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어머니는 따뜻한 밥 한 숟가락 먹고 가라고 삽짝에 붙어선 까망할매를 붙잡았다. 노파는 어머니 손을 맹렬하게 뿌리치고 저만치 달아나 버렸다. 어머니는 ‘내가 잘못했소. 밥이나 받아 가소.’하면서 노파를 불렀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대나무 숲 속으로 난 길로 숨어버렸다.
내가 잘못 한 기라. 불쌍해서 밥 한 상 차려 줄라 캤더이 저리 도망갈 줄 누가 알았노. 아무리 쌀 얻는 집, 밥 얻는 집이 따로 있다지만 그 말을 안 믿은 내가 잘못한 것이제.
어머니는 마루에 걸터앉아 넋두리를 했다.
노파는 절대로 집안에 들어오는 법도 없었고, 동냥아치가 흔히 그러하듯 이것저것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는 대로 받지도 않았다. 밥을 얻는 집과 쌀이나 보리쌀, 잡곡을 얻는 집이 따로 있었다. 우리 집에는 밥을 얻으려 왔다. 어쩌다 생선 구운 것을 주면 살그머니 돌담 위에 올려놓고 가 버렸다. 오직 보리밥 한 덩이와 나물 한 가지면 족했다. 어머니는 까망할매가 다시 들릴 즈음이면 일부러 밥 한 그릇을 퍼 담아 살강에 올려놓곤 했다.
석이 할머니 말이 맞는 것일까.
나는 언젠가는 꼭 까망할매에게 직접 물어보리라 다짐했다.
까망할매가 다시 마을에 나타난 것은 대나무 숲에 부드러운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고, 싱그러운 바람이 대지를 어루만지며 가녀린 나뭇가지에 입맞춤하는 그런 봄날 아침이었다.
그날 아침 나는 느낌으로 알았다. 까망할매가 대나무 숲으로 난 길에서 나를 기다리는 줄을. 대나무 잎들이 속삭였다. 깨어나, 깨어나 하고. 푸르디푸른 대나무 잎들이 사그랑 사그랑 울면서 나의 새벽 단잠을 깨웠다. 이불속에서 기어 나온 나는 선잠 깬 눈으로 지게문을 살짝 열고 대나무 숲을 바라보았다. 안개에 싸인 대나무 숲은 신비로웠다. 바람이 살랑거릴 적마다 안개는 선녀의 날개옷처럼 하늘거리며 날아오르고 그 아래는 굵고 곧은 대나무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대나무 숲은 마치 나에게 이리로 오셔요. 하면서 손짓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살그머니 일어나 삽짝을 나섰다. 어머니는 아궁이 앞에서 불을 지피고 계셨다.
동네는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샘터 곁을 돌아 대나무 숲으로 가는 언덕길을 걸어 올랐다. 그 길은 석이 네 돌담을 끼고돌아 올라야 했다. 석이 네 집은 조용했다. 석이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석이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까망할매는 나만 원한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나는 두려움을 극복하듯이 조심스럽게 대나무 숲을 향해 걸어갔다. 아마도 누군가 아침 댓바람에 대나무 숲을 찾아가는 나를 봤다면 당장 이런 소문이 돌 것이다.
아이고, 모단 띠 딸 선이가 말이다. 새복 이슬을 맞고 돌아 댕기더라. 멍청해 가꼬 내가 선아 불러도 모리고 가더라니까. 그것도 저 대숲으로 난 길을 겁도 없이. 그 아도 서양 귀신한테 씐 긴가 모르것다.
꼭지라는 아이가 아랫동네에 살았다. 나보다 예닐곱 살 정도 많았으니까 지금은 오십이 넘었을 것이다. 꼭지 엄마가 유부남과 눈이 맞아 낳은 아이라 했다. 본댁이 알고 난리굿을 피우고 나서 꼭지 아버지와 헤어진 꼭지 엄마는 꼭지를 낳아 친정에서 살았다고 했다. 꼭지가 대여섯이 되자 상처한 홀아비를 만나 시집을 가면서 꼭지는 외가에 떨어뜨리고 갔다. 그 아이는 밤만 되면 온 들판을 헤매고 다니다 들어온다고 했다. 맨발로 어디를 얼마나 다녔는지 발바닥에 생체기가 나서 피가 흥건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꼭지 외할머니는 아이에게 ‘잠자다가 말고 왜 나갔느냐’고 아무리 다그쳐도 아이는 모른다고 했다. 외할머니가 매로 때리면 아이는 울면서 ‘꿈에 옴마랑 같이 숨바꼭질하고 놀았다’고 했다.
비러 묵을 년이 아 새끼는 내질러놓고 서방은 말라고 얻어서 가노 말이다. 이 천하에 독한 년. 저 불쌍한 것을 우야모 좋노? 올매나 저거 에미가 그리브모 저럴꼬.
꼭지 외할머니는 그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꼭지는 어디서 어떻게 살까. 이웃집 봉이 할머니를 볼 때마다 꼭지가 생각난다. 봉이 할머니는 외동딸이 있었다. 그 딸을 시집보냈는데. 그만 몹쓸 병에 젊은 딸이 죽고 사위가 새 장가를 들면서 명이와 상이라는 외손자를 봉이 할머니께 맡겼다. 봉이 할머니는 외손자와 외손녀를 키웠다. 자리가 잡히는 대로 명이와 상이를 데려가겠다던 사위는 자식들이 중학생이 되도록 코배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생활비 명목으로 참새 먹이만큼 보내주는 돈이 전부였다. 생활보호 대상자였던 할머니는 취로 사업을 하려 다녔다. 국가에서 주는 일당을 받고 도로변 풀을 베거나 청소를 하고, 꽃을 심거나 가꾸려 다녔는데 그날 아침은 유난히 추웠었다. 새벽밥을 지어먹고 집을 나서다 삽짝에서 쓰러진 할머니는 사흘 만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봉이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사위는 어쩔 수 없이 두 아이를 데리고 갔다. 그 아이들은 잘 살고 있을까. 나는 가끔 농촌 정서에 길들여진 인사성 밝고 맑았던 그 아이들을 생각한다.
요즘 농촌에는 부모의 이혼으로, 사별로, 생활고로 자식을 늙은 노인네들에게 떠 넘겨버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개탄할 일이지만 그 아이들이 농촌에서 자랄 수 있다는 것은 복된 일이 아닐까.
어쨌든, 그때 나는 대나무 숲길 앞까지 갔다. 아마도 내 정신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어떻게 내가 낮에도 무서워하던 그 길을 걸어 올라갔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분명 무엇인가가 끌어당기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대나무 숲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산으로 오르는 길과 싸개로 가는 길이었다. 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아름드리 밤나무가 나란히꼴로 서 있었다.
나는 대나무 숲으로 난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어둑어둑한 숲에서 새들이 재재거리고 푸덕거리며 날아오르기도 했다. 나는 검은 아가미를 벌린 숲 앞에 오뚝하니 쪼그리고 앉아 숲 입구를 바라봤다. 사락사락 가랑잎 밟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숲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여차하면 도망 칠 참이었다.
아가. 겁내지 마라.
까마귀처럼 검은 옷의 까망할매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리 오렴. 이리 와 봐. 새알 보여 줄 깨.
나는 무서웠지만 까망할매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떼어놓았다. 노파의 맑은 눈빛과 부드러운 미소는 이미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있었다. 나는 거역할 수 없는 힘에 끌려 노파에게 다가갔다.
아직 밥때가 멀었구나. 저기 앉자.
노파는 내 손을 잡아끌며 대나무 숲 속으로 들어갔다. 대나무 숲 길 옆에 너럭바위가 하나 있었다. 서너 사람은 앉아도 될 만큼 너른 바위였다.
이 바위는 내 자리란다. 밖에서는 잘 안 보여. 이젠 우리 자리지. 눈 감아 봐. 너 주려고 가지고 왔단다.
나는 눈을 감았다. 노파는 내 손바닥에 구슬처럼 동그랗고 따뜻한 것을 올려놓았다.
이젠 눈 떠도 돼.
내 손바닥 안에는 하늘빛이 나는 파르스름한 새알이 놓여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예쁘고 신기했다. 나는 새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가끔 울타리에서 새 둥지는 발견했지만 내가 그 속을 들여다볼 때마다 새알은 없었다. 나는 참새 집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속에서 참새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곤 했으니까. 그 보다 더 희한한 것은 까망할매가 내게 말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그렇게 가까이에서 까망할매를 본 적이 없었다. 까망할매의 눈 속은 너무도 맑아서 파란 하늘 같았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까망할매의 눈을 들여다보며 살그머니 웃었다. 노파도 웃었다. 하얗고 고른 이빨이 살짝 보였다. 노파는 자기 옆에 앉으라는 듯이 자리를 조금 비켜주었다. 나는 노파 옆에 앉아 우리 동네를 바라보았다. 대나무 사이로 우리 동네가 환히 내려다 보였다. 초가지붕마다 뽀얀 연기가 안개처럼 퍼지고 있었다.
노파는 내 눈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눈이 참 맑은 아이구나. 널 보면 내 딸이 생각난단다. 어찌나 예뻤는지. 품에 안고 있으면 세상이 다 환해지곤 했지.
할매 딸은 오데 있는데?
저어기 하늘나라에. 내가 우리 옥란이를 하늘나라로 보냈단다. 내 죄를 사하여 주십사 하고. 이 손으로 말이다. 이 손으로.
갑자기 까망할매는 자신의 두 손을 쫘악 벌려서 내 목을 감싸 안았다. 나는 하마터면 고함을 지를 뻔했지만 고함을 질러서는 안 될 것 같아 꾹 참았다. 숨이 컥컥 막혔다. 내 목을 쥔 까망할매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몸을 비틀면서 내 작은 주먹으로 까망할매의 가슴을 때렸다.
우리 옥란이, 우리 옥란이. 주님 용서해 주소서.
까망할매의 눈에 눈물방울이 맺히면서 내 목을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나는 털썩 노파의 가슴에 엎어졌다. 노파는 낭패한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노파는 소맷부리로 내 이마에 맺힌 진땀을 정성스럽게 닦아주며 중얼거렸다.
아가야. 미안하구나. 내가 무슨 짓을 했지? 용서해 다오.
이상하게도 나는 편안했다. 오히려 내 목을 쓰다듬는 까망할매의 부드러운 손길에 마음이 놓였다. 까망할매는 댓잎이 하늘거리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나도 까망할매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봤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아침 햇살이 대나무 사이로 부채 살처럼 퍼졌다.
까망할매는 검은 치마를 걷어 내 몸을 포옥 감쌌다. 나는 할머니의 치마폭이 따뜻한 솜이불 같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까망할매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소리는 은은한 댓잎 소리 같았고, 겨울 골짜기에 흐르는 맑은 물소리 같았다.
아가야, 우리 옥란이는 천주님이 주신 아이였단다. 어떻게 내가 그 아이를 버릴 수 있었는지 아직도 모르겠구나. 그 아이가 내게 온 것도 천주님의 뜻이었을 텐데. 나는 무서웠단다. 천주님이 무서웠고, 사람들이 무서웠단다. 나는 너만 할 때부터 천주님을 모시기 위해 태어난 아이라고 했어. 오빠는 신부님이셨지. 오빠를 따라 수녀가 되어 하나님과 결혼을 했지. 너도 알지? 오래전에 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전쟁이 일어났단다. 모두들 제정신이 아니었어.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만큼 절박한 시절이었지. 나는 싸개처럼 조그마한 시골 마을의 수녀원에 있었지. 그 마을도 전쟁으로 술렁거렸어. 전쟁은 온전한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이었단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쉬쉬하면서 남의 눈치를 보고 제 앞가림을 하느라 제정신 가진 사람이 도리어 이상한 그런 시절이었단다. 그즈음 내가 속한 수녀원으로 피신해 온 남자가 있었단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영혼을 빼앗겨버렸던 거야. 나는 천주님보다 더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그 사람은 말 한마디 없이 사라져 버렸단다. 내 뱃속에 우리 옥란이가 자라고 있었는데. 우리 옥란이는 그렇게 전쟁의 와중에 태어났단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그 아이를 하나님께 돌려보냈어. 그리곤 오래도록 앓았지. 전쟁이 끝난 후 그 사람이 나를 찾으러 올 때까지 나는 정신병원에 있었단다. 그 사람을 만나 가족들의 축복을 받으며 가정을 꾸렸고, 또 아이가 태어났지. 하지만 나는 내 아들을 사랑할 수 없었단다. 내 아이는 오직 옥란이 뿐이었어. 내가 지어준 이름 옥란. 구슬처럼 푸른 아이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란다. 아들이 자라 장가를 들고 나서 나는 집을 나왔단다. 어디를 쏘다녀도 우리 옥란이를 찾을 수가 없구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내 검은 치마폭에 쌓여 너처럼 잠자던 아이, 그 아이가 아무 곳에도 없구나. 아가야, 우리 옥란이 만나면 이 어미가 찾는다고 전해주렴. 내 아이, 내 사랑스러운 아이가 너무 그립구나.
내 볼에 노파의 따뜻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아가야? 선이라고 했지? 나는 우리 옥란이를 만나면 꼭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단다. 우리 옥란이도 좋아할 거야. 우리 옥란이는 어디 있을까?
나는 가만히 까망할매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나는 두 손으로 까망할매의 목을 껴안고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 볼은 얼음처럼 차갑고 투명했다.
아가야, 이젠 가거라. 어머니가 기다리시겠다.
까망할매도 같이 가.
까망할매는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어서 가라고 내 등을 떠밀며 대나무 숲길로 총총히 사라졌다.
나는 오래도록 대나무 숲길을 바라보았다. 까망할매의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날 아침 까망할매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았고, 나는 어머니께 새벽 댓바람부터 계집애가 싸돌아다닌다고 꾸지람을 들었다. 나는 까망할매랑 있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까망할매는 어디서 밥을 얻어먹었을까?
나는 까망할매가 굶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께 억지를 부려 누룽지를 얻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혹시라도 까망할매를 다시 만나면 주려고.
그날 이후 까망할매는 우리 동네에서 구걸을 오지 않았다. 가끔 대나무 숲길을 걸어와 샘터를 지났지만 되도록이면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이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잰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가곤 했다. 까망할매의 오두막에서 대나무 숲길을 거쳐 골목을 빠져나가 모롱이 하나를 돌면 장터로 가는 큰길이 있었다. 까망할매는 그렇게 한 번씩 우리 동네를 돌아서 내려갔다. 나는 까망할매가 일부러 나를 보기 위해 우리 동네를 거쳐 간다고 생각했다. 나는 멀리서 까망할매의 치맛자락이 땅을 스쳐 지나가는 소리를 듣곤 했다. 석이와 둘이 감나무 밑에서 소꿉놀이를 하다가도 까망할매의 기척을 알아채곤 했다. 석이가 까망할매! 하고 부르면 못 들은 척 걸어가지만 까망할매의 뒤통수에는 보이지 않는 눈이 달린 것 같았고, 까망할매가 끊임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나는 까망할매를 만나고 싶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까망할매와 나의 만남이란 멀리서 바라보고 잠깐 눈을 마주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까망할매를 바라보면 방긋이 웃었고, 까망할매는 보일락 말락 한 미소를 머금고 돌아서서 사라지곤 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환해지곤 했다. 까망할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옥란이란 아이가 부럽기도 했다.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니는 참 이상하다. 까망할매가 가는 걸 우찌 알았노?
고마, 나는 고마 알 수 있다.
나는 으쓱댔다. 석이도 까망할매와 나만의 은밀한 만남을 눈치 채지 못했다. 까망할매는 내가 보고 싶으면 동네에 나타난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참말로 요상하다. 까망할매가 도통 밥 얻으로 안 오니 무슨 일인지 모르것네. 우리 동네 사람들이 서운케 했시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구마.
가끔 어머니는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속으로 배시시 웃었다. 까망할매가 우리 동네에 구걸을 오지 않는 이유를 나만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신기한지. 하마터면 어머니께 비밀을 이야기할 뻔했다. 나는 날마다 까망할매를 기다렸다. 새벽마다 일어나 살그머니 대나무 숲길 앞에까지 갔다 오곤 했다. 어쩌면 까망할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쏟아지는 잠을 밀어내고 찾아 간 자리엔 늘 회색 바위만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내가 까망할매의 딸과 닮았는지 어떤 지를 묻고 싶었지만 까망할매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은 갔다.
나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까망할매를 못 본 지도 꽤나 되었다. 내 가슴에 이름표와 손수건이 달리면서 무척 바빠졌다. 아침마다 석이랑 손을 잡고 학교에 가는 것이 어찌나 신이 나는지 까망할매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삼월 어느 아침, 나는 누군가의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습관처럼 대나무 숲을 바라보았고, 나는 반사적으로 그곳에 까망할매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밤사이 내린 봄눈이 대나무 가지가 휘어지도록 소복소복 쌓인 날 아침이었다. 나는 벽에 걸린 언니의 두꺼운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대나무 숲 앞에까지 갔다. 미끄러지고 엎어지면서 내 코는 빨갛게 익었고, 손은 푸르죽죽했지만 따뜻한 봄 햇살은 벌써 곧은 대나무 가지에 앉아 온 산야를 쓰다듬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하얀 눈이 보드라운 솜이불처럼 드리워진 대나무 숲에는 눈들이 녹으면서 내는 소리가 푸들거렸다. 눈의 무게에 짓눌러 휘어졌던 대나무가 눈을 털어내고 곧게 서면서 내는 소리는 휘파람 소리처럼 맑고 경쾌했다.
까망할매!
나는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이 까망할매를 불렀다. 기척이 없었다. 눈빛에 반사되어 대나무 숲길이 환히 열려 있었다. 나는 숲이 끝나는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다만 까망할매가 다녀간 흔적인 발자국만 가지런히 대나무 숲길로 나 있었다. 할머니가 왔었구나.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까망할매의 발자국을 따라 숲길로 달려갔다. 대나무들이 우우 울면서 눈 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오제미(모래나 쌀, 보리, 콩 등을 넣어 만든 공 비슷한 놀이 기구) 던지기를 하듯이 대나무들이 눈송이를 털어냈다. 나는 하얗게 눈을 덮어쓴 채 달렸다. 까망할매의 발자국을 따라 달리기 뛰어가기 시작했다.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까망할매를 만나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동안 내가 할머니 생각을 하지 않아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도 말하고 싶었다. 이젠 낮에 우리 동네를 지나가도 내가 없을 것이라는 말도 하고 싶었다.
나는 처음으로 싸개 동네와 우리 동네를 갈라놓은 그 무성한 대나무 숲을 벗어나 공동묘지가 있는 언덕에 서서 싸개 동네를 바라보았다. 내가 서 있는 언덕 아래 어딘가에 까망할매가 사는 그 집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은 점 같은 까망할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눈 위에 찍혀 있던 작은 발자국도 언덕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까망할매!
나는 힘껏 불렀다.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싸개 뒷산에 가서 부딪혀 다시 돌아왔다. 바람이 눈가루를 휘날릴 때마다 대나무들이 거칠게 울었다. 그날 아침 나는 온 세상이 하얀 그곳의 언덕 위에서 여기저기 봉곳봉곳 솟은 흰 무덤을 보았다. 무덤 속에서 누군가가 속살거렸다. 까망할매는 더 이상 네 친구가 아니야. 돌아가, 돌아가, 하는 소리가 들었다.
나는 돌아섰다. 정신없이 대나무 숲길을 달려 나와 까망할매와 내가 만나던 너럭바위까지 왔다. 우리 동네 초가지붕마다 하얀 연기가 고물고물 피어오르고 있었다. 까망할매가 앉았던 바위에도 눈은 소복하게 쌓여 있었지만 어쩐지 더 불룩하게 솟아올라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손으로 눈을 쓱 썰었다. 그 속에 긴 은빛 머리와 쌍꺼풀진 커다란 눈, 연두 빛 긴치마와 잠벵이 비슷한 웃옷, 연두 빛 구두를 신은 너무도 신비로운 서양 인형이 누워 있었다. ‘ 옥란이구나.’ 나는 인형을 꼭 끌어안고 언덕길을 내려왔다. 그날 나는 알았다. 우리 동네에서도, 싸개 동네에서도, 신작로나 장터에서도 더 이상 까망할매의 모습을 볼 수 없으리란 것을.
세월은 흘러갔고 까망할매는 내 기억에서 지워졌다. 내 친구 옥란이는 오랫동안 나와 동고동락했지만 어느 날 내 책상 위에서 까망할매처럼 사라져 버렸다. 한 동안 섭섭했지만 더 이상 인형은 내게 소중하지 않았다. 나는 까망할매를 잊었듯이 옥란이 인형도 잊었다.
이제 나는 중년이다. 어린 기억조차 아리송할 만큼 나이를 먹었고, 싸개처럼 작은 마을에서 가정을 꾸려 산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문득문득 어릴 적 기억을 되새기는 일이 많아졌고, 혼자 사는 농촌 할머니들을 보면서 까망할매를 떠올렸다. 잊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습관적으로 번 더 눈여겨보는 버릇도 까망할매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까망할매는 내 어린 날, 꿈의 뜨락에 핀 검은 꽃이었는지 모른다. 그 꽃 때문에 내 삶의 터전이 농촌 마을이 된 것은 아닐까. 아무리 작은 꿈이라 해도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아주 소중하고 넉넉한 것이 꿈 아닐까.
까망할매는 그 후 정말 어찌 되었을까. 가족에게로 돌아갔을까? 아직도 전국을 떠돌며 옥란이를 찾고 있을까? 물론 지금은 고인이 되었겠지만 여전히 까망할매가 그립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