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내가 죽일 놈이지요. 오래전 일입니다. 장래를 약속한 여자가 있었어요. 여자가 참 곱상했어요. 그런 여자를 혼자 두고 돈 벌겠다고 사우디로 떠났으니 내가 미친놈이지요. 적게 먹고 똥 작게 싸는 것이 돈 버는 것이라더니 그 말이 하나도 안 틀려요. 그 당시 건설 회사에서 우리나라 인부들을 외국 공사장에 많이 내 보냈지요. 주로 사우디, 쿠웨이트, 이란 등지의 건설 현장에 파견되었지요. 나는 현대건설에서 철근 기술자로 채용되어 3년 기한으로 갔지만 감독을 잘 만난 덕에 한 공사 더 하고 온다는 것이 도합 5년이나 걸렸지 뭡니까. 달동네에 옷 가게 하나 열어주고는 일편단심 민들레가 되어라 했으니 남자 맛을 아는 여자가 날 기다릴 리가 없지요. 한 3년은 편지도 꼬박꼬박 오고, 보내준 봉급을 한 푼도 축내지 않고 주택 부금 붓는다며 내가 오는 날 우리 집을 장만해 놓겠다고 찰떡같이 약속하더니. 몸 건강하게 지내다가 오라고 신신당부하더니. 다시 만나면 근사한 예식장에서 보란 듯이 식 올리고 싶다더니. 나를 쏙 빼닮은 아이 가지고 싶다더니. 언제부턴가 나 보고 자꾸 나오라고 보챕디다. 집 장만 안 해도 좋으니까 당신만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 합디다. 외로워 못 살겠다고 하루빨리 나오라고 성화를 대더니 어느 날부턴가 편지가 뜨음해지더군요. 친구들이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 해도 나는 믿지를 않았어요. 내 여자는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맹세했지요. 외국 건설 현장에 온 남자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 있어요. 돈 버는 족족 부치지 말고 모았다가 귀국할 때 가지고 가서 새 장가들 생각하라고요. 돈 벌어보겠다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남의 나라에서 죽도록 고생하는 동안 이 땅에 남은 마누라는 외롭다고, 유행가 가사처럼 읊조리다가 춤바람에, 도박에, 남자 생겨 아이도 팽개치고 도망가 버린다고. 오쟁이만 진 어리석은 남자들이 수두룩하다는 소문이었지요. 나는 그 소문을 절대로 믿지 않았어요. 우린 십 년이 넘도록 사귄 사이였으니까요. 그 여자는 어머니와 둘이 살았지요. 나는 장모님을 친 어머니처럼 모셨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여자를 혼자 남겨두고 떠난 내가 잘못이지요. 지지리도 가난해서 돈 벌어 와 그 여자 호강 한번 시켜주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술이 더 있었으면 좋겠군요.”
“진짜 술이 쪼끔만 더 있었으면 좋겠군. 여보! 진짜 술 없어?”
마른침을 삼키며 이야기를 듣던 남자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여자를 보고 물었다. 여자는 볼이 발그레 해진 얼굴로 나그네를 바라보다가 남자를 쳐다보며 눈이 샐쭉해져서 말했다.
“장독간에 가면 매실주 담아둔 것이 있긴 한데. 나 혼자 무서워서 어찌 가. 하늘에 빵구가 났는지 저 비 소리 들리지도 않우?”
“역시. 당신이 최고야. 김형 부탁 하우. 우리 마누라 맘 변하기 전에 퍼뜩 갔다 오소. 술에 취하고, 김형의 기막힌 사연에 취하고, 저 빗소리에 취하네. 그려.”
남자는 두 팔을 벌려 만세를 부르는 시늉을 했다. 여자와 나그네가 방문을 나서는 것을 보고 그는 벽에 비스듬히 누웠다. 어, 취한다. 술 몇 잔이 나를 죽이는구나. 참 희한한 일이다. 어디 양품점 하는 처자가 한 둘인가. 그나저나 왜 이렇게 안 들어온담. 장독간이 십리는 안 될 텐데. 남자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는 기억이 다가왔다.
하얀 피부에 코스모스처럼 가녀린 처녀가 부침개가 담긴 쟁반을 들고 어슴푸레하게 어둠이 깔린 현관을 들어섰다.
“누구 없어 예?”
“누구유?”
선잠에서 깨어난 남자가 부스스한 얼굴로 방문을 열고 내다봤다.
“저기 길 옆에 양품점 하는....... 부침개를 했기에 좀 드시라고. 아줌마가 오늘은 일찍 나가시는 거 같던데.”
“예. 초저녁 손님을 받기로 한 모양입니다. 벌써 날이 어두워지네. 이거 불도 안 키고 미안합니다. 아가씨, 좀 들어 오시우.”
남자는 방안에 불을 켜고 이불을 뭉쳐 한쪽으로 밀었다.
“괜찮아 예. 저 이거 따끈할 때 먹어볼 만한데. 맛이 있을지 모르겠네 예. 혼자 먹으려니 그래서…….”
“잘됐네요. 그렇잖아도 출출하던 참인데. 들어와서 같이 먹지요. 마누라가 저녁을 지어놓고 나갔을 텐데. 나도 혼자 밥 먹는 것이 신물 나서 안 먹었다우.”
남자는 파자마 바지에 러닝 차림으로 일어나 처녀의 손에서 쟁반을 건네받았다. 처녀는 남자의 옷매무새를 외면하면서 현관 옆에 딸린 부엌에 들어가더니 작은 상과 젓가락을 챙겨 와 방안에다 차렸다. 남자는 웃옷만 걸치고 앉아 가만히 처녀의 거동을 주시했다. 처녀는 눈을 내려 감고 부끄러워하면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젓가락으로 부침개를 한 조각 떼어내 처녀에게 내밀었다. 처녀는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부침개를 받아먹었다.
“부침개가 있으면 술도 있어야지. 찬장 안에 소주병이 있을 텐데.”
처녀는 다시 부엌으로 나가 술병과 술잔을 찾아서 들어왔다. 남자는 처녀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나이를 어림잡아보지만 알 수 없었다. 언제나 티와 청바지를 수수하게 차려입은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다. 날마다 그 집 앞을 지나치면서 양품점 쪽을 바라보곤 했다. 처녀는 옷을 정리하거나, 책을 읽고 있기도 했다.
“양품점은 잘 돼요?”
“그저 그래 예.”
“이 달동네에 옷 가게가 잘 될 리 없지요. 밤일하는 아가씨들 취향 맞추려니까 힘들지요? 이런 동네에 살다 보면 물이 들기 마련인데. 아가씨는 물들지 말아요. 싹수없는 것들 꼬임에 속지 말아요. 특히 우리 마누라를 조심해야 할 거요.”
“아줌마가 많이 도와주는 편이라 예. 단골을 많이 터 주어서 그런대로 장사가 되는 셈이지 예. 아저씨는 왜 늘 집에만 있어 예?”
“우리 마누라가 의부증 이우. 나가면 사고만 친다고 집안에만 가두어 놓고 낮일 만 시키는구려.”
남자는 슬쩍 농을 하며 웃었다. 처녀는 술기운 탓일까. 얼굴이 더욱 빨개져 고개를 숙였다.
“내가 그거 하나만은 끝내 주거든.”
남자는 짓궂게 말하면서 처녀의 눈치를 살폈다. 찰나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저 그만 갈게 예. 가게를 오래 비울 수 없어서.”
아쉬웠다. 처녀의 눈에 어룽거리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잠시 생각했다.
“가끔 와서 놀다가요.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이우.”
처녀는 허겁지겁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남자는 손에 쥐었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양 허전했다. 다리 사이를 내려 봤다. 낮에 아내를 만족시키려고 파김치가 된 물건이 채신머리없이 불거져 있었다.
“빌어먹을 내 몸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은 이놈이야. 혼자 껄떡거리다가 지칠 놈이 아니니 어쩐다? 어느 놈팡이와 희롱하고 있을 여편네를 불러올릴 수도 없고, 참 버릇이라곤 없는 놈이군.”
남자는 벽에 붙은 전기 스위치를 내리고 물건을 잡고 이불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해맑은 처녀의 얼굴이 꼼지락거리며 달려들었다. 눈을 감고 처녀의 손을 느꼈다. 보드라운 손이 남자의 물건을 쓰다듬었다. 입에서 저절로 신음소리가 났다.
“저어...... 쟁반을 안 갖고 갔어 예. 쟁반 가지러.......”
열린 방문 밖에 처녀가 등을 돌리고 현관문을 닫고 있었다. 남자는 물건을 꽉 잡은 채 부동자세가 되어 멀끔히 처녀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죄송해 예.”
“아, 아닙니다. 요상한 꼴을 보였군요. 아 불 먼저 켜야지. 빌어먹을 스위치가 어디 있더라.”
“아니라 예. 불 켜지 마이소. 밝은데 예 뭐.”
사실 집안은 밝았다. 현관 유리문으로 비치는 거리의 불빛에 반사되어 사물을 식별할 정도는 충분히 되었다. 다급하게 정신을 수습한 남자가 빈 쟁반을 상에서 들어 건넸다.
처녀는 손을 내밀었다. 할딱거리는 숨소리가 남자의 오관을 자극했다. 남자는 쟁반을 방바닥에 놓고 처녀의 손목을 억세게 잡았다. 처녀는 휘청하면서 남자에게 픽 쓰러졌다.
남자는 서두르지 않았다. 처녀를 이불 위에 눕히고 방문을 닫았다. 부드러운 애무에 녹아나지 않을 여자가 세상에 있을까. 그는 고양이가 쥐를 앞에 놓고 공 굴리듯이 가지고 놀면서 진을 뺀 다음 야금야금 먹어치우듯이 그렇게 처녀를 탐했다. 남자와 여자는 거친 신음소리를 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황홀한 단내를 맡았다. 아내에게선 전혀 느낄 수 없었던 뜨겁고, 짜릿하고 기막힌 맛이었다. 긴장이 풀린 처녀의 몸은 요가를 하듯이 뒤틀리면서 낭창낭창한 감창소리를 냈다. 남자는 처녀의 입에 수건을 물렸다.
“혼자 앓았어 예. 아저씨는 제겐 눈길 한번 안 주시데 예. 너무 했어 예.”
처녀는 남자의 가슴을 두드렸다.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가만히 처녀의 벗은 몸을 안았다.
“나도 그랬어. 너를 훔쳐보면서 얼마나 가슴 태웠는지.”
그렇게 남자와 처녀는 야반도주를 했다. 연년생 두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깨가 쏟아지는 5년이었다. 아내가 뺑소니차에 치어 죽고 넋을 놓고 있을 때 여자가 찾아왔었다. 다 용서할 테니 같이 살자고. 여자는 두 아이를 고아원에 넣었다. 자리 잡히는 대로 두 아이를 데려다 키우자고 했다. 남자는 여자를 따라 시골로 들어왔다.
“이이가 완전 곯아떨어졌어.”
여자와 나그네는 방구석에 웅크린 채 잠이 든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행복한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오.”
“게릴라성 집중 호우가 내린다더니 물난리 나겠네.”
나그네는 여자를 끌어당겨 입술을 포갰다.
“아이참, 저이 깨면 어쩌려고?”
“깨기는 술에 수면제를 탔는데. 골짝에 던져 버려도 안 깨어날 걸. 일 치고 나는 바로 사라질 테니 뒷일을 당신이 알아서 잘 처리하고, 생명보험 증서 챙기는 거 잊지 말고.”
“그래도. 좀 께름칙해. 자업자득이지만”
“아직도 저치한테 연연한 거야? 교통사고 건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자나 깨나 당신이 연락 주기만 기다렸지. 하도 무소식이기에 난 이용당한 줄 알았지. 설마 날 이용만 하고 말 생각은 아니었겠지?”
“참 자기도, 내 성격 몰라서 그래요? 기회가 잡혀야 말이지. 게릴라 식 집중 호우 경보가 내리는 걸 보고 하늘이 날 돕는구나 싶었지. 저 치가 아직도 그 여자 못 잊습디다. 당신도 그래?”
“천만에. 혹시 당신? 아직도?”
“사돈 남 말하네.”
여자는 나그네의 바지 속으로 손을 들이밀며 콧소리를 냈다.
하늘은 밤새도록 벼락을 쳐 댔고, 골짝 물은 쾅쾅쾅 우렁우렁 바지직 바지직, 우당탕 집을 집어삼킬 듯이 터져 내렸다.
날이 밝았다.
“아이고, 이장 어른, 우리 그이 좀 찾아 주세요. 우리 그이가, 우리 그이가 없습니다. 새벽에 천둥번개에 놀라 깨어보니 옆에 없습디다. 우리 그이 좀 찾아 주세요. 몸도 부실한 양반인데.”
새벽 댓바람에 머리를 산발하고 맨발이 되어 달려온 여자를 보고 이장 댁 식구들은 아연실색했다.
“아이고. 이 일을 우짜노? 아주머이 진정 하이소. 동네 사람들 모아 찾아봅시다. 새복에 하늘이 빵구가 난 거 맹키로 비가 쏟아졌는데. 그렇잖애도 그 집 뒷산에 산사태가 났다기에 걱정했소. 아주머이 집 옆에 있는 골짝 보셨소? 벌물이 골짝 논을 싹쓸이해 감서 그 골짝이 반이나 패어나갔다는데.”
“모릅니더. 하도 비가 퍼붓기에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고마 잠이 폭 들었어 예. 우리 그이가 산사태 나모 집 덮치는 것 아닌가 걱정하더이. 이 놈의 잠이 웬수라 예. 몸도 부실한 사람이 오데 갔시꼬. 아이고 우짜모 좋노. 죽고 싶다더마. 병든 몸 이래 살모 뭐 하냐고 해사터마. 제발 우리 그이 좀 찾아 주이소. 우리 그이 없이 지는 몬 살아 예. 몬 살아 예. 여보, 여보.......”
여자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대성통곡을 하다가 실신했다.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맑게 개어 있었다.
사흘 만에 남자의 시신은 아랫녘 너른 저수지에 퉁퉁 불어 떠올랐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