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망할매1

by 박래여

단편소설

까망할매


우리 동네 혼자 사는 할머니들을 보면 그 노파가 생각난다. 빽빽한 솔버덩 아래 누워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햇살처럼 노파는 수시로 내 기억 속을 들락거린다. 아지랑이처럼 아련한, 그리움이라 할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내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무엇이라 단정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하는 노파였다.

그 후 까망할매는 어찌 되었을까. 어쩌면 공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상인지 알 수 없다. 정말 까망할매는 존재하기나 했던 것일까. 사십여 년 전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까망할매는 낡은 흑백사진처럼 흐릿하고,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살아있기도 하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다.

아직도 봄이라 하기엔 차가운 기운이 몸에 닿는 춥고 허기진 보릿고개 시절이었다. 가난한 산골 마을에 보릿고개가 닥치면 배고픈, 아직 취학 전인 동네 조무래기들은 햇살 잘 드는 담장 밑에 옹송그리고 앉아 반주 깨미(소꿉장난)를 살거나 흙장난을 했다. 보드라운 흙을 물에 반죽하여 기와집도 짓고, 쌀가마니도 짰다. 주로 남자애는 집을 짓고 여자애는 떡과 고기, 과일, 나물 등, 흙으로 음식을 장만했다. 옹기나 사기 조각을 톡톡 두드려 만든 그릇에 음식들을 담아 깨어진 소반 위에 올려 상을 차려놓고 엄마, 아빠 놀이를 했다.

아랫집에 살던 석이와 나는 동갑이었다. 우리는 찰떡궁합처럼 붙어 다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열 두 가구가 사는 우리 동네에서 언니 오빠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같이 놀 친구는 석이뿐이었다.


아요, 심든 데 밥 좀 묵고 하소.

으흠, 그럴까? 출출하는구먼.

석이가 흙장난하던 손을 옷에 쓱쓱 문지르고 상 앞으로 오면 나는 ‘어젯밤에 우리 할배 제사 지냈다고 하자.’며 석이에게 속살거린다. 석이는 ‘거기 더 재미있겠다.’며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람 떡 하고 괴기는 있싱깨 술이 있어야 안 하나. 이걸 술이라고 알았제?

에나에나 날마다 제사라모 올매나 좋것노 그자?

참말로 그라모 내 배가 올챙이 맹키로 불거질 끼라. 그자.

우리는 어머니 아버지처럼 상을 마주 앉아 밥 먹는 흉내를 했다.

어젯밤에 우리 할배가 밥을 마싯게 묵고 갔는 갑소. 떡이고 괴기고 참말로 마싯거마.

하모 조상 모시는 거는 다 정성 인기라. 그래야 복을 내려 주시제. 음식 맹거느라 고상했다. 임자도 술 한 잔 묵어라. 얼큰한 기 기가 맥히다.

아이고 마 넘세시럽게 여편네가 무신 술을 묵소.

지난봄 훼치할 적에 봉깨 술만 잘 묵더마. 자 한 잔 받아봐라.

주책시럽게 와 이라요.

우리는 참으로 맛있는 떡과 고기를 진짜 먹는 것처럼 입을 우물거리다가 마른침을 삼키고, 깨어진 쪽 바가지에 가득 담긴 찬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하이고 금세 바닥이 나것네. 이거는 까망할매 주자.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흙 떡 한 덩이를 담 위에 올려놓았다.


동네 사람들은 아이나 어른이나 그 노파를 까망할매라고 불렀다. 노파는 공동묘지 아래 있는 오두막에 살았다. 공동묘지는 우리 동네 언덕 옆에 있는 무성한 대나무 숲을 지나야 있었고, 아랫 담에 있는 싸개 동네에서는 뒷산이었다. 그 오두막은 싸개 동네에서 뚝 떨어진 곳에 있었다. 오래전에 문둥병자가 살다가 소록도 섬으로 가면서 빈집으로 남아 있던 집에 까망할매가 들어가 살았다.

나는 그 집에 가보고 싶었지만 대나무 숲으로 난 길이 무서웠다. 어둡고 침침한 대나무 숲길은 한낮에도 귀신이 나올 것처럼 을씨년스러웠다. 그 길은 우리 동네에서 싸개 동네에 가는 지름길이었다. 대나무 숲이 어찌나 울창하던지 낮에도 시커먼 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대나무 숲은 낮이고 밤이고 서로 몸을 비비면서 울었고, 우리는 대나무 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귀신 우는 소리로 들었다. 동네 할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대나무 숲에는 공동묘지에 묻힌 몽달귀신이 여럿이 나와서 산다고 했다. 귀신들은 배가 고프면 낮에도 나와 아이들을 잡아간다고 했다. 특히나 예쁘장한 여자아이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그 대나무 숲 가까이 가는 것을 무서워했고, 노파는 대나무 숲 너머에 살았다. 또한 그 오두막은 아이를 데리고 가서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문둥병자가 살던 집이었다.

내 눈은 항상 대나무 숲으로 열려 있었다. 까망할매가 어둠을 뚫고 사뿐히 걸어오는 모습을 기다리곤 했다. 어쩌다 걸어오는 노파를 보거나, 삽짝 옆에 서 있는 노파를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에 앞뒤 생각도 없이 큰 소리를 지르곤 했다.

옴마, 까망할매가 밥 얻으로 왔어.

하이고 우리 집 제산 줄은 우찌 알았시꼬. 인절미랑 밥 한 덩이 하고 나물 좀 주거라.

노파는 삽짝 옆에 붙어 서서 살포시 웃었다. 내가 떡과 나물과 식은 밥을 챙겨 가면 노파는 검은 망태기를 닮은 동냥 주머니를 벌리고 그 안에 든 바가지를 꺼냈다. 바가지에 떡과 나물과 밥을 담아주면 바가지를 망태 속에 조심스럽게 넣고는 망태기의 주둥이를 꼭꼭 여며 잡고 허리를 땅에 닿을 만치 숙여 ‘고맙습니다.’ 절을 했다. 그 겸손하고 다소곳한 모습에는 무언지 모르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엄이 배어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동냥을 주면서도 자신이 부끄러운 짓을 하지나 않았나, 동냥아치 노파라고 괄시 하지나 않았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점이기도 했다.


나는 가만히 노파의 가는 손과 해맑은 얼굴을 바라보곤 했다.

머리에 쓴 저 검은 보자기 안에는 머리카락이 있을까. 없을까. 나처럼 검은색일까. 석이 엄마처럼 달달 볶았을까. 중처럼 빡빡 밀었을까. 생각을 굴리고 있으면 까망할매는 살그머니 돌아서서 잰걸음으로 멀어지곤 했다.

노파는 새소리처럼 맑고 투명한 목소리를 가졌고, 경상도 지방의 산골에서는 좀체 듣기 어려운 서울 말씨를 썼다. 그러나 어지간해서는 나긋나긋한 서울 말씨를 듣기는 어려웠다. 아이들은 노파가 동구 밖에 나타나면 떼를 지어 몰려가 ‘고맙습니다’ 노랫말의 후렴을 불렀지만 노파는 귀머거리처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끈질기게 까망할매, 까망할매, 하면서 노파의 뒤를 쫄쫄 따라다니며 놀리거나 짓궂은 아이들이 나뭇가지로 노파의 치마를 들치면서 괴롭히면 새소리처럼 고운 목소리로 ‘천주님 천주님.’하면서 잰걸음으로 아이들 곁에서 멀어지곤 했다.

천주님이 누굴까. 엄마가 말하는 선녀님이 아닐까.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님의 딸이 죄를 지어 인간세상으로 쫓겨 와 검은 옷을 입고 벌을 받는 것은 아닐까. 저 검은 옷 속에 날개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아는 천주님은 아름다운 날개옷을 입은 선녀였다. 나는 큰 애들 뒤에서 멀어져 가는 노파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어쩐지 노파에게 짓궂게 굴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석아, 까망할매는 온제 올꼬?

우리 할매가 인자 안 올지 모른다더라.

와?

그 사람들이 와서 델꼬 갔다더라.

누가?

나도 모른다.

보고 싶데이. 니는 안 그렇나?

나도 보고 싶다.

‘고맙습니다. 천주님 천주님.’

우리는 노파의 몸짓과 목소리를 흉내 내곤 했다.

그 노파가 우리 동네에 오는 날은 주로 아침밥을 먹은 후 부엌 설거지를 할 즈음이었다. 나는 노파가 대나무 숲 사이 길로 오지 않고 안개를 타고 넘어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농촌 노인네들에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새벽잠이 없는 것이리라. 날이 어둑어둑할 적에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지펴 하루를 시작하고 해가 뜨기 전에 부엌 설거지를 하고는 일터로 나가는 것이 농촌 사람들의 근성이다.

노파는 아낙이 개숫물을 버리러 나서는 시간에 맞추어 삽짝 옆에 서 있곤 했다. 학교에서 선생님 앞에 벌서는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아낙들은 언뜻 눈에 들어오는 검은 옷을 보면 서둘러 식은 밥덩이를 챙겼고, 밥이 없으면 시렁에 걸린 보리쌀 삶아 놓은 바구니를 내려 보리쌀 덩이라도 안겨 주었다. 마치 노파를 굶기면 자기 식구가 다 굶기라도 하듯이.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 시절엔 남의 집을 방문할 일이 있으면 끼니때를 피하는 것이 예의였다. 산골 작은 동네는 다들 끼니 걱정을 하고 살았다. 더구나 보릿고개 철이면 꽁보리밥 한 끼면 점심은 고구마나 감자 등으로 때우고 저녁은 사레기 죽이나 호박 풀데죽 등으로 끼니를 잇는 집이 흔했고, 보리쌀에 가뭄에 콩 나듯 쌀 알갱이를 섞어 먹거나 고구마 감자 등을 섞어 먹는 집은 잘 사는 집이었다. 하지만 끼니때가 되어 찾아든 손님은 동냥아치든, 봇짐장수든, 엿장수든, 빈속으로 보내지 않았다. 고구마 한 조각이라도 나누어 먹을 줄 알던 시절이었다. 네 집, 내 집 사립문 잠글 필요 없이 툭 터놓고 살았다.


그러나 노파는 아무리 권해도 아침에는 절대로 남의 집 삽짝을 들어서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참 뼈대 있는 가문에서 예의범절을 잘 배우고 자란 사람 같다고 혀를 찼다. 비록 온전한 정신은 아니지만. 어쩌면 노파는 온전한 정신을 가졌는지 모른다. 그 시절은 어떤 이유건 간에 여자가 아침부터 남의 집 삽짝을 들어서는 것은 환영받지 못할 일이었다. 여자가 아침 일찍 남의 집에 갔다간 주인으로부터 재수 옴 붙었다고 뒤통수에 소금 세례를 받아야 했고, 여자 목소리가 굵고 높아서 담을 넘으면 못 배워먹었다고 흉 잡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그 노파를 박대하거나 재수 없다고 쫓아버리지 않았다.


요즘도 농촌 노인네들은 아침 댓바람부터 마실 오는 젊은 아낙을 보면 대 놓고 타박은 못하지만 노인네끼리 모여 앉으면 요즘 젊은것들은 예의가 없다는 개탄을 한다. 여자들 살기 참 편한 세상이라고 개탄 반, 부럼 반으로 혀를 차곤 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시골 노인네 사고방식으로는 너그럽게 봐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다른 동냥아치가 새벽 댓바람에 밥 얻으려 왔다면 당장에 빗자루 몽둥이가 날아가거나 소금 세례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또한 노파는 아침에 밥 얻으러 갔던 집에 다음 날 또 가는 법이 없었다. 마을 집을 차례차례 돌고 나면 다른 동네로 옮아가는지 한 동안 보이지 않다가 잊을 만하면 나타나곤 했다. 항상 말 대신 상그레 웃는 웃음이었다. 나이는 어림잡아 육칠 십은 되어 보이지만 아무도 노파의 나이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디서 흘러 왔는지, 무슨 이유로 신발에서 머리까지 까맣게 덮어 씌고 사는지. 검정 고무신에 검정 버선, 땅에까지 닿는 치렁치렁한 검은 치마저고리에 머리카락이 한 올도 빠져나오지 않게 덮어쓴 검은 보자기는 등까지 덮여 있었다. 손에 든 동냥 자루 역시 검은색이었다.

미쳐도 참 곱게 미쳤지. 우찌 저리 엄전할꼬.

미친것도 아니라는 소문도 있더마. 옷 입고 댕기는 거 보모 살짝 돌긴 했는데. 버버리도 아님서 말을 통 안 하니 그 속을 우찌 알것노.

마을 사람들은 노파를 볼 적마다 아까운 사람이라고 혀를 찼다. 행동거지를 보면 배울 만치 배운, 귀한 집 손이거나 귀한 집 마나님일 것이라 했다.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고 비록 동냥질을 하고 다녀도 노파에게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기품이 몸에 배어 있었다.


가을이었다. 어머니는 마당 가득 널린 콩 대에 도리깨질을 하고 있었고, 석이랑 나는 깨진 바가지를 들고 마당가에 튀어나온 콩을 줍고 있었다. 얌전히 콩을 줍다가 싫증 나면 석이에게 콩을 집어던지며 장난질을 하곤 했지만 콩 줍는 일을 재미있었다.

아이고 선이 네는 콩 농사 참말로 잘 지었네. 올해는 콩 지름 걱정은 안 해도 되것다.

삽짝을 들어선 사람은 석이 할머님이셨다.

어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삽짝 옆에 있는 감나무 가지에서 불그스름하게 익어가는 감 서너 개를 뚝 따서 마루 끝에 올라앉았다.

감 한 개 자시 보이소.

하 고놈 맛있것다.

석이 할머니는 마루 옆에 놓인 다듬잇돌에다 감을 올려놓고 주먹으로 힘껏 내려쳤다. 감은 물을 튕기며 쩍 갈라지고 할머니는 사과를 쪼개듯 반쪽으로 한쪽을 베어 물었다. 나는 홍시 주머니가 달린 장대를 들고 빨갛게 익은 홍시를 따겠다고 용을 썼다. 떫은 감은 아이들이 먹으면 변비에 걸린다고 어머니는 못 먹게 했다. 실제로 나는 변비에 걸려 고생을 무척이나 했기에 떫은 감이라면 손사래를 쳤다.

석이와 내가 홍시를 따겠다고 힘에 겨운 바지랑대를 들고 씨름을 하는 사이 두 분은 서늘한 가을바람과 따끈따끈한 햇살을 받으며 자금자금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아까운 사람이제. 무슨 곡절이 있긴 있는 갑다 했더이 서양 귀신이 들었다 안 카나. 저승사자 맹키로 우째서 검정색만 입을꼬. 알고 봉깨 참 희한하더마. 누가 헌 옷을 주모 새까맣게 물을 디리서 입는다 안 카나. 그런 걸 보모 정신이 모지래는 여자도 아닌 기라.

그라고 보니 까망할매가 그 집에 머문 지 꽤 여러 해 됐지 예?

내가 알기로도 햇수로 삼사 년은 족할 끼라.

아지매는 그 집에 가 본기라 예?

하모. 요새는 통 안 오길래 가 봤제. 방문을 열어보니 이불하고 베개만 있고 아무것도 없어. 부석에도 딜다 보니 솥단지만 덩그렇게 걸렀더라. 집 비운 지가 한참 됐는지 청에 먼지가 뽀얗더라. 명경 알 겉이 씻고 닦는다는 소문이더마. 아침에 동냥 밥 묵고 나모 산에 가서 낭구를 해 온다더라. 부석 옆이랑 마당가에는 갈비 단이랑 솔가리가 동개 동개 포개져 있더마. 낮에는 빈 논에 댕김서 이삭을 줍는다 카더이 이삭 주운 포대는 안 보이고.

이삭은 주워서 뭐 한답니꺼?

모르제. 사람들 말로는 이삭 주운 것들이 한 자리되모 어깨에 메고 어데로 갔다가 사나할만에 온다더라. 집을 둘러보고 나오다 그 동네 청남 띠를 만낸 기라. 청남 띠가 그 할망구가 인자 영영 안 올지 모른다 쿠더라.

와 예?

잘 모른다 쿠데. 그 여편네도 정신이 오락가락 하잖어. 저거 아들이 신작로에 놀다가 차에 바치 죽고 살짝 맛이 갔잖어. 요새는 동자 신이 들렀다나 우쨌다나. 저거 아들 죽은 기 까망할매 탓이라꼬 까망할매만 보모 ‘썩 물러가라. 서양 구신 썩 물렀거라’ 함서 훠이 훠이 하는 여편네 아이가. 그 여편네 말이 서양 귀신이 인자 안 올 끼란다. 삐까뻔쩍하는 쬐깬한 빠스 타고 갔다더마. 까망할매가 신작로 옆을 걸어오는데. 시커먼 차가 터억 서더니 젊잖게 생긴 양반이랑 젊은이가 내리더란다. 젊은이가 그 할망구를 덥석 보듬어서 차에 태우고 갔단다. 그 할망구가 안 탈라꼬 앙탈을 친깨 ‘어머니 제발 이러지 마셔요’사근사근한 서울말이더란다.

그라모 뜬소문이 참말로 맞는 갑네 예.

하모.


나는 석이 할머니 입에서 뜬소문의 내용을 듣고 싶었지만 석이 할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떫은 감 반개를 우적우적 깨물어 먹고 석이 손을 잡고 갔다. 노파에 대한 호기심만 부쩍 생겼다. 한편으로는 동네 궂은 소문은 다 퍼뜨리고 다니는 석이 할머니가 어째서 노파에게 저러듯 살갑게 굴까 싶어 무척 신기했다.

예나 지금이나 동네마다 입담 걸고, 욕 잘하고, 남의 험담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집 가서 이 말하고, 저 집 가서 저 말하여 이웃 간에 이간질하고 싸움 붙이는 것을 재미로 아는 사람이 석이 할머니 같은 사람이지만 심성이 나쁜 것은 아니다. 입이 거칠 뿐이고, 무엇이든지 속에 담아놓기보다 내뱉기를 좋아하는 성격일 뿐이다.

까망할매가 우리 집에 쌀 자리를 놓고 간다.

석이가 비밀을 누설하면 큰 난리가 난다는 듯이 내 귀에 속닥거렸다.

아항, 그래서 석이 할머니가 까망할매라면 껌뻑 죽는시늉을 하는구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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