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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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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y 11. 2022

36. 초짜 농사꾼을 보며

초짜 농사꾼을 보며     


  왜 사람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기보다 자기 말을 우선하고 상대방의 말 중에 자기가 듣고 싶은 말에만 꽂힐까. 남의 말을 잘 듣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남의 말을 잘 듣기 힘들다. 자기에게 이로운 말에만 현혹되는 경향을 가진 것이 사람일까. 가르치고 배우는 자세도 그렇다. 아무리 좋은 스승이라도 배우려는 자세를 갖추지 않은 제자라면 스승의 말은 무용지물이다. 스승의 말 한마디가 피가 되고 살이 될지언정 들을 준비가 안 된 제자에게는 허공 중에 떠도는 먼지에 불과하다.

 

 새벽바람이 찼다. 농부는 어스름을 뚫고 단감 과수원에 유황 방제를 나갔다. 우리가 짓던 단감 과수원을 임대한 청년은 초짜 농부라 가르치기 힘들어 애를 태운다. 농부는 ‘말을 안 들어요. 말을’하면서 역정을 낸다. 유황도 미리 준비해야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아직 준비가 안 됐단다. 단감나무 잎눈이 떠지기 전에 유황 살포를 해야 방제 효과가 난다. 잎사귀가 벌어질 때 치면 이파리가 해를 받는다. 떡잎에 문제가 생기면 단감수확에 차질이 생긴다. 모르면 자꾸 물어야 하는데 농부가 일일이 전화하고 만나서 가르쳐야 할 지경이다. 물론 청년이 여러 가지 일을 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인지 모르겠다. ‘자잘한 농사 탁 접고 단감농사에만 집중해라. 그래야 결실을 본다.’ 아무리 말해도 쇠귀에 경 읽기란다. 


  오전 열 시경 농부는 피로에 젖은 몸으로 돌아왔다. 청년이 왔었냐고 물었다. 단감 산에 오긴 왔는데 ‘아무리 말해도 안 된다.’며 속상해한다. 우리가 만들어둔 유황으로 청년이 짓기로 한 감나무에 같이 치면서 가르치다가 화가 나서 혼자 쳐 보라 하고 왔단다. 단감 가지 친 것도 약 칠 때 걸린다며 다 걷어내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정리가 전혀 안 됐단다. 고전을 면치 못 하고 있을 청년이 떠오른다. ‘고집 센 청년이니 알아서 하겠지. 당신 할 도리만 하면 됐소.’ 소를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지만 강제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  

 

 시댁에서 분가를 했을 때다. 농사짓는 일은 가혹했지만 그보다 더 가혹한 것은 농부에게 지청구 듣는 일이었다. 내 딴에는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인데도 농부는 반 맘에도 안 차했다. 뒤처리도 제대로 못하고 하나에서 열까지 가르쳐야 한다면서 화를 냈었다. 나는 나대로 힘들어 날마다 코피를 쏟을 정도로 중노동에 시달리는데도 그랬다. 농부는 평생을 촌부로 살아온 시어머니와 손발이 척척 맞았다. 농부가 눈짓만 해도 어머님은 알아듣고 척척 앞가림을 해 주고 뒤처리를 해 주는 것에 길들었던 사람이니 오죽하랴.

 

 나는 시어머니와 비교당하는 것부터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농사는 인이 박혀야 한다는 말을 실감했다. 농부가 짜증 낼수록 나는 농사짓기가 버겁기만 했다. 시댁 농사도 우리가 지어 드렸다. 시어머님은 젊은 며느리를 부리려 들었지만 농부는 일의 똬리를 알아 척척 챙겨주는 시어머님을 더 찾았다. 시어머님이 지금의 내 나이였으니 노인이었다. 살림 살아주던 며느리가 분가를 했으니 시어머닌들 오죽 힘들었을까. 날마다 시댁 출퇴근을 하게 해도 군말 없이 따랐다. 그때는 젊었다. 내 몸이 아무리 고달파도 시부모님 말씀에 순종했다. 화가 날 때도 배운 티 낸다고 할까 봐 대꾸 한 번 못했다. 

 

 농부가 농사에 농자도 모르고 펜대만 굴리다 귀농한 청년에게 농사를 가르치기가 얼마나 고달픈지 알만 하다. ‘너무 애쓰지 마세요. 청년도 생각이 있겠지요. 실패해 가며 배운다지 않소.’ 농부에게 영지 달인 물을 권했다. 산에서 딴 영지와 농사지은 대추와 생강을 푹 고아 꿀에 타서 준다. 어찌나 쓴 지 나는 먹기가 역겹지만 농부는 하나도 안 쓰단다. 하루 삼시 세 끼는 꼬박꼬박 챙겨 먹어도 힘이 빠지는 노동자의 삶이 농민의 삶이다. 농사도 철학이 있어야 하고, 끈기와 부지런함이 있어야 짓는다. 청년이 농촌을 좋아하고 농사짓는 일을 좋아하면 농사짓는 방법도 스스로 터득해 나갈 것을 믿는다. 첫술에 배부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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