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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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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y 19. 2022

38. 깔끔한 마무리를 하고 싶다.

깔끔한 마무리를 하고 싶다.

    

 여전히 생은 끝나지 않았다. 시어른께서 전화를 하셨다. 겨우 이틀 됐는데 병원에 못 있겠단다. 아픈 것은 좀 낫냐고 물었다. 차도가 없다며 화를 내신다. 좀 더 있어보시라고 했다. 당신 화를 못 참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또 전화를 하실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받아야 하나. 받지 말아야 하나. 이태 전에도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었다. 그때는 시어머님이 집에 계셨다. 시아버님은 ‘내가 여기서 죽으란 말이냐. 퇴원해야겠다. 내가 있을 곳이 못 된다.’하셨다. 농부와 나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싶어 집으로 모셨다. 저러시다 돌아가시겠지. 기우에 불과했다. 여전히 시아버님은 당신 뜻대로 휘두르셨다.  


 노인의 마지막은 절대로 쉽지 않다. 당신 명대로 살아야 끝날 일이다. 성정이 바뀔 수도 없다. 마지막 가시는 길은 길고 힘들고 고통스럽다. 본인도 자식들도 모두 지쳐 떨어졌다. 자식들 모두 ‘아버지는 돌아가셔야 편하실 것 같다.’는 반응이다. 불쌍한 사람은 어머님이지만 어머님 역시 치매환자에 휠체어 신세다. 저렇게 사는 것보다 돌아가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 본인은 죽고 싶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죽음은 두렵다. 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다가 죽기를 소원하지만 소원대로 되던가. 3년만 있으면 아흔아홉이 되시는 시어른에게 하루가 여삼추 아닐까. ‘내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른다.’ 하신지도 오래되었다. 


 비 소식도 없었는데 비가 왔다. 읍내 농약 방 앞에 즐비한 온갖 모종이 떠오른다. 텃밭은 다듬어져 있다. 고추와 오이, 가지, 토마토, 여름 상추 등, 심어야 할 품목들을 챙겨본다. 농부는 차 덖는 무쇠 솥을 걸려고 온종일 애쓴다. 울산 어디서 꽃차를 하셨던 분이 주신 솥이다. 찻잎은 하루가 다르게 피어난다. 아침마다 농부랑 파르스름한 연둣빛 햇차를 마신다. 첫 찻잎을 따서 덖은 차다. 맛이 괜찮단다. 차를 마시는 여유가 좋으면서도 돌멩이 하나 체한 것 같은 마음자리도 있다. 죽음은 미움조차 풀어지게 하는 것일까. 근래 들어 생에 대한 마지막 불꽃을 맹렬히 피우고 계신 시어른을 생각한다. 


 문득 삶은 살아있을 때만 의미가 있지 죽고 나면 모두 헛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아온 의미도 헛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자식은 기억해줄까.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노인이 되어 몸도 마음도 쇠약해지면 그제야 돌아가신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긍정은 긍정을 끌어오고 부정은 부정을 끌어온다고 했다. 다 잘 될 거다. 시아버님도 편안해지실 거다. 살든지 죽든지 다 헛것인데 거기 연연할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으시면 좋겠다.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시면 좋겠다. 이런 것도 내 바람일 뿐이지만 간절히 원하면 전달되지 않을까.


 삽짝의 불두화가 화려한 개화를 기다리고 있다. 어린 꽃봉오리는 짙은 녹색이다. 잎사귄 줄 알지 꽃봉오린 줄 모른다. 꽃봉오리는 하루가 다르게 색이 변해간다. 짙은 녹색이 연한 연둣빛이었다가 녹색이 옅어져 하얀색이 된다. 순백의 탐스러운 꽃송이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절정에 오른 만개한 꽃은 탄성을 자아내도 낙화는 지저분하다. 인간의 일생도 꽃과 같다지만 꽃보다 길어서 가슴 아프다. 손뼉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다. 부모를 일찍 여읜 자식은 평생 부모를 그리워한다. 부모가 오래 골골하며 살아서 자식들 진을 다 뺐다면 돌아가셔도 눈물보다 후련함을 느끼지 않을까. ‘잘 가셨다. 호상이다.’ 하는 말은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친정 부모님도 가셨고, 시부모님도 가실 그 길, 머지않아 나도 가게 될 그 길이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을 사는 것도 현명하지 않을까. 떠날 때는 가볍게, 웃으면서 눈 감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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