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였어.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지더니 하늘에서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리는 거야. 감미롭고, 포근하고, 아늑한 음악이었어. 젊은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 음악소리에 끌려 산길을 내려오기 시작했어. 한참을 내려오다가 그 음악소리가 뚝 그치면서 사방이 대낮처럼 환하게 빛나는 거였어. 젊은이는 너무도 찬란한 그 빛에 우뚝 섰지.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 문이 열리고 있었어. 마치 구름 속에 숨었던 해님이 구름을 거두고 나오는 것처럼 그 문에서 오색 무지개다리가 세워져 내려오는 거야. 그 무지개다리가 뿌리를 박는 곳이 어딘가 싶어 가만히 바라보았지. 바로 저 작은 못 가운데였대. 더 놀라운 것은 그 무지개다리를 타고 일곱 색깔의 날개옷을 걸친 선녀 일곱 명이 내려오는 거야. 선녀들은 저희들끼리 아주 즐거운 듯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내려오더니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못 옆에 우람한 바위 위에서 날개옷을 벗어 바위 옆에 늘어진 늙은 소나무 가지에 걸치더니 저 못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 거야. 이상한 것은 가을이었기 때문에 밤 날씨가 제법 추웠는데도 저 못의 물이 불을 피워 데운 것처럼 김이 무럭무럭 나더란다. 은은한 빛 속에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날개옷이 푸른 소나무 가지에서 나비처럼 펄럭이는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어. 젊은이는 넋을 놓고 있다가 살그머니 못가의 바위 뒤로 가서 숨어서 선녀들을 훔쳐보았지.
젊은이는 문득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생각났지. 저 날개옷 한 벌만 훔치면 예쁜 선녀랑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 너도 알잖아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는. 젊은이는 살그머니 다가가 보라색 날개옷을 훔쳐 자신의 오두막에다 숨겨 놓았단다. 선녀들은 그것도 모르고 저희들끼리 물장구를 치면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었어. 젊은이는 가슴이 두근거려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지. 다시 선녀들이 있는 저 못가에 가서 숨어서 구경을 했지. 날개옷이 없어진 선녀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었으니까.
밤은 자꾸만 깊어가고, 하늘 가운데 떠 있던 달이 서쪽으로 기울면서 산 그림자가 길게 물에 잠겼지. 그때 하늘에서 다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선녀들을 부르는 소리였어.
“얘들아 돌아갈 시간이야.”
한 선녀가 은방울 굴리는 소리로 말했단다. 그러자 다른 선녀들이 섭섭해하면서 물가의 바위 위로 나오는 거였어.
“좀 더 있었으면 좋겠어. 3년에 한 번만 그것도 팔월 한가윗날 밤에만 이 아름다운 인간 세상에 온다는 것이 슬퍼.”
한 선녀가 말했지. 젊은이는 그제야 깨달았단다. 그날이 추석 날 밤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선녀들이 이번에 하늘로 올라가면 3년을 기다렸다가 다가오는 추석 날 밤에 보름달이 떠오르며 하늘나라에서 내려오게 된다는 것을 알았단다. 젊은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 보라색 날개옷의 선녀만 남으면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색시 삼아야지 하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아이도 세 명쯤 낳아서 고향에 돌아가 행복하게 살아야지 하고 생각했단다.
“어머, 내 날개옷! 날개옷이 없어. 어떡하지?”
“무슨 소리니 보라야? 잘 찾아봐. 하늘 문이 닫히기 전에 올라가야 해 안 그러면 우리 모두 큰 일 나. 우린 두 번 다시 인간 세상에 내려올 수 없을 거야.”
“맞아. 그 옛날에 날개옷을 인간 세상에서 잃어버린 선녀 때문에 우리에게 내린 벌이 있잖아. 보름날 밤마다 인간 세상에 내려왔었는데 날개옷을 잃어버린 그 선녀 때문에 3년에 한 번밖에 내려올 수 없게 됐잖아. 어쩌면 좋아. 큰일 났네. 이곳 가까이에는 인간이 오지 않는 곳인데. 그리고 이 선녀 탕은 숨어 있어서 아무도 모르는 곳인데.”
선녀들은 서로 난처해하며 사방을 찾아 헤맸단다. 하늘 문이 조금씩 닫히면서 빛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지. 아름다운 음악소리도 조금씩 작아지면서 무지개다리가 어둠 속에 묻혀 가고 있었어. 날개옷을 입은 선녀들은 무지개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며 옥황상제님께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애걸을 하고 있었지.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는 너무도 슬프게 울었어.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니 젊은이조차 서러워져 흐느끼게 되는 거야. 그 순간 젊은이는 울고 있는 가장 어린 그 선녀가 너무도 아름다워서 그만 깊은 사랑에 빠져 버렸단다. 사랑하는 선녀가 우는 것을 보니 더 서럽고 슬픈 거야. 날개옷을 당장 가져다주고 잘못했다고 빌고 싶었어.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니 함께 살자는 말을 하고 싶었지.
그때 하늘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날개옷을 찾을 때까지 너희들은 물방울이 되어 그 탕에 잠겨 있어라. 젊은이여 어서 날개옷을 돌려주어라.”
깜짝 놀란 젊은이가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는 이미 무지개 문은 반이나 닫혀가는 중이었고, 일곱 선녀들은 그 빛에 반사되어 순식간에 일곱 개의 영롱한 물방울이 되어 저 못 위를 떠다니고 있었어. 그제야 젊은이는 너무나 놀라고 당황하여 집으로 달려가 숨겨 두었던 날개옷을 가지고 와 물방울에게 던졌지. 보라색 물방울이 날개옷을 걸치자 다른 선녀들도 본래의 선녀 모습으로 돌아와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못의 물이 파랗게 변해갔지. 더 이상 김이 무럭무럭 나는 따뜻한 물이 아니었어. 얼음처럼 차갑고 푸른빛으로 변한 거야.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가 흘린 눈 물빛이라서 그렇다는구나.
하늘을 날아오르던 빨간 날개옷의 선녀는 그 젊은이에게 벌을 주기로 했어.
“너는 우리 선녀들을 훔쳐본 죄와 날개옷을 훔친 죄를 졌고, 이 선녀 탕에 더 이상 내려올 수 없게 만들었으니 그 벌을 받아야 마땅하리라. 너는 앞으로 이 물을 지키는 이무기가 되어 천년을 이 못에서 살게 될 것이다.”
젊은이는 보라 선녀를 바라보며 애끓는 목소리로 말했단다.
“보라 선녀! 사랑하오. 사랑하오.”
보라 선녀는 슬픈 얼굴로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공자님! 천년 후에 만나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젊은이의 몸은 징그러운 뱀으로 변했단다. 일곱 색깔의 띠를 두른 이무기가 되어 저 못 속으로 들어갔단다. 그때부터 이무기가 된 젊은이는 저 못 속에 살면서 이 산을 지키는 지킴이가 되었다는구나.
그 후로 저 못에는 팔월 한가위 보름달이 떠도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지 않았단다. 또한 그 이후부터 어찌 된 셈인지 그렇게 험준하고 숲이 꽉 차고, 계곡이 깊었던 산이 낮아지면서 계곡을 메우고 그 많던 물줄기도 줄어들어 지금처럼 저렇게 작은 골짜기로 변했다는구나. 선녀 탕은 흔적만 남아 있었단다. 그 후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내고 저 아래까지 논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면서 선녀 탕을 막아 못 둑을 두둑하게 만들어 못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구나. 못을 만들 때 집채만 한 바위들도 쪼개졌을 거야.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다 보니 저 못 옆을 지나 재를 넘는 길도 만들어졌던 거야.
“그리고 아빠처럼 산을 개간해서 집을 짓기도 하고…….”
“그래. 그래서 우리가 들어와 살게 되었지.”
“엄마, 그러면 저 이무기 아저씨는 언제까지 있어야 되는 거야?”
“아직 멀었단다. 우리 공주님이 엄마 나이쯤 되어 엄마처럼 또 저 작은 못 이야기를 너의 딸에게 해 줄 때쯤 되어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난 날 밤에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보라색 날개옷을 입은 선녀가 저 못에 내려와 이무기를 쓰다듬는 꿈이었습니다. 이무기는 금세 아빠처럼 잘 생긴 젊은이로 변해 선녀와 함께 물 위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나는 그 젊은이가 날개옷을 훔치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훌륭한 도사가 되었을 텐데 싶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나는 엄마 손을 잡고 못 둑에 나가 보았습니다. 물은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푸르렀습니다. 선녀들이 흘린 눈물방울이 물 위에 넓게 퍼져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직도 물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이무기 아저씨를 위해 기도 했습니다.
<이무기 아저씨 빨리 천년이 지나 용이 되어 하늘에 올라가셔요. 그래서 사랑하는 보라 선녀님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무기 아저씨 그때까지 우리 집이랑 엄마, 아빠, 우리 염소랑 잘 지켜 주셔요. 이무기 아저씨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