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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y 08. 2022

35. 노부모를 모시는 자식들

노부모를 모시는 자식들     


  부모를 요양원에 입소시키고 싶은 자식은 없을 것이다.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건강하게 당신 자리에서 사시다 자는 잠에 저승길 가면 그 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이다. 자식은 노쇠한 부모라도 치매나 노망으로 정신이 망가지지 않기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살지 않을까. 부모를 한집에서 모시지 못하는 맏자식일수록 마음고생하지 않을까. 차남 차녀라도 직접 부모를 모시면서 산전수전 겪는 자식이 있다. 결국에는 요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면 마음고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부모를 모셔보지 않은 자식은 부모를 모시는 형제자매의 애환을 알 리 없다. 


  두 어른 때문에 힘든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겨온 우리 부부다. 노인의 뜻을 받들며 살았지만 결국에는 요양원 입소를 생각하게 되었다. 백 살이 코앞인 치매노인 두 어른을 요양원으로 모신다고 하자 다른 자식들은 우선 반감을 표시한다. 요양원에 모시기를 싫어한다는 뜻이다. 내가 두 노인 모시기 힘들다고 푸념할 때는 ‘요양원으로 모셔라. 고생 그만하고.’ 그러더니 막상 모셔야겠다고 하니 반응이 부정적이다. 정작 자기들은 단 일주일도 두 어른을 모시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두 어른 곁에 산다는 것만으로 모든 짐을 질 수는 없다. 삼십 수년을 두 어른을 모셔온 나로서는 목구멍까지 꽉 찬 불평불만이 어찌 없겠나. 


  어느 집이나 노인이 오래 살면 형제자매들 간에 다툼이 있다는 것도 안다. 노인을 모시는 부부 사이에도 틈새가 벌어지고 이혼하거나 별거를 하는 집도 있다. 노인 때문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깊이 들어다 보면 나는 맡기 싫고 다른 형제자매가 맡아주길 바라는 이기심이다. 그 이면에는 ‘나도 자식 노릇 할 만큼 했다.’는 자아도취가 도사리고 있다. 노부모를 모시는 사람은 날마다 숨이 차도 불효자가 되고, 일 년에 한두 번 다녀가면서 용돈 내놓는 자식은 효자가 된다. ‘우리도 자식 도리 할 만큼 했다.’는 자기기만에 빠진다. 

 

 보통 부모를 모시는 자식은 여리고 정이 많은 착한 자식이다. 며느리 역시 그렇다. 우리도 늙어 가는데 늙은 부모를 나 몰라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를 모시던 자식이 힘에 부쳐 요양원으로 모시면 정신 줄 놓지 않은 노인은 집에 가고 싶다고 애걸복걸한다. 면회를 갔다가 부모의 애걸복걸을 외면할 수 없어 모시고 나가는 자식도 있다. 부모를 직접 모시면서 겪는 우여곡절 끝에 부모를 모셔왔던 형제자매를 이해하게 되고, 노인을 요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결국 노인은 요양원에서 돌아가시게 된다.

 

 현대 사회를 사는 노인은 대부분 비슷한 전철을 밟는다. 부자 자식을 둔 노인은 좋은 요양원에서 여생을 살다 갈 수도 있지만 돈 걱정하며 사는 자식은 그 돈 때문에 갈등을 빚는다. 요양원이든 요양병원이든 돈이 들기 때문이다. 돈 없으면 요양원에도 못 가고 그냥 죽어야 한다는 말이 회자되는 세상이다. 노인을 요양원에 입소시켜놓고 연락처를 끊어버리는 자식도 있다. 십시일반으로 내겠다고 한 요양비를 안 보내주자 보호자였던 자식은 뒷감당을 못해 부모를 포기하기에 이르기도 한다. 

 

 나도 막상 두 어른을 요양원으로 모실 생각을 하자 마음이 되다. 농부도 나도 말을 삼가게 된다. 서로 힘들어서 마주 보기도 어렵다. 시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하자 당장 시어머님 모시기가 되다. 주중 5일의 점심과 청소 빨래는 요양보호사가 해결해주지만 아침과 저녁, 주말은 농부 몫이 되었다. 정신도 없고 자기표현조차 힘든 치매노인은 기저귀를 흥건하게 적시고도 가만히 있다. 줄기차게 화장실을 가려고 하지만 뒤처리 기능이 마비되었다. 그런 노모를 혼자 둘 수도 없는 형편이다. 누군가 24시간 붙어서 간병을 해야 한다.

 

 다행히 시어머님의 요양원 입소가 빨리 결정되어 연락이 왔다. ‘어쩔 거요?’ 물었다. ‘보내야지 별 수 있나.’ 농부도 힘들어 못하겠단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나가 코로나 검사를 하고 건강검진을 했다. 의료보험 조합에 들려 요양원 입소 신청서를 뗐다. 약도 챙기고 처방전도 챙긴다. 시어머님은 농부가 하자는 대로 따른다. 생각 없는 얼굴은 편안하다. 아직 뇌 좋아지는 영양제와 몸에 좋은 건강식만 찾으며 죽음을 거부하시는 시아버님보다 낫다. 시모는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인간의 일생이 슬프다. 지금 시아버님 연세인 96세 때 <백 년을 살아보니> 수필집을 내신 김형석 옹의 근황은 어떨까. 

 

 자식은 아무리 연세가 높은 부모라도 아프다면 병원 모시고 갈 수밖에 없다. 시아버님을 요양원 대신 병원에 모시고 갔다. 온갖 검사를 다 했다. 혈소판 수치가 모자란다는 의사의 진단이 나왔고 이틀에 걸쳐 수혈을 했다. 수혈과 영양제를 주입하고 살만 해지자 밤낮을 잊어버리고 전화를 하신다. ‘뇌 영양제 먹던 것 챙겨 오너라. 귀이개 가져 가져오너라. 손톱깎이 가져오너라. 집에 가야겠다.’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새벽 서너 시도 좋고 대여섯 시도 좋다. ‘아버지 지금 새벽 다섯 시도 안 됐어요.’ 한 마디 했더니 노발대발한다. 당신에게 말대꾸했다고. 또 전화를 하시고는 우체국에 가서 택배로 부치란다. 한숨만 나온다. 그런 세월을 참 오래 견뎌왔다. 

 

 시집 온 이래 두 어른 곁에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봐 온 나는 시어머님은 뇌에 이상이 있는 치매지만 시아버님은 노망이라고 진단한다. 시어머님은 3년 전 뇌경색 수술로 말하는 기능과 대소변 기능을 잃어가지만 시아버님은 노화에서 오는 망상에 잡힌 외향적 치매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당신 뜻대로 안 되면 화를 부리는 것, 당신 말이 법이다. 당신 뜻대로 하던 젊은 시절에 갇혀버린 것 같다. 어쩌면 그 이면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내재한 탓은 아닐까. 절대로 죽고 싶지 않다는, 죽음에 대한 각박 증 치매는 아닐까.  

 

 농부는 시어머님 아침을 챙겨드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를 만나 아버님에 대해서 조언을 구해봐야겠단다. 노망에 이르는 길은 개개인의 차이지만 옛 성인은 왜 졸수라는 말을 썼겠나. 90세를 졸수라 한다. 죽어야 할 나이라는 뜻이다. 농부 역시 눈에 이상이 생겼다. 스트레스에서 오는 신경성 이상 반응 같지만 정확한 검사를 해 봐야 알 것 같다. 자식 노릇 하기도 힘들고, 잘 늙기도 힘든 삶이다. 나도 오래 사는 것이 두렵다. 자는 잠에 갈 수 있기를. 아들이 온단다. 기다리면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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