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삶의 향기는 어디에
삶의 향기는 어디에 있는가.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 파리처럼 파닥거리다가 말 인생은 아닌가. 다옥은 천정의 거미줄에 걸린 파리의 가냘픈 날갯짓을 바라본다. 저 파리의 신세가 자신의 신세 같아서 숨이 막힌다. 파리가 파닥거릴수록 거미줄은 더 조여 오고, 구석진 곳에 숨어 먹이를 노획하려고 벼르던 거미는 빠른 솜씨로 다가와 파리를 질식시키고 거미줄로 돌돌 만다. 파리는 이제 파닥거리지도 못하고 가끔씩 꿈틀거리며 살아있음을 알린다. 파리는 더 이상 노력해 봤자 거미줄의 올가미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옥은 빗자루를 들고 와 거미줄을 확 걷어버린다. 거미는 어느 틈에 달아나버리고, 거미줄에 묶인 파리만 마룻바닥에 떨어진다. 다옥은 파리를 잡아서 손바닥에 놓고 그 몸에 붙은 거미줄을 떼어낸다. 끈끈이처럼 거미줄은 다옥의 손가락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서 거미줄을 휴지에 닦기를 반복한다. 파리의 몸뚱이에서 거미줄을 다 걷었건만 파리의 생명은 이미 물 건너갔다. 불쌍해라. 애써 잡아 없애는 파리지만 다옥은 자꾸만 불쌍해라 중얼거린다.
사실 요즘 다옥은 자꾸만 조여 오는 공권력에 숨이 막힌다. 어디다 하소연을 하란 말인가. 감사원에 보낸 민원은 도로 이첩되어 도의 담당자 손에서 역시 불가능하다는 결과만 통지받게 되었고, 국민고충 처리 위원회에 보낸 민원 때문에 담당자가 직접 왔지만 ‘도움을 못 주어 죄송하다. 우리는 집행을 하라고 명령할 권한이 없다. 시정해 달라는 요구만 할 수 있다.’는 말만 들었다. 이젠 어디에다 호소를 해야 한단 말인가. 국민고충 처리 위원회란 것은 법을 집행할 권한이 없다 하고, 감사원에서는 공무원의 비리를 캐는 곳이니 공무원의 비리가 드러나지 않는 한 손 쓸 권한이 없다 하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힘없고, 백 없는 농민은 삶의 터전이 침해를 받는데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단 말인가. 농민을 위한 무료 법률 상담소란 데가 있어 반가운 김에 전화를 했더니 그쪽에서 하는 말도 똑같다. 자기네로선 어떻게 해 줄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도에서 낙후된 지역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시행된 사업이기 때문에 면민 개개인의 사정을 다 봐줄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법도 있나. 실질적으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의견은 수렴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사천리로 매듭지어진 사업이다. 공청회니 설명회니 하는 것은 말 뿐이고 참가해 보면 자기들 편할 대로 사업 시행한다는 통고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감투 쓴 몇 사람이 손익 계산 따져서 자기들 편할 대로 시행된 사업도 사업이란 말인가. 관행과 억지로 점철된 관공서의 텃세는 여전히 높았다. 세상이 좋아져서 공무원들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민원조차도 그 나물에 그 밥이란 것을 겪어 본 사람은 안다.
다옥은 국민고충 처리 위원회에서 나온 사람과 도청의 담당 공무원과 나눈 대화를 생각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닫는다. 무조건 방법이 없으니 개인이 희생을 해야 한다는 입장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가 없군요.”
“그럼 우린 이대로 평생의 생활터전을 잃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되도록이면 집이 들어가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집이 들어가지 않으면 마당도 없이 길 위의 집에서 당신 같으면 살 수 있겠습니까? 보다시피 장골 한 길도 넘는 벼랑 위에 집만 서 있는 꼴이 되지요. 자연과 닮은꼴로 사는 우리 집에 마당이 없다면 어떻게 사람이 살라는 것입니까? 거기다 길이 포장되면 차도 많이 왕래할 테고 그 소음과 내리막길이니 가속도가 붙기 마련인 차량의 속도 때문에 사람이 살겠습니까? 가축을 키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 보고 여기 살지 말고 나가란 소리밖에 더 됩니까? 보상금이라고 해서 쥐꼬리만큼 주면서 다른 곳에 집을 지으라니요. 그 돈으로 집터나 구입하겠습니까? 집을 옮길 장소도 없고, 옮길 마음도 없으니 도로 설계 변경을 해 주십시오. 우리 집 앞에도 옆에도 축대를 쌓으면 충분히 길이 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왜 당신들 편리한 대로 설계를 해 놓고 우리 보고 손해를 보라는 것입니까. 정 우리 집 앞으로 길을 낼 여유가 안 되면 우리 집 건너편 산기슭으로 길을 내도 되지 않습니까. 거기는 온통 묵정이 아닙니까. 다리 하나만 놓으면 해결될 것을 당신들의 안이한 사고방식 때문에 당신들의 편리를 위해 왜 우리가 평생의 터전을 잃어야 합니까. 굳이 우리 집을 관통해 직선으로 내라는 법이 있습니까? 산길은 원래 산 지형 따라 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왜 우리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것입니까.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백 사람이면 백 사람 잡고 물어보십시오. 우리가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지. 처음부터 당신들이 농사꾼을 우습게 본 거지요. 무지한 농사꾼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 아닙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이곳에 당신이 살고 있다면 이렇게 설계를 하겠습니까? 그렇게 쉽게 이해하란 소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옆에 못이 있으니 그렇습니다. 댁의 집을 살리려면 굴곡이 너무 지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이 있습니다. 사고 나면 아주머니가 책임지겠습니까? 또한 계곡 옆으로 나간다면 축대를 쌓아야 하기 때문에 공사비가 많이 듭니다. 기존의 길에서 넓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하십시오.”
“왜 못 나간다는 것입니까. 집 앞으로 나가면 오히려 길이 발라집니다. 또한 못 있는 곳으로 최대한 들어가서 축대를 쌓으면 우리 집이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들이 설계하기 편하게 해 놓고 왜 우리 보고 책임지라는 말입니까. 당신이 보기에도 우리가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 보입니까? 더 들어갈 수 없는 곳은 우리가 땅을 준다지 않습니까. 집 앞의 다랑이 두 배미도 길도 우리 땅입니다. 땅을 무조건 주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최대한 나갈 수 있는 곳까지는 나가고 나서 정 안 되는 곳은 땅을 내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같은 설계라면 마당이 다 없어지고 집의 일부가 들어가지 않습니까. 이 산속 외딴집에서 마당 없는 집이라니요. 말이 됩니까? 그래도 우리의 요구가 부당합니까?”
“그럼 집을 몽땅 보상받아서 새 집을 지으면 되겠네요.”
“공사비 많이 든다고 축대를 쌓을 수 없다는 입장이면서 보상을 받아 집을 지으라니요. 그 보상금으로 저 건너편으로 길을 내시지요. 다리 하나만 놓으면 만사형통 아닙니까?”
“도로 설계가 이미 끝난 상태에서 다시 설계 변경을 할 수 없으니 하는 말입니다.”
“왜 못하죠? 그 보다 더한 일도 바꾸는 것이 권력 아닙니까. 어쨌든 그건 내가 알바 아니고, 보다시피 우린 새로 집을 지을 땅이 없습니다. 우린 염소를 키우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생활터전을 옮길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만약 우리 집이 길에 편입된다면 우리는 이 터전을 떠나야 할 입장입니다. 농사꾼이 생활터전을 잃으면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살지요? 또한 내가 알기론 새 집을 지을 만큼 보상이 나오지 않는 걸로 아는데요. 당신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땅만 날린 농민들이 어디 한둘입니까. 더구나 여긴 산골입니다. 공시지가로 따지면 값이랄 수도 없지요.”
“그렇다고 여기다 굴곡을 주면 사고 위험이 높습니다. 시야가 가려서.”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시야가 더 확 터이지요. 오히려 굴곡이 완화되어 직선이 되지 않습니까?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눈에 보이는 길과 보이지 않는 길을 혼돈할 수 없겠는데요. 그리고 당신도 운전을 하고 다니지만 시야가 가리는 곳에서 속력을 냅니까? 누가 제 죽을 짓을 하던가요? 대형 사고는 고속도로에서 많이 난다는 사실을 모르시나요? 내리막길이 직선코스라면 사고위험이 있겠지만 내리막길이 굴곡으로 이어진다면 조심하는 것이 운전자들이지요. 당신 같으면 사고 날 줄 뻔히 알면서 속도를 내겠습니까? 당신은 어쨌든 길만 내면 되고 국가에서 주는 봉급만 받으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평생 살아갈 생활 터전이 없어집니다. 왜 우리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하십니까? 개인의 정당한 권리 아닌가요? 만약 도로 설계 변경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 땅도 내 드리지 않겠습니다. 우리 산도 천여 평이 들어간다는 걸 알고 계시죠?”
“길이 나고 이 주위가 개발되면 댁에도 이점이 있지 않겠습니까? 땅값이 올라도 오를 테니까요. 또한 우리 입장에서는 개인의 모든 사정을 다 들어준다면 어떤 사업도 추진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길나고 난 후를 생각해서 이해하십시오.”
“땅값이 오른다면 땅 투기꾼들이 돈 버는 거지요. 이 주위엔 벌써 부동산 투기 붐이 휩쓸고 가서 농사꾼들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귀한 땅이 되었지요.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이 하루 이틀 일인가요? 정경유착이란 말이 정치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요. 공무원들과 업자들 간에는 무슨 유착이라고 해야 하나요? 어쨌든 긴 말은 않겠습니다. 국가에서 하는 사업이란 것이 개인의 생활터전을 침해해도 된다는 법이 있다는 소린 못 들었습니다. 여기가 동네 가운데도 아니고, 사방이 산인데 왜 굳이 우리 집을 거쳐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물론 우리 집터를 깎아내리면 일도 쉽고, 공사비도 적게 든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우린 생활터전을 잃고 이 골짝에서 쫓겨나게 생겼지요. 길이 나고, 개발이 된다고 우리에게 도움 될 것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부동산 투기 바람에 농민들만 울게 되겠지요. 벌써부터 부동산 투기 바람이 불어 저 앞 묵정 논도 다 외지인의 것인데. 길나면 땅값 올리려고 농사를 지을 수도 있는 땅을 깎아서 못 쓰게 만들기나 하지. 세금 감면받으려는 얄팍한 수에 넘어가는 것이 공무원들 아닙니까? 우직하고 순박해서 권력에 빌붙을 줄 모르는 촌사람들만 바보 소리 듣는 거지요. 개발이란 명목으로 자연환경이 파괴된다는 것을 당신네도 알고 계실 거 아닙니까? 어쨌든 우리는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수용할 수 없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끝까지 해 보는 수밖에 없지요.”
“결국엔 허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엔? 당신네들이 노리는 것이 그것 아닌가요? 너희들처럼 힘없는 농사꾼은 돈 몇 푼 쥐어주면 나가떨어질 것이다. 국가 공공사업을 누가 막을 수 있는가. 그것 아닌가요?”
“건축 설계 상으로 하자가 없으니 우리도 난감하군요.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서 나왔다는 사람의 말이다.
“그래요. 건축에 대해선 나도 백치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보다시피 충분히 재고할 여지가 있는 곳인데 안 된다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공공사업 운운하면서 합법적으로 농민을 우롱하는 것도 권력 행사라면 알겠지만요.”
다옥은 야멸치게 한 마디 했다. 그래도 국민고충 처리 위원회에서 나온다기에 한 가닥 기대를 걸어봤는데. 그런 대답을 듣고 보니 기가 막혔다. 그렇다고 낙담만 하고 앉아서 고스란히 당해야 하는가. 집을 살린다 해도 마당이 없는 산속 외딴집에서, 염소들을 마음대로 풀어 키우지도 못하고 차가 지나다닐 때마다 가슴을 졸이다가 결국엔 스스로 나가야 할 형편이 될 생각을 하니 끼니때가 되어도 밥알이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삶의 터전을 지킬 의무가 있다. 아무리 공권력이지만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행해지는 것이 이 나라의 법이고, 공무원들의 관행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어딘가 길이 있을 것이다. 그 길을 찾아야 한다. 내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 아니 나처럼 이렇게 개발이란 명목으로 땅 잃고, 집 잃고 쥐꼬리만큼 주는 보상에 냉가슴 앓으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을 위해서라도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막상 당하는 입장에 서고 보니 아무도 그 해답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관공서의 문턱은 여전히 높았고, 가재는 게 편이라고 제 앞가림하기에 바빠 골치 아픈 남의 일에 진심으로 거들려는 사람은 없었다.
“당신 생각은 어때요?”
“방법이 없다 잖아. 어쩔 수 없지 뭐. 그렇다고 아래 위서 길이 다 포장되어 오다가 우리 집 있는 데만 남기고 완성이 안 된다면 오고 가는 사람들이 우리 보고 욕할 끼고. 저 너머에도 그런 집이 있어서 사람들이 짜더라 욕을 해 쌌더라.”
“그럼 아예 이번 참에 다 팔고 도시로 나가는 건 어때요? 어차피 애들 교육 때문에 도시로 나가야 할 텐데 잘 됐네요. 보상금을 얼마나 준대요? 참 당신 나이에는 도시에 가서 밥벌이할 자리도 없을 테니 시댁으로 들어가고 나만 애들 데리고 나가면 되겠네요. 여자는 식당 접시닦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화가 나면 물불을 안 가리고 내뱉는 다옥의 입심에 자존심이 상한 남편은 더 큰소리로 아내를 몰아세우며 힘을 자랑하지만 다옥은 남편의 그런 행동도 비웃고 싶은 심정이다. 남이 당신 대신 살아준대? 세상 사람들한테 다 물어봐. 당신만 바보 소리 듣지. 제 앞가림도 못한다고 욕하지. 허긴 따지고 보면 칭찬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저런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거라고. 남의 일이니까. 남이니까 좋은 말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생각해 봐. 남의 이목이 무슨 소용이야. 당장 내 입에 풀칠하는 것이 급선무지. 당신이 양보한다고 고마워할 사람 아무도 없어. 돌아서서 멍청이라고 손가락질 하지. 모두들 제 욕심 챙기고 사는데 왜 당신은 나보다 남 생각을 먼저 하느냐 말이다. 남에게 사기 치고도 잘만 사는 사람들이 세상엔 많다. 사기 치는 것도 아니고, 내 욕심 앞세우는 것도 아닌데 왜 남 생각을 해야 한단 말인가. 어떻게 일구고 다듬어온 터전인데. 그리 쉽게 내주느냐 말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남자야? 다옥은 한바탕 삿대질이라도 하고 싶지만 참을 수밖에 없다. 남편과 아무리 입씨름을 해도 칼자루는 딴 사람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그런 남편에게 애잔한 정이 솟는다. 저런 사람이 살기엔 요즘 세상은 너무 각박해. 그저 19세기에 양반집 자재로 태어났다면 평생 글줄이나 읽고, 풍월을 읊으며 살아도 사람들에게 추앙받으며 살 사람인데 싶어서다. 다옥은 언제나 남편의 무른 성격에 열불이 치솟다가도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인데도 남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다는 남편을 보면 그 속이야 편하겠는가 싶어 마음이 아프다. 자기도 사람인데 욕심이 없겠는가. 하지만 도장이야 남편이 찍어줄 것이고. 아무리 자신이 바동거려도 이미 남편 마음이 정해졌다면 결과는 뻔하다. 남의 이목에 사는 사람이 남편 아닌가. 내 욕심 채우기보다 남을 더 배려하는 선한 사람이지만 같이 사는 여자의 입장에서는 속이 터지는 사람이 남편이기도 하다. 아무리 그래도 다옥은 내 가족과 생활의 터전이 송두리째 흔들리는데 남편인들 쉽게 결정하지는 못하리라 믿어본다.
다옥은 창가에 섰다. 집 주위를 감싸고도는 사철나무 울타리는 싱싱한 푸름을 자랑하고, 잎 떨어진 매실 나뭇가지에는 자줏빛 잎눈이 튀어 오르고, 마당의 마른 잔디 사이로 파릇한 땅 심이 도드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한숨만 쉴 수밖에 없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대로 무너져야 하는가. 어떻게 가꾸고 지켜온 삶의 터전인데 이 터전을 잃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자리를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하면 숨이 막힌다. 집 안팎,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애정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이제 겨우 마음의 안정을 찾았는데.
다옥은 새삼스럽게 권력과 부를 가지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촌부의 아내로 살면서 명예심을 탐해 본 적도 없고, 큰 욕심을 부려본 적도 없다. 마을에서 오리나 떨어진 산 중턱 외딴곳에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고 살기까지 지난 8년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다랑이 묵정 논을 다져 집을 짓고, 축사를 짓고, 염소를 키우기까지 힘겨운 노동과 고통과 눈물의 시간들이었다. 무섭다는 어린아이들을 달래고 살면서 사람의 향기와 말벗이 그리워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마을을 향해 눈물지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사방이 뻥 뚫려 있어 집에 들어서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낮에도 멧돼지가 집 앞을 어슬렁거리고, 심심찮게 산 노루와 토끼, 너구리, 다람쥐 등 산 짐승을 만날 수 있는 산간오지의 외딴집이 아닌가. 밤에 개 짖는 소리에도 소스라쳐 일어나 사방에 불을 밝히면서 적막한 산속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가슴 졸였던가. 남편이 밖에 나가서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어린 두 아이를 품에 안고 풀벌레 우는 소리에도 가슴 졸이며 잠 못 들어 날밤을 새우기 일쑤 아니었던가. 이제 겨우 환경에 적응하여 편히 잠들 수 있게 되었는데. 난데없이 도에서 낙후된 농촌지역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사업을 벌인 것이다. 우리 지역 큰 산을 관광지로 개발하자는 취지에 따른 관광 순환도로 개설이란다. 큰 산을 한 바퀴 빙 두르는 도로를 개설하는 데 하필이면 우리 집 앞을 지나는 길이 확장공사에 포장도로가 됨으로써 도로 개설에 따른 토지 편입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첫 공청회 때 남편은 우리 집 사정을 이야기했다. 되도록이면 우리 집이 들어가지 않는 범위에서 설계를 내어 달라고 담당공무원에게 당부를 했고, 공무원은 알았다면서 뒤에 보자고 했다. 그 뒤 설계 공고가 나붙고, 설명회에 참석해 보니 우리의 요구 사항이 완전히 무시된 채 업자의 편리에 따라 길의 설계가 끝나 있었다. 이의 신청을 했다. 담당 공무원은 또 뒤에 보자고 했고, 그 뒤에는 보상 기준에 따른 측량이 나왔다. 빨간 말뚝을 가지고 다니며 표시를 하고 말뚝을 박았다. 다시 이의 신청을 했다. 군청의 담당자는 도청 소관이라 했고, 도청 담당자는 이미 설계가 났으니 변경을 할 수 없다는 입장만 고수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다옥은 기가 막혔다. 아무리 말이 씨가 먹히지 않는 세상이지만 농사꾼을 우롱해도 이만저만 우롱하는 것이 아니다. 담당공무원의 안이한 태도와 업자의 우격다짐을 겪으면서 다옥은 철저하게 관행이 지켜져 온 또 다른 세상을 보았다. 부와 권력이 서로의 어깨를 걸치고 앉아 북 치고 장구 치는 것은 지난 정부나 새 정부나 한 치도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거듭 깨달을 뿐이었다. 벼슬아치의 횡포는 여전했다. 공무원도 농촌에선 벼슬이다. 예전 같으면 공무원 시험이 과거시험이니까. 아직도 농촌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공무원 자식을 두면 당신의 아들이 큰 벼슬 하는 줄로 알고 있을 만큼 변하지 않았다. 공무원들이 시키는 일이라면 옳은 일인 줄 알고 따라 하는 것 또한 별반 변하지 않았다. 논밭에 콩을 심으라면 콩을 심고, 일모작을 하라거나, 기계 농을 하라면 지시대로 따라 하는 것이 농촌 사람들이다. 과학 영농이니 어쩌니 하는 말의 뜻도 모르면서 무조건 쫓는 것 또한 변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 구워 삼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그래서 농촌 사람들 사이에 사기꾼들이 파고든다. 인정을 가장해서 뜨내기 약장수가 판을 치고, 효도관광이니 뭐니 해서 쌈짓돈을 합법적으로 울려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알고 보면 공공사업으로 승인 난 우리 지역 관광순환도로 개설도 합법적인 자연파괴 행위다. 개발이란 명목으로 순박한 인심과 아름다운 자연 생태계가 파괴된 곳이 어디 한 두 곳인가. 외지인들이 이권은 다 차지하고, 기존의 농민들은 러브호텔 아래 거지 움막처럼 피폐해진 채 약삭빠르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두 사람인가.
다옥은 지난 8년 전을 생각했다.
금세라도 멧돼지가 튀어나올 것 같았던 쑥대밭에 가시덩굴이 무성하던 묵정 논 다랑이 앞에 섰을 때 무서워서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어떻게 이 깊은 산속에 살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남편에게 삿대질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을 따라야 하는 것이 여자였다. 농촌총각에게 시집올 때 이미 각오는 했다. 어떤 힘든 삶이 기다린 다해도 남편의 사랑이 있는 한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농촌살이는 살아갈수록 힘들었지만 그만큼 농촌의 삶에 길이 들었다. 이젠 자연을 벗어나 대로변에 나가면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촌 아낙이 되어 가진 것 없지만 행복하다고 자신을 추스르며 살 정도가 되었다. 산속에 있을 때는 모든 게 부유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이 터전에 자리 잡기까지 말로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다옥은 농촌에서 어떻게 뿌리를 박고 사느냐는 친구들의 질문을 받으면 빚으로 산 인생이라 말하며 웃는다.
하지만 빚으로 산다 해도 부러울 게 없는 삶이기도 했다. 자연은 사람들처럼 간사하지 않았고, 가꾸는 대로 자라주었다. 전원생활 운운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전원의 향기 속에서 유유자적할 수 있었다.
“감사원에 또 민원제기를 해 볼까?”
다옥은 남편에게 다시 의견 제시를 했다.
“미쳤어? 한 번 해 봤으면 됐지. 두 번 세 번 해 봐도 마찬가지야. 관행이란 것이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면 벌써 바뀌었겠지. 설계상으론 하자가 없다는데 방법이 생기겠어?”
“그럼 앉아서 당하기만 할 거야? 자꾸 민원을 제기하면 감사원에서 직접 나온댔어.”
“나오면 뭐하냐? 똑같은 대답 들을 뿐이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그럼 당신은 집 옮길 생각이야?”
“하는 수 없지 뭐.”
“말도 안 돼.”
다옥은 입을 다문다. 남편의 속내를 읽고 싶은 마음도 없다. 싸울 상대는 남편이 아니라 관공서라는 높은 벽이지만 아무리 돌아보아도 그 벽을 넘을만한 틈새가 없다. 사방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다행이라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풍월대로라면 아무리 공공사업이지만 요즘엔 개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토지 편입이 어렵다고 했다. 유신정권 때처럼 토지 강제 수용 령이란 것이 있긴 하지만 법이 많이 완화되어 옛날처럼 강제 집행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국민고충 처리 위원회에서 회신이 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