 참 불쌍하구나.”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지나간 것은 아무리 후회할 일이라도 그리운 법일까. 그리웠다. 어린 시절, 소년 시절, 순사 시절, 다시 순경이 되어 뛰어다니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면 새롭게 살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더 새록새록 그리워지는 것이 아닐까. 아픈 기억이든, 기쁜 기억이든, 슬픈 기억이든 오늘따라 유난히 더 그립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였다면 마을 사람들은 이해해 줄까? 아니 지금이라도 그 일을 뉘우친다고 하면 종중 사람들이 이해해 줄까.

그는 육이오 동란이 끝나고 자신이 고향을 떠나던 날을 생각했다. 파출소 직원들과 면서기들이 나와 손을 흔드는 가운데 그는 한껏 가슴을 펴고 차에 올랐다. 그러나 패잔병이 되어 쫓겨 가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승진을 해서 시경으로 옮겨가는데도 그를 환송하는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같은 성을 가진 씨족들조차 내다보지 않았다. 아니 내다보긴 했다. 돌담 너머로, 울타리 너머로 숙덕공론을 하면서 많은 눈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그 눈들이 두려웠다. 한 마디로 그는 씨족 단위의 마을에서 추방당하는 길이었다.

“김 순사가 이번에 빨갱이 잡은 덕으로 2계급 특진해서 시경으로 간다며?”

“참 용하구마. 따지고 보면 가까운 형님뻘인데.”

“아무리 그래도 제 살붙이 일가족을 몰살할 수는 없는 기라. 인두겁을 쓴 짐승이 상을 받는 세상이니 참으로 복장을 칠 일이야. 아무리 출세도 좋지만 인륜이 무너진대서야 사람이라 할 수 없제..”

“출세를 위해서는 제 살도 베어낼 위인이라더마.”

“죽은 사람만 불쌍하제.”

“그 말이 참말이가? 김순경 아들이 빨갱이한테 맞아 죽었다며?”

“틀린 말은 아니 거마. 우리 마을에 인민군이 쳐 들어왔을 때 급히 피난 감서 죽은 그 사람 집에 놀려간 아이를 못 데리고 간 기 화근이제. 친척 형님이라꼬 믿은 기라. 댓살인가 묵은 아를 인민군이 족친담서 빰따구 하나 때린 긴데 뒤로 넘어져서 그 길로 가삔 기라.”

“한이 맺힐 만도 하네. 금쪽같은 자식이 죽었으니 한을 품을 수밖에. 아무리 그래도 저거 형님 잘못도 아닌데 그리 모진 짓을 해서는 안 되는 기라. 사람이라모.”

그때 그는 마을 어디를 가나 뒤통수에 쏟아지던 눈총과 험담을 더 이상 참아낼 수가 없어 전보를 신청했었다. 성질 같아서는 모두 빨갱이로 몰아붙여 치도곤을 치고 싶었지만 따지고 보면 멀고 가까운 아재나 아지매 아닌가. 그들 험담이 사실이기도 했기에 마을 사람들을 잡아다가 족칠 수도 없었다. 세상이 바뀌었으니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치였다.

“어, 춥다. 와 이리 한기가 드는가.”

따뜻하고 편안한 구들장이 그리웠다. 그는 구두를 벗어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저녁나절에 참깨 씨앗을 심으려 밭에 나갔던 토골 댁이 늦은 저녁을 지어서 그 집 대문을 들어섰을 때는 마을에 가로등이 환히 빛나고 있었다. 토골 댁은 마음이 급했다. 낮에 한 바탕 퍼붓고 나간 것이 여간 켕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밭두둑에 깨 씨를 넣다 보니 어두워지고 말았다. 아침에 군불이야 장작 몇 조각을 넣어두었으니 방은 차지 않겠지만 그 괴팍스러운 노인네가 또 무슨 불호령을 내릴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도 다 늙어서 이기 무슨 생고생인지 모르것네. 내 밥 한 숟가락 끓이기도 귀찮은데. 노인네 등살에 흰머리만 더 느니. 에고 내 팔자야. 고대광실 좋은 집에 잘난 자슥 뒀다지만 무슨 소용이 있노. 내만 생고생이니 이 무슨 해괴한 짓인지 모르것다. 그래, 돈이 많으모 뭐하고, 자슥 출세했시모 뭐하것노. 찬밥 신세 못 면하는데. 자슥 교육이나 제대로 시키제. 우리 오라비 보모 내사마 하나도 안 부럽다. 늠한테 욕 안 얻어 묵고, 내 속 편한 기 제일이제.”

토골 댁이 구시렁거리면서 들어선 집안은 죽은 듯이 조용했다. ‘불이나 키고 계시든가.’ 토골 댁은 마루에다가 음식을 담아온 광주리를 내려놓고, 기둥에 있는 전기 스위치를 올렸다. 축담에는 구두가 얌전하게 놓여있었다. 점심때 채려 둔 상을 가져다 비우고, 다시 상을 보았다. 그래도 불빛이 없는 방 안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오빠 일어 나이소!”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잠이 들었는가 베. 요새는 경로당에도 통 안 나가시는 눈치더마. 어디 편찮으신가?”

“도꾸야! 이놈의 개가 또 발정이 났나? 오데로 싸돌아 댕기는지 코빼기도 볼 수 없네.”

토골 댁은 축담에 웅크리고 있어야 할 개가 보이지 않자 일부러 큰 소리로 방안의 노인네가 듣게끔 큰 소리를 냈지만 개도 사람도 기척이 없었다. 그녀는 마루에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발 구린내 같은 퀴퀴한 냄새가 확 풍겨져 나왔다.

“오빠 저녁 자시로 일어나라니까 예.”

토골 댁은 노인을 재촉하면서 벽을 더듬어 전기 스위치를 올렸다. 형광등이 환하게 켜진 방에는 노인은 자는 듯이 누워 있었다. 이불을 턱밑까지 얌전하게 덮고, 지극히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토골 댁은 문턱에 배를 걸치고 엎드려서 노인의 어깨를 흔들었다.

“오빠? 초저녁 잠을 그리 깊이 자모 새복녁에는 우찌 새울라꼬 이랍니꺼? 일어나이소.”

노인의 머리가 베개 아래로 툭 떨어졌다.

“아이고 마, 우짜꼬”

토골 댁은 허겁지겁 이장 집으로 달렸다.

노인의 상여가 마을을 떠나는 날이었다. 초라한 상여 하나가 마을 사람들의 어깨에 메어 언덕길을 올라갔다. 만장도 없었고, 북망 가를 읊조리는 상두꾼도 없었고, 곡소리도 없었다. 뒤 따르는 상주는 보이지 않고, 머리에 삼베 두건만 쓴 마을 친척들 몇이 상여 뒤를 따랐다.

노인의 상여가 언덕배기 있는 곳에 이르자 어디선가 절름발이 개가 나타나 상여 앞에 길라잡이처럼 절뚝거리며 천천히 걸어갔다. 아무도 그 개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길가에 서서 상여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그 영감 죽을 복은 타고 났는가베. 그래도 고향땅에 와서 묻히기라도 하니.”

“상주가 와 없노?”

“이민인가 가 버리고 없단다. 연락처도 안 냉기고 간 모양이야. 토골 띠한테 저 영감 잘 부탁한담서 목돈을 제법 보냈는 갑더라. 자리 잡히모 연락한다 했다더마 몇 달이 지나도록 소식 한 장 없는 모양이야. 괴팍시런 영감탱이 내삐고 간기라. 하는 수 없이 토꼴 띠가 저거 아들 불러서 초상 치루는 거라더마.”

“그래, 돈 많으모 머하고, 자슥 출세했시모 머하노. 임종 지키 줄 자슥 하나 없는 걸. 객사 주검 매한가지지. 소싯적 겉으모 덕석말이 당해도 쌀 위인이 저리라도 선산에 묻히니 복은 타고 난 사람이제.”

“토꼴 띠가 피붙이 노릇하네. 그래도 친척이라꼬.”

“복 짓는 일이제.”

맑고 투명한 초봄의 햇살은 나뭇가지에 걸려 반짝거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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