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촌부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래여 May 17. 2022

38. 주인 없는 빈 집 뒷정리

 주인 없는 빈 집 뒷정리     


 시댁을 정리하러 갔다. 시부모님이 안 계신 집은 썰렁하다. 반질반질 윤기가 돌던 장독간도 먼지가 뽀얗고 장독도 비어 가고 된장독은 진작 비웠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씨 간장을 담아놨던 항아리가 보이지 않는다. 삼촌이 씨 간장을 비우고 깨끗하게 씻어 엎어 놨었지만 언제 없어졌는지 모른다. 대문은 늘 열려 있었고 두 어른은 방에 누워계시기 일쑤였으니 누가 들락날락 해도 모른다. 어차피 물건은 쓰다가 버려야 하는 것들이다. 소중한 것이 뭐가 있던가. 내 한 몸 건사하기 어려워지면 살림에도 무심해진다. 


  냉장고 속에 든 음식을 싹 비웠다. 냉동실도 정리했다. 김치냉장고도 정리하고 전기코드를 뽑았다. 혹여 두 어른 뵈러 왔다가 고향집에서 쉬어갈 형제자매를 위해 냉장고는 코드를 뽑지 않았다. 오래 두어도 괜찮은 김치와 된장이나 고추장 같은 것은 냉장실에 넣어두었다. 음식물은 거름더미에 파묻고 설거지를 했다. 밥솥도 씻어서 물기를 뺐다. 시어른은 까다로우셨다. 끼니마다 갓 지은 밥을 원했고 평생 뜨거운 보리차와 삼시세끼 후엔 항상 믹스커피를 드셨다. 생마늘과 생양파와 된장은 늘 밥상에 올라야 했고, 생선과 쇠고기가 떨어지면 불호령이 났다. 국도 추어탕이나 어탕, 쇠고기 국, 곰국, 깻국이 아니면 국으로 치지도 않으셨고 식탁에 오른 새 반찬에만 젓가락을 댔다.  

 

 시어른이 덮던 이불과 베개를 걷어 세탁기를 돌렸다. 시어른은 빈틈없고 깔끔하셨다. 그 까다로운 시부의 비위를 맞추며 평생을 살아오셨던 시모가 어찌 힘들지 않았으랴. 부부 삶이 77년이다. 시부께서 시모를 챙겨야 했던 세월은 겨우 3년이지만 얼마나 힘드셨을까. 평생 아내에게 지시만 하시던 어른이다. 빳빳하게 풀 먹이고 다려야 입던 와이셔츠와 바지들, 세탁소에 맡겨야 할 양복들, 횃대에 가지런히 걸린 옷가지들, 빨아야 할 시부의 옷을 챙기면서 시모를 떠올렸다. 일제강점기, 멀쩡한 처녀를 정신대로 잡아간다는 소문에 서둘러야 했던 혼사, 시집살이는 혹독했다. 가난한 살림, 청청시하 였다. 신혼도 없었다. 시집오자마자 상주가 되었다. 내리 9년을 상복을 입었다. 시할아버지, 시아버지, 시어머니 3년 상을 치렀다.  


  이제 세 살짜리 어린애가 된 두 어른을 요양원과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일주일 사이에 시댁이 텅 비어버렸다. 빈 집의 뒷정리를 하면서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기억을 줍는다. 평생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시집살이가 갑자기 끝나버린 느낌이다. 이불 빨래가 끝나고 시부의 옷가지를 한 아름 안아다 세탁기에 넣었다. 내 손때가 묻었던 세간도 낯설다. 지난 3년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시댁 두 어른과 살림은 농부와 요양보호사가 맡았지만 틈새에 낀 나는 몸보다 마음이 힘들었다. ‘내가 못하면 입 다물자.’ 다짐해도 편치 않았다. 두 어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금이라고 자유일까? 아니다. 두 어른의 육신이 이승을 하직한 후면 어떤 마음이 될지. 

 

 오전 내내 시댁 정리를 하고 널브러졌다. 감산에 갔던 농부가 돌아와 무거운 것들을 옮겨주는 바람에 다시 기운을 얻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시모의 금붙이를 찾았다. 삼촌과 농부와 시누가 찾아도 못 찾았던 금붙이다. ‘찾는 사람은 따로 있네.’ 농부가 신기해한다. 의외로 금목걸이만 있는 줄 알았더니 금반지도 있다. 시모에게 얼마나 소중했으면 두 딸도 세 며느리 누구도 안 주고 꼭꼭 숨겨 두고 그만 기억을 잃어버렸을까. 고부간에 함께 한 세월이 오래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시모의 버릇까지 닮아간다. 시어머니처럼 생각하기가 적중했던 것이다. 


  오후에 다시 시댁에 갔다. 뽀송뽀송 마른빨래와 이불을 개켜 제자리에 놓아두고 반찬통과 그릇도 제 자리에 놓았다. 대충 정리를 했지만 두 어른의 짐은 손도 못 댄다. 집에서 돌아가시고 싶다는 소원대로 집에 와서 임종을 맞이하기는 요원하지만 알 수 없다. 요양원 생활에 길드시면 가끔 당신 집으로 모시고 왔다 갔으면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집안을 정리해 놓고 대문에 자물통을 채우고 골목을 나서는데 눈물이 핑 돈다. 내 새댁 시절의 희로애락이 그 집에 푹 잠겨 있기 때문이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37. 녹두죽 끓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