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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y 23. 2022

39. 찔레꽃 향기에

 

찔레꽃 향기에   


  

 삽짝 입구를 환히 밝힌 찔레꽃의 향기가 진하다. 뒤꼍에도 찔레꽃은 만개를 했다. 꽃을 보는 마음이 여심이라 했건만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마당의 토끼풀 꽃이 그렇다. 토끼풀을 캐내며 잔디만 키우려고 애쓰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순간 참 부질없다. 그래, 맘대로 살아봐. 팽개쳤다. 토끼풀 꽃밭이 된 마당이 예쁘다. 어떤 꽃이든 꽃으로 보면 다 예쁜 것이 신기하다. 마음은 저잣거리 북새통 같아도 한 순간 꽃에 마음을 주면 고요하게 가라앉은 것 또한 신기하다. 


 아침마다 나는 참 행복한 여자라고 중얼거린다. 넉넉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살아가고 있다. 도시인이 꿈꾸는 전원생활을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가고 있다. 밤에는 별을 안고 낮에는 숲 향에 취해 산다. 삶의 질곡이 어찌 없겠나 마는 다 털어버리고 텅 빈 충만의 자세로 살고자 한다. ‘너는 부지런한 남편이 있잖아. 남편이 다 해결해주잖아.’ 친구의 시샘에도 타박할 말이 없다. ‘그래, 난 행복한 여자야.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는지 궁금할 때도 있어.’ 그렇게 우스개로 넘길 수 있는 것도 진짜 평화로운 일상에 젖어 살기 때문이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사랑을 믿는다. 사랑 하나 믿고 결혼한 나는 아직 그 사랑이 유효하다는 것을 때때로 깨닫는다. 미운 정 고운 정 모두 합쳐 사랑이라 하던가. 말없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시간, 느긋한 여유가 좋다. 부부가 오래 살면 굳이 말이 필요 없다. 따따부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시간이 온다. 우리 부부 사이가 그렇다. 시어른으로 인해 속 끓이는 것도 상대방 탓을 하는 것도 내 속에 든 불만 불평이다. 내 탓이요. 말하면서도 상대방 탓이라 생각하는 자체가 원인이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 뭘까. 욕심내지 않는 것이다. 자잘한 욕심들이 자신을 괴롭힌다. 내가 옳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습관, 의식주 등, 내 취향에 비추어 상대방을 평가하기 때문은 아닐까. 상대방이 인정하고 내게 따라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자질구레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본다. 너는 너, 나는 나를 인정하면 다툼도 없고, 미워할 건더기도 없지 않을까. 내 마음속에 도사린 갈등도 내 문제일 뿐이다. 내가 놓아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기로 한다. 


 건고사리를 갖다 주고 가는 청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고사리를 꺾어 삶아 널어 갈무리해서 봉지에 담기까지 노고를 익히 알기에 참 소중하고 고맙다. 힘들이지 않고 한 해 먹을 양을 준비할 수 있으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어머니께 고맙다고 전해줘. 잘 먹을 게. 고사리 주문 오면 연락할게.’ 내 고객이었던 사람들 전화가 오면 청년에게 돌린다. ‘너무 돈에 연연하지 마라. 때가 되면 다 해결된단다.’ 그런 말도 하게 된다. 삶의 순간순간이 모두 소중한 나날이 이어진다.

 

 오늘도 찔레꽃 향기를 맡으며 차를 마시고 농부는 일터로 가고 나는 글밭을 거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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