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물 1

by 박래여

<단편소설>

벌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장마철이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웅크리고 앉아 간간히 천둥 번개를 몰고 와 내리치는 그런 밤이다. 멀리 마을은 쥐 죽은 듯 고요하고, 주홍빛으로 타는 가로등만 희미하게 빛난다. 뿌연 주홍빛은 초근목피를 바짝 태울만큼 심한 가뭄에 나타나는 달문처럼 음산하게 풀어졌다. 쥐새끼 한 마리 얼씬도 하지 않는다. 한바탕 천둥 번개가 치고 나면 사방이 너무도 괴괴하다. 나뭇잎 하나, 풀벌레 한 마리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포호 하는 들짐승 울음 같은 물소리에 갇혀 있다. 집 옆을 돌아 흐르는 작은 골짜기의 벌물이다. 그 소리는 산천초목을 집어삼킬 듯이 거세고 줄기찼다. 평소에는 산짐승이 목을 축이고 갈 정도의 골짝 물이지만 장마철에는 벌물이 무서운 기세로 쏟아져 내리는 골짜기다.

여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왠지 기분이 안 좋아.”

여자는 창밖을 바라보고 서서 중얼거렸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기침을 콜록거리던 남자가 희미하게 웃으며 일어나 벽에 기대어 앉았다.

“두억시니라도 나올 것 같나?”

“끔찍한 소리 말우. 안 그래도 불안해 죽을 지경인데.”

“천둥 번개를 무서워하는 걸 보니 죄를 많이 지은 모양이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잠이나 자소.”

여자는 속곳만 걸친 채 얇은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희미하게 타고 있던 촛불이 여자의 형상을 거대하게 만들어 벽에 세웠다.

“잠이 안 와.”

“그래도 자려고 해 보소. 하늘이 빵구가 났는지 에이 지겨워. 이놈의 비는 어찌나 청승맞은지. 이젠 지겹다 못해 넌더리가 난다니까. 내일 비 그치면 이장 띠가 고치 따 달라했는데. 오늘 밤에 게릴라 식 집중 호우가 남부 지방을 강타한다니. 우리 집도 휩쓸고 가면 어쩌나.”

“수장되는 거지 뭐. 고치 따주러 가지 마라. 몇 푼이나 준다고 그 짓을 해?”

“참 당신도 얄궂소. 품팔이라도 해야 당신 약이라도 사지. 수중에 있던 돈도 바닥났는데.”

“내가 몸만 성하모 예전 솜씨를 발휘해 볼 낀데.”

“참 딱도 하우. 맨날 이십 댄 줄 알우? 그 몸으로 무슨 짓을 한다고. 내가 끓이는 밥이나 받아먹고사는 주제에. 맨날 날고 기던 그 솜씨 자랑에 인자 신물이 나 죽것소. 맨 정신으로 정신 똑바로 박고 살아도 사니 못 사니 하는 판에 아직도 썩어빠진 정신 상태니 몸이 그 모양이지. 그나저나 어째서 당신 기침은 낫지를 않우? 벌써 몇 달짼데?”

“자꾸 식은땀이 나는 게 아무래도 무슨 큰 병이지 싶거마.”

“재수 없는 소리만 골라서 하요.”

“아니야. 몸이 부실항깨 그런가. 꿈자리가 사나워.”

“몸이 부실하긴 내가 보기엔 아직도 젊은 여편네 끼고 사나흘은 뒹굴어도 까딱없겠소.”

여자의 눈이 앙칼스럽게 남자를 째려봤다. 남자는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볼을 비비다가 고개를 숙여 방바닥에 기는 개미를 잡아 뒤집기를 했다.

“개미가 오늘따라 기승이네. 아무래도 큰 탈이 날 조짐이야. 산사태가 나서 집을 덮치면 어째? 재실이 낡아서 폭삭 내려앉을지도 모르고.”

“끔찍한 소리만 골라서 하요. 아직도 당신은 나갈 생각만 하지요? 빌어먹을 도시가 뭐가 좋다고. 실업자가 수천 명이라는데. 당신이 그랬잖우. 여기가 엄마 품같이 포근하다고 했던 말 벌써 잊었어요? 당신 속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소. 또 내게서 도망갈 생각이라면 어림없소. 한 번 속지 두 번은 안 속아요. 그때는 내가 어수룩해서 속았지만. 의지가지없는 우리 아니우.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올매나 따뜻하게 맞아 주었소? 비록 재실 지켜주는 고지기일망정 공짜 아니우. 아무 생각 말고 닭이나 열심히 칩시다. 봄에 넣은 닭이 벌써 알을 까기 시작했잖우. 메추리 알만한 그것들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내일부터는 당신이 알 꺼내는 당번 하시구랴. 방에만 처박혀 있으니 더 골골하지. 동네에 내려 가보던가. 우리 집 알이 천세가 나요. 유정란에다 토종 알은 값이 좀 비싸도 서로 묵겠다고 난리요. 동네 사람들이 벌써 우리 집 알 맛에 반했다우. 어수룩한 시골 사람들 입맛도 예전 하고는 다릅디다. 신토불이가 젤이라고 안 하요. 우리 형편에 이만한 터전을 잡은 것도 대복이지. 전세금 낼 걱정 없것당, 땅 넓어서 손만 바지런 하모 먹고 살 걱정 없것당. 이장님이 내년에는 소작논도 좀 얻어준다니까 다행 아니우? 돈이 좀 모이면 아이들도 데려오고. 그러면 우리도 훌륭한 가족이 될 거요.”

“참말이가? 참말로 내 새끼들 데리고 올 끼가?”

“그럼요. 우리 아이들 아니우? 언제까지 고아원에 두려고요?”

“고마우이. 참말로 고마우이.”

“별소리 다 듣것소. 애들이 학교 들어가기 전에 데려 와야지. 그러니 당신도 맘 독하게 묵고 기운 좀 채리소. 그리 빌빌거려서야 원”

남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여자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려. 내 자슥이 당신 자슥이지. 여자의 손등에 얼굴을 묻었다. 여자는 찬바람이 쌩쌩 도는 표정으로 한동안 남자의 정수리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다가 부드럽게 말했다.

“참 당신도 이리 여려서야. 어찌 내가 맘을 놓것소. 이러니 내가 당신을 돌보지 않을 수가 없지. 자 인자 잠 좀 잡시다.”

“그래. 누가 그랬을까?”

“또 그 소리우?”

“아니다. 그냥 생각이 나서.”

여자는 남자에게서 등을 돌려 돌아누웠다.

방바닥에서 끈적거리는 습기가 피어올랐다.

남자는 캄캄한 창밖을 바라봤다. 눈시울이 불그레하게 젖어 있었다. 남자는 누가 보아도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병색이 완연했다. 툭 불거진 광대뼈에 핏기라곤 없는 얼굴, 깡마른 몸피가 금세라도 사그라져 버릴 것 같다. 살아있는 것은 여자의 뒤통수를 싸늘하게 쏘아보는 눈빛이었다.

‘니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속지 않아. 독한 것. 내 피를 말려 죽이려고 작정한 년이야. 내가 죽어야 니 속이 풀리것지. 니를 배신한 나를 용서할 리가 없지. 니도 참 불쌍한 여자다. 세상천지에 하고 많은 사내놈 다 제쳐두고 나만 원하는 니도 괴로울 끼라. 우리는 일란성쌍둥이처럼 서로에 대해서 너무 잘 알아. 내가 죽은 그 여자를 못 잊는다는 거 알면서도 니가 한사코 나를 버리지 않으려 하는 이유가 뭔지 난 알아. 아암 알고말고.’

순간 하늘이 우렁우렁 울더니 빛이 번쩍하면서 천둥이 우르르 꽝하고 터졌다. 곧바로 와그르르하면서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다. 창문 틈으로 칼날 같은 비바람이 휘몰아치자 가물거리던 촛불마저 꺼져버렸다.

여자는 발딱 일어나 어둠 속을 허우적거렸다. 성냥을 어디 뒀더라. 남자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한숨을 쉬면서도 앉은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어두운 창밖만 바라봤다. 어둠에 눈이 익어가자 사물들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선반이랑 방문 옆에 있던 탁자 위를 더듬거리던 여자가 라이터를 찾아내 찰깍 불을 켰다. 라이터 불빛이 남자를 쏘았다. 남자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어둠이 오히려 숨쉬기에는 편했다.

“불이 무슨 필요 있어. 어두운 게 좋구만.”

남자는 어둠이 훨씬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거짓과 위선이 판치는 세상에 더럽고 추잡한 것들을 가려주는 어둠의 진실이 남자는 좋았다.

갑자기 삽짝 옆에 있는 개가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았다. 자정이 임박한 시간이다. 인가에서 뚝 떨어진 외딴집을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비 때문에 먹이를 구하지 못한 산짐승이 찾아든 것 같았다. 노루나, 오소리, 너구리 같은 산짐승이 먹이 감인 닭을 채 가기 위해서나, 비를 피하기 위해 헛간으로 찾아들기도 했다. 닭장 문을 야무지게 닫아도 어김없이 닭 한두 마리가 사라지곤 했다. 남자는 아마도 그 녀석이 또 온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리에 누웠고, 여자는 개 짖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며 일어나 옷을 찾아 입었다.

여자는 서두르지 않고 손전등을 찾아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남자는 무슨 여자가 저렇게 간이 클까 하면서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늘 여자는 자신의 자리를 남자로 착각했다. 남자를 무슨 애완동물처럼 여기면서 자신이 돌보아야 만이 살 수 있는 인간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보호해 주지 않으면 숟가락질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어린애로 여기는데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는 심각하다 못해 병적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대여섯 살 적이었다. 여자애와 남자애는 고아원에서 만났다. 남자애는 늘 바지에다 오줌을 찔끔찔끔 짜면서 울었기 때문에 짠보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을 얻었다. 여자애는 늘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동네북처럼 놀림감이 된 남자애를 감싸주었다. 거칠고 고집이 센 여자애였다. 둘은 금세 단짝이 되었다. 남자애에게 여자애는 든든한 보호자이기도 했고. 친구이기도 했다. 어쩌면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연상했는지 모른다. ‘아가, 예서 놀고 있거라. 옴마가 돈 많이 벌어서 꼬까옷 사 가지고 올게.’ 어머니는 그를 놀이터에 남기고 휑하니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흙장난에 지치고 배가 고파도, 어둠이 아귀처럼 입을 벌리고 달려들어도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남자애는 여자애를 어머니처럼 따랐다. 여자애 옆에 있으면 두렵지 않았다. 남자애가 의지할수록 여자애는 더 거칠고 강해졌다. 마치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태어난 여자라는 듯이. 그들은 남매처럼 붙어 다녔다. 주위에서 그 두 아이를 두고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아무도 뗄 수 없을 것이라는 말들을 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끔찍이 챙기면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픔과 그리움, 외로움을 서로 공유했다. 서로에 대한 정이 너무나 깊고 질겨서 그들 사이에는 다른 어떤 것도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본능이 이끄는 대로 서로의 몸을 나누었고, 서로의 가슴을 나누었다.

고아원을 나와서 동거를 시작한 나이는 불과 열일곱이었다. 여자애는 아이를 가지는 것을 두려워해 스스로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어떻게 의사를 구워삶았는지 모르지만 그 이후 여자에게서 아이를 가졌다는 말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둘만 행복하게 살다가 가자는 것이 여자의 약속이었다. 여자는 술집에서 웃음을 팔았고, 남자는 거리에서 남의 호주머니를 털었다. 그들에게 타인은 적이었다. 자기를 버린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그 여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단지 성공할 수 없었다는 것이 더 무거운 족쇄가 되어 남자의 발목을 묶어버렸지만 남자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환희에 가슴이 떨렸다.

남자의 기억에서 여자를 지워버리고 산 세월을 헤아려보니 아귀가 딱 맞는 5년이었다. 여자가 남자를 찾아낼 때까지 남자는 행복했다. 소매치기를 업으로 삼고 살던 남자가 착실한 전기 기술자가 되어 사랑하는 아내와 앵두같이 귀여운 어린 남매를 두고 살 때는 세상에 온통 장밋빛이었다. 자신이 돌보아야 할 가족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했다. 그는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려도 숨이 가쁠 지경으로 행복했지만 가끔씩 갈비뼈 근처가 아팠다. 잠을 자다가도 가위에 눌러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곤 했다.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가리는 버릇도 생겼다. 머리를 덥수룩하게 기르고, 콧수염도 길러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려고 애썼다. 밤마다 여자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게서 숨을 수 있을 것 같아? 넌 절대로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노는 손오공이야. 뛰어 봤자 벼룩이지.’ 두고 온 여자. 자신을 찾아 전국을 헤매고 있을 여자. 그럴수록 그는 아내와 자식에게 각별했다. 아내 역시 여자를 두려워했다. 길 가다가도 비슷한 여자를 보면 몸을 옹송그리고 어둠에 몸을 감추었다. 숨을 할딱거리면서 방 안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아닐 거야, 내가 헛것을 봤어. 그렇지 여보? 너무 닮아서 간이 졸아드는 줄 알았어.’ 아내는 그런 날 밤이면 남자의 품에 억세게 파고들었다.

지금 아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시장 보려 나갔던 아내는 뺑소니차에 치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를 가슴에 묻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그를 찾아낸 여자는 용서해 주었다. 어떻게 그를 찾아냈는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 여자의 집요함이라면 너끈히 찾아내고도 남으리란 것을 그는 익히 알았다. 그는 여자에게 돌아갔다. 다시는 그 여자의 품에서 빠져나올 수 없으리라 생각하면서.

현관문이 삐거덕거리면서 힘겹게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에쿠 지겨운 비. 지긋지긋해라. 올라오셔요.”

나긋나긋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코맹맹이 소리는 버릇이 되어버렸군. 빌어먹을.

“누가 왔어?”

남자는 방문 쪽을 향해 큰소리로 물었다.

“지나가던 길손이에요. 자리 좀 걷어요.”

남자는 뭉그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앉은 자세로 이부자리를 걷어서 구석으로 밀었다. 방문이 열리면서 온몸에 묻은 물기를 수건으로 닦으며 여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열린 방문 밖을 내다봤다. 비옷을 벗어 든 등산복 차림의 나그네가 머쓱해하면서 모자를 벗고 꾸뻑 인사를 했다. 순간 남자는 숨을 헉하고 몰아쉬었다. 촛불에 비친 나그네는 거대한 사천왕 같았다. 덥수룩한 머리에 면도를 하지 않은 얼굴은 털북숭이처럼 구리 빛이었다. 나그네는 비옷과 배낭을 벗어 신발장 옆에다 걸치고는 현관에서 젖은 등산화를 힘들게 벗었다.

“늦은 밤에 실례합니다. 이거 죄송해서.......”

“아, 괜찮습니다. 워낙 누추한 곳이라. 들어오시지요.”

“여행길인데 길을 잘못 든 바람에. 이거 폐를 끼쳐서 미안합니다. 산중에 불빛이 보이기에 반가운 김에 염치 불고하고 들어왔습니다.”

“장마철에 등산을 하시다니 일기예보도 듣지 않았습니까?”

“여름철 날씨야 늘 그렇지요. 비 탓만 하고 지내자니 답답해서 나섰던 길이지요.”

나그네는 성큼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촛불 앞에 드러난 나그네의 이목구비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생각 외로 험상궂은 인상은 아니었다. 남자와 비슷한 또래라는 것을 느꼈다. 무슨 운동을 했는지 어깨가 딱 벌어졌고, 팔뚝이 굵었다. 남자는 자신의 왜소한 몸피와 나그네의 딱 벌어진 몸피를 비교하며 앉은 자세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난 보다시피 몸이 좀 부실 하우. 정 갑수라고 하우.”

“예. 저는 김 대남이라고 합니다.”

탁자 위에 하얀 눈물을 흘리던 촛불이 일렁거렸다.

“어디 매인 몸이 아닌 모양이지요?”

“그런 셈이지요.”

“자유인이라! 좋지요. 끼니는 드셨소?”

“찬 밥 있으면 한 그릇 부탁해도 될는지. 산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허기를 못 면했습니다. 폐가 되지 않는다면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그네는 여자를 봤다. 남자도 여자를 흘낏 바라보다가 목을 젖히며 마른기침을 시작했다. 기침은 좀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벽에 기대섰던 여자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숨 가쁘게 기침을 하는 남자를 바라보다가 방문을 나서며 쫑알거렸다.

“또 시작이야, 에쿠 무슨 남자가 감기 하나 이기지 못하고 골골대는지 원, 에고 내 팔자야.”

여자는 나그네가 듣거나 말거나 관심 없다는 듯이 할 말 다 하고 초 한 자루를 더 찾아서 불을 붙여 들고 거실 옆에 붙은 부엌으로 향했다.

“이거 원 몸이 신통찮아서. 여편네가 저리 구박을 합니다. 여자는 사흘거리 북어 패듯이 패야 한다니까. 몸만 성하면 혼쭐을 낼 낀데. 보다시피 피골이 상접하니 여편네가 달달 볶아대도 할 말이 없지요. 댁의 부인은 멸치처럼 달달 볶아대지 않소?”

“그런 여자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애초에 여복이 없는지. 혼잡니다.”

“그래요? 나이가 솔잖아 보이는데?”

“아, 예. 사십 줄에 들어섰지요. 오래전에 장래를 약속한 여자가 있긴 했지만 외국물 좀 먹고 왔더니 고무신 거꾸로 신고 가 버렸더군요. 허허. 이 산중에서 두 분이 아옹다옹하는 것이 참 부럽습니다.”

“그렇게 보이오? 사실 저 여편네가 저래도 내 없으면 못 사는 여자라우. 보다시피 몸이 이 모양이니 허리가 너끈하도록 치도곤을 쳐 주지 못해서 저렇게 골이 났다우. 사실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여편네 꼼짝 못 하게 하는 방법이야 딱 한 가지 아니우.”

“그런가요?”

“그럼. 맞는 말이지.”

남자와 나그네는 서로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나그네와 남자는 금세 의기투합해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친근감을 드러냈다. 여자가 밥상을 들고 들어올 때쯤에는 김형, 정형하면서 죽이 척척 맞았다.

“당신, 또 쓸데없는 말 했지요? 말할 기운도 없다더니 말만 청산유수네요.”

“아니라니까 그러네. 자, 김형, 찬은 없지만 밥 한술 뜨시우.”

나그네는 허기가 졌던지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꽤나 배가 고팠나 보오. 긴긴 여름밤에 밤참이라도 먹어야 할 판에 굶었으니 오죽 배가 고팠을까. 천천히 드수. 이런 밤에는 소주 생각이 간절하군. 딱 한 잔 기분 좋게 마시면 좋겠구먼. 당신 혹시 숨겨둔 술병 없어? 있으면 내 와. 손님 대접이 이래서야 시골 인심이 아니지.”

“참 별소리 다 듣겠소. 자기가 마시고 싶으면서 남 핑계는. 먹고 죽을래도 없수.”

“에이. 여보 그러지 말고. 응응!”

남자는 애교를 부리는 여자처럼 콧소리까지 내면서 여자의 팔을 잡았다.

“없다니까. 손님 보는데 이이가 주책없이 왜 이래요.”

나그네는 두 사람의 거동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얌전히 앉아 밥상을 비웠다. 말끔해진 밥상을 윗목으로 밀어내며 두 사람을 보고 싱긋이 웃었다.

“술은 제 배낭에 있습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저도 술 한 잔 생각이 간절하던 참입니다. 술상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여자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일어나 밥상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나그네도 방문 밖에 놓아둔 배낭을 들고 들어와 소주병을 찾아냈다. 한동안 부엌에서 여자의 도마질이 요란하면서 지지고 볶는 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나더니 김치와 풋고추 부침을 해서 얹은 술상이 맛깔스럽게 차려져 들어왔다.

“대단하군요.”

나그네가 술상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우리 마누라 음식 솜씨가 꽤 좋은 편이지요.”

“좋겠습니다. 여자는 뭐니 뭐니 해도 음식 솜씨가 있어야 사랑받지요.”

“맞는 말이우.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음식 솜씨 좋은 여자가 그 맛도 좋다고.”

“당신 또. 쓸데없는 소리 할래요?”

“자,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쭉 한잔 합시다. 요 고치 전 톡 쏘는 맛이 별미지.” 남자는 너스레를 떨면서 안주를 집었고, 여자는 다소곳이 술잔을 채웠다.

“당신도 한 잔 해. 나 보다 우리 마누라 술이 세다우. 카, 술맛 조오타.”

남자는 얼른 술잔을 비우고 여자 앞에 술잔을 채워 건넸다.

밤은 무르익어 가고 비는 뜨음했다가 다시 장독간이 깨어지듯 와그르르 쏟아졌다. 촛불은 은은하게 산속의 외딴집을 감쌌다. 주거니 받거니 하던 술병은 금세 바닥이 나고 세 사람은 적당히 취기를 느꼈다.

“김형, 고무신 거꾸로 신은 여자 얘기나 해 보실 의향은 없수? 기분도 아리 딸딸하니 좋은 데. 김형 살아온 이바구나 들어봅시다. 어째. 좀 다른 인생을 산 사람 같으니 그 절절한 사연 좀 풀어놓아 보구랴.”

나그네는 빙그레 웃었다.

“못할 이약도 아니지요. 다 지난 일인걸. 좋은 남자 만나서 잘 살면 그만이지만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더군요.”

“허참 안됐군. 어쩌다가?”

“제 복이겠지요. 교통사고를 당한 모양입디다.”

“세상에......”

여자는 남자를 쳐다봤다. 예리한 빛 한 줄기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지르다가 제풀에 사그라졌다.

나그네는 반쯤 남은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쉬다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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