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는 어디에 2

by 박래여

<우리 위원회에서 귀하와 관계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등을 종합하여 판단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신청인의 토지가 피 신청인이 시행 예정인 관광 순환도로 개설공사 구간 기존 도로의 굴곡부에 위치해 있어 도로선형 개량을 위해 신청인의 토지 일부를 도로부지로 편입시킴에 따라 신청인은 도로선형을 계곡부로 변경하여 신청인의 토지가 편입되지 않도록 하여 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신청인이 요구하는 노선은 지형여건상 저수지와 계곡부로 도로 설치가 곤란하고, 종단구배 11%인 도로의 곡선반경 감소와 시거불량에 따라 사고위험 구간이 될 것으로 판단되어 신청인의 노선변경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피 신청인은 신청인과 협의하여 방음벽이나 난간을 설치하여 보완 조치할 계획이다.)

나. 따라서 귀하께서 신청하신 이 사건의 고충민원은 위와 같이 피 신청기관에서 향후 조치계획을 우리 위원회에 통보하여 왔으므로 이 사실을 알려드리고 종결합니다. 끝.


다옥은 어이가 없었다. 이 산속에 방음벽이나 난간이 무슨 소용인가. 돌담과 나무가 울타리가 되어주고, 산그늘이 정원이 되어주는 곳에 방음벽이라니. 우리가 무슨 죄라도 지었단 말인가. 앞이 꽉 막힌 방음벽 속에서 감옥생활을 하라니. 관광순환도로는 누구를 위해 내는 것인가. 기존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면서 산을 깎아내고, 수백 년, 수십 년을 자라온 나무들을 파내고, 길을 넓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수십 년을 가꾸고 다듬어 놓은 옥토와 과수들을 단 돈 몇 푼을 안겨주고 파내어 죽게 하는 것이 개발이란 말인가. 개발이란 명목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는 근절되어야 마땅한 마당에 아직도 농촌의 구석구석에는 구태의연한 사업들이 공공사업이란 명목으로, 지역민의 편의와 부를 위한다는 그럴싸한 명목으로 자행되고 있다. 예를 들면 개인의 이득을 위한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임도 건설이다. 산의 중턱을 무절제하게 깎아내어 허옇게 드러난 산길이 구석구석에 나 있다. 그 길은 차가 다닐 수도 없는 길이 태반이다. 비가 오면 산사태가 나는 곳도 흔하다. 옛날처럼 나무를 해다가 끼니를 해결하는 시대도 아니니 경운기가 다닐 일도 없고, 사람이 사는 곳에 위치하지도 않았으니 차의 왕래가 있는 곳도 아니다. 말 그대로 임도다. 임시로 만든 도로라는 뜻이다. 무엇을 위해 만든 길인지 모르겠지만 아무 쓸모도 없는 길을 내는 것도 공공사업이고, 지역민의 편익을 위해서다. 우리나라 법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이 있다. 법을 잘 이용하면 제 잇속 챙기고도 떡고물이 떨어진다는 우스갯소리도 날아다닌다. 하지만 그것도 머리 좋고, 허우대 멀쩡한 약삭빠른 사람들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지 평범한 농촌사람들에겐 백해무익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사람마다 제 살림터에서 사는 방법이 다르다. 농촌에도 약삭빠르게 제 잇속 챙기며 사는 사람들이 있고, 불평불만으로 허송세월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묵묵하게 땅을 일구어 곡식을 심고 거두는 것에 평생을 바쳐온 사람들이 사는 곳이 농촌이다.


“아이고, 소문에 이 집이 길나는 데 들어간다 매? 우짜노?”

“온 천지가 산인데. 하필이모 너거 집을 가로질러야 한다나?”

“참말로 말도 안 되는 기라. 설령 너거 집이 안 뜯긴다. 캐도 마당이 없어지모 우찌사노? 마당 없는 산속 집이란 기 말이 되나. 염병할 놈들이 저거 편리한 대로 길을 내놓고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구먼.”

다옥은 오며 가며 일부러 들려서 걱정해 주는 마을 사람들이 고마웠다. 그분들의 속내야 어떻든 그렇게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산다는 것이 기껍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만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제 발등에 떨어진 불은 제 스스로 꺼야 한다는 진리만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 한 사람 진정으로 위로하고, 해답을 제시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옥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사람살이가 다 그런 거 아닐까마는 제 발등에 불 떨어지지 않은 이상 강 건너 불 보듯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정이구나 싶어 마음이 울적할 때가 많아졌다.


아무도 다옥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조차도 타인 같았다. 다옥이 얼마나 자신의 집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더 이상 옮겨 다닐 필요가 없는 내 집이란 것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8년 전, 빈손으로 시댁에서 분가를 했을 때는 세상이 온통 어둠이었다. 한창 자라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막막하기만 했다. 남편이 어렵게 산간 오지에 버려진 다랑이를 다져 농지전용 허가를 받아 화전민처럼 허름한 슬레이트집을 손수 지을 때도 살아가는 일이 버거워 숨이 막혔다.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염소를 키우며 사는 것은 고달프고 힘에 겨웠다. 사람과 더불어 사는 맛을 잃어버리고, 아이도 어른도 사람 그리운 정에 허덕거리며 길든 집이다. 집 주위의 나무 한 포기, 풀 한 포기, 날아다니는 자잘한 새나 풀벌레조차 정 붙이지 않은 것이 없다. 말 못 하는 자연에 정 붙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산간 오지에서 이제 겨우 울타리가 짜임새 있어지고, 과일나무에 열매가 달리고, 염소 농장의 간판이 걸렸는데.


한 이년 전만 해도 설마 했다. 외지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더니, 부동산 바람이 불어 민심이 흉흉하더니 길옆의 산이나 다랑이, 묵정 논이 외지인들의 손으로 착착 넘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집을 팔고 농토를 팔았다. 다옥은 들썩거리는 마을 인심을 지켜보면서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그분들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속사정을 들어보면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 해가 다르게 몸은 축나지, 농사일은 중노동이니 일 년 농사짓는다는 것이 노인네들에겐 버거워질 수밖에 없는 이치다. 들 가운데 논이라면 기계에 의존한다지만 산골짜기 천수답 다랑이는 노동으로 이루어지니 해 낼 재간이 없는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임자가 나섰을 때 팔고 보자는 식이 되었고, 그것도 웃돈을 제법 두둑이 얹어주니 이게 웬 횡재냐 하는 의식이 지배적이었다. 뼈 빠지게 농사 지어 봤자 본전도 안 나오고 몸만 병신 되었다면서 물이 짧은 천수답을 제 값보다 많이 받아 횡재했다는 논 임자도 나왔고, 생수 공장이 들어선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공시지가로 치면 몇 푼 나오지도 않는 다랑이가 어느 날 금값이 되어 있더니 땅을 팔 사람들이 거지 다 팔고 나니 난데없이 길이 난다고 야단이더니 관광순환도로가 개설되면 대규모 관광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 소문은 기정사실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미 물 건너 간 자신의 땅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벌써 여러 손을 거쳐버린 땅은 기존 땅 임자가 판 땅값의 두 배, 세 배로 뛰어 있었으니 속병 앓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랬다. 돈 버는 사람들은 우직한 농사꾼이 아니었다. 투기꾼이거나, 감투 쓴 사람들과 수시로 어울려 정보를 캐내는 약삭빠른 사람들이었다.


여러 달이 지났다.

새 천년의 시작을 알린지도 서너 달이 되었다.

푸름이 너무 짙어서 숨이 막히는 늦봄이다.

다옥은 집안 청소를 끝내고 마당에 나갔다. 보릿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잔디밭에 앉아 잔디 사이에 솟은 풀꽃을 뽑았다. 제비꽃, 양지꽃, 개망초, 애기똥풀, 씀바귀 등 자잘한 풀꽃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관상용으로 애지중지 키우는 꽃들에 비하면 꽃 취급도 받지 못하는 풀꽃이지만 농촌 사람들의 심성을 닮은 풀꽃은 보면 볼수록 신비롭다. 길섶에는 좀작살나무 꽃이 지고 나자 찔레꽃이 만발했고, 인동초가 그 우아한 자태를 드러냈다. 너희들이 꼭 내 마음 같구나. 뽑아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것들이지만 뽑을 수밖에 없는 내 심정을 이해하렴. 다옥은 중얼거렸다. 그 풀꽃들이 자신의 속내 같았다. 풀꽃에게서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지만 질기게 살아남으려는 생명의 힘을 보았다. 산속에서 풀을 뽑고 있으면 세상 밖의 소리는 멀리 달아나 버리고 온 세상이 녹색으로만 느껴졌다. 미세한 자연의 소리들이 환하게 가슴에 차 오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울분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다옥은 요 근래 몇 달 동안 술렁거리는 마을을 생각했다. 왜 관공서 사람들은 허가 낸 사업 운운하면서 가만히 두면 서로 의지해 잘 살아가는 농촌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을 긁어 상처를 낼까. 농민을 위한다는 공공사업이란 것이 마을 가운데 길을 이차 선으로 뚫어 차가 쌩쌩 달리게 하고, 보기만 해도 시원한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산의 중턱을 깎아 돌며 무너뜨려서 도로를 만드는 것인가. 등산의 묘미는 걷는 데 있다. 흙과 돌과 자갈이 있는 오솔길을 오르내리는 것이 더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등산로다. 농촌 사람들이 돈 몇 푼에 현혹되어 평생의 터전을 버리고 삶의 터전을 옮기게 만드는 것이 개발이고, 농촌의 부흥이란 말인가. 차라리 그 돈으로 젊은 농어민들이 지고 있는 부채나 탕감해 줄 일이지.


하지만 길이 나는 것이 구체적인 것이 되자 사람들은 서로 간의 눈치를 보며 보상금에 현혹되어 갔다. 터무니없이 많이 줄 턱도 없지만 현 시세는 웃돌 거라는 기대가 난무하는 가운데 어떻게든지 자신의 땅이나 건축물에 대한 보상을 많이 받기 위해 과일나무를 심거나 가건물을 짓거나 하는, 눈에 보이는 얄팍한 짓도 서슴지 않는 사람도 생겼다.


다옥은 얼마 전에 찾아와 언성을 높이던 한 남자가 생각났다. 틀림없이 우리 앞으로 등기가 되어 있는 산인데 그 산이 자기네들 산이라는 것이었다. 자기네 아버지 뫼가 있지 않느냐고. 자기네 산인데 등기이전을 하지 않았다는 억지였다. 우리는 오래전에 그 산 임자에게 정당한 가격을 주고 산 땅이며 그 땅 주인도 이미 분할측량까지 마쳐서 우리에게 등기이전을 시킨 것이라고 말했지만 증거를 보자는 것이었다. 토지대장 사본을 가져다 보여주었더니 누가 죽는가 보자면서 돌아갔다. 그 뒤 말이 없는 것을 보니 사기 칠 상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명절이 되어도 그 묏등을 찾는 자손이 없더니 돈이 된다니까 시도 때도 없이 양복쟁이들이 찾아와 땅의 경계를 묻거나 번지를 물었다. 참 별 희한한 꼴도 다 보았다. 어떤 이는 다짜고짜 쳐들어와 왜 남의 땅에 허락도 받지 않고 집을 지어 사느냐고 큰 소리를 치지 않나. 염소를 자기네 산에 방목한다고 고소를 하겠다고 설치질 않나. 측량 기사를 데려와 제 멋대로 경치 좋은 골짜기는 제 땅으로 넣어서 표시를 해 놓질 않나.


다옥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담담해졌다. 대통령 앞이던, 감사원이든, 환경단체든, 고소든, 고발이든, 해 보겠다고, 농촌 사람들 우습게 보고 펜대 잡은 사람들이 저들 맘대로 주물러 놓은 것에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지 뭐. 설마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사유재산을 주인 허락 없이 강제 집행 할리는 없지. 타협이 안 되면 버텨보는 수밖에. 사방에서 숨통을 조여 오는 눈과 입이 있지만 귀 막고, 눈 가리고 살지 뭐.


부르릉! 길 아래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집배원 아저씨가 왔다는 신호다.

다옥은 반가운 김에 삽짝을 향해 뛰고, 개도 컹컹 짖으며 같이 뛴다. 너도 사람이 반가운 모양이지. 다옥은 개를 쓰다듬으며 빙긋 웃었다.

“아저씨, 좋은 소식 있어요?”

“예. 다 좋은 소식이지 예.”

집배원 아저씨가 건네주는 한 뭉치의 우편물을 받았다. 아저씨를 배웅하고 집으로 들어오며 우편물을 살폈다. 편지와 공과금 납부서 아래 군수가 보낸 우편물이 있었다. 북 찢어서 내용물을 단숨에 읽어나갔다.

<관광 순환도로 개설 공사에 편입되는 귀하 소유 토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보상금을 사정하고 보상금 지급을 통보하오니 구비서류를 지참하여 보상금을 수령하시기 바랍니다.>


다옥은 피식 웃었다. 보상금 책정 가격과 감정가를 비교하면서 오히려 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꼈다. 3천만 원이 안 되는 보상금이다. 담당 업자나 담당 공무원이 사람이라면 이런 가격으로 집을 옮기란 소리는 못하겠지. 우리 집과 논, 산 등, 공공사업 편입 부지에 따른 보상액은 다 합쳐도 산간 오지의 들논 한 떼기 살 값도 되지 않았다. 워낙 공시지가가 낮은 곳이니 자신들도 어쩔 수 없다고 발뺌하겠지. 더 이상 실랑이질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손으로 지은 내 집이며 평생을 살아갈 터전을 단돈 몇 푼으로 흥정을 벌이는 일 자체가 자연을 우롱하는 일이 아닌가. 우리나라는 자유국가 아닌가. 내가 싫다는 데 공권력을 앞세운다면 개인의 권한을 박탈당하고 사는 독재국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 권리는 내가 찾는 것이 마땅한 일이거늘 괜히 속을 끓였다는 것에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었다.


니들 맘대로 해봐. 너희들이야 공사하라고 허가 내주고 책상물림 하며 봉급이나 챙기고, 업자는 공사해 주고 국가 돈 챙기면 장땡이잖아. 니들 세내 끼나 주는 요 보상금으로 너희들 떡값이나 되겠어? 니들이 환경 소중한 줄 어떻게 알고, 농촌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줄 알기나 해? 빌어먹을. 내 땅 내가 못 주겠다는 데 이유 있어? 공사비가 많이 든다고? 니들 사정이야. 머리가 있는 놈이면 생각 좀 해봐. 내 처지랑 너희 처지랑 바꾸어 보면 해답이 나오겠지. 아무리 세상이 백 줄이고, 돈줄이라지만 우리 같은 농사꾼이 있으니 먹고사는 거야.

다옥은 혼자 구시렁거렸지만 속이 풀리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은 출세하고 볼 일이라는 말이 명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 줄, 백 줄 가진 사람이 판치는 세상이니 살맛이 안 난다는 말이다. 삶의 향기는 어디 있는가.


다옥은 마음을 다졌다. 어떻게든 내 권리를 침해당하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싸움을 걸어오면 싸워서 제 값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어딘가 길이 있겠지. 다옥은 그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농사꾼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다. <끝>

DSCN1683.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삶의 향기는 어디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