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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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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y 29. 2022

41. 나이 탓일까


 나이 탓일까.   

  

 참 맑다. 햇살이 퍼지는 마당의 토끼풀꽃도 숲에 반짝이는 푸른 잎도 싱그럽다. 삽짝 입구의 둔덕을 채운 찔레 덤불은 화려한 꽃 이불을 덮었다. 청초하고 맑은 흰 꽃들 세상이지 숭덩숭덩 떨어져 누운 불두화 꽃송이는 애처롭다. 불두화도 동백꽃처럼 송이 째 뚝뚝 떨어진다. 바닥을 하얗게 덮은 꽃송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람도 저렇게 활짝 피었다 속절없이 떨어질 때가 있다. 


 문득 수영장에만 가면 형님 아우 하며 반기던 아주머니를 떠올린다. 날마다 만나던 할머니가 근 한 달째 안 보인다. 궁금하다. 아프신 것일까. 손자들 봐주러 가신 것일까. 요양원 가신 것일까. 코로나가 겁나서 못 오시는 것일까. 가능하면 손자들 봐주러 가서 잘 지냈으면 좋겠고 아니면 코로나바이러스가 겁나 수영장을 포기하고 계시면 좋겠다. 살아있다면 언젠가 만날 수 있으니까. 


 꿈을 꿨다. 뱀 꿈은 잘 안 꾸는데 검은 뱀이 우글거리는 꿈이었다. 가운데 한 녀석이 입을 쫙 벌리고 송곳니를 드러냈다. 검은 꽃 가운데 흰 꽃이 핀 것 같았다. 우글거리던 뱀이 스르륵 물러가고 꿈을 깼다. 흉몽일까. 길몽일까. 입 조심하라는 뜻 이리라. 어쩌면 어제 설문조사한 것이 걸려서 그런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좋다. 나쁘다. 구분 짓는 문제는 설문 조사자가 바라는 답은 긍정적인 마인드 좋다가 아닐까. 나는 나쁘다. 에 표시했다. 막상 답을 해놓고 돌아보니 내게 불이익이 초래될 것 같다. 복을 주겠다는데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거나 진배없다. 


 또 하나 걸리는 문제는 나는 전업 작가일까 아닐까. 농사꾼 아낙으로 삼십 수년을 살아왔다. 올부터 농부는 자급자족할 만큼 농사를 짓는다. 덕분에 나는 농사꾼 아낙에서 탈락되었다. 기저질환자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농사꾼 아낙에 사표를 낸 상태다. 삼시세끼 챙기고 집안 일로 소일하며 내가 좋아하는 글 쓰고 책 읽는 것으로 하루해를 보낸다. 나는 전업 주부인가. 전업 작가인가. 농부에게 물었다. 


 “전업 작가라면 글을 써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당신은 생계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잖아. 이제 농사일에도 손 뗐으니 농업인이라도 할 수도 없겠네. 전업주부도 위태롭고.”


 대들 말이 없다. 원고료를 받으면 글쟁이로서의 자존감은 살지만 그 돈으로 생계를 책임질 정도는 아니다. 원고료는 푼돈이다. 물론 내 통장에 들어오면 생활비로 나간다. 쥐꼬리만큼이지만 유용하다. 희한하게 아이들 공부시킬 때는 원고료 수입이 꽤 됐고 아이들 뒷바라지에 요긴하게 썼다. 농부가 농사꾼 사표를 내겠다고 선언한 후에 심심찮게 원고 청탁이 들어온다. 앞으로는 전업 작가로 살면서 원고료 수입으로 생활고를 해결하라는 신의 지시 아닐까. 꿈보다 해몽이다. ㅋ


 “앞으로는 전업 작가라고 표기해야겠네.”

 전업 작가라. 부끄럽다. 과연 내가 전업 작가로서 내 몫을 해 낼까.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타고 난 재능대로 평생 글 쓰고 책 읽기를 놓지 못하고 살아왔고 살아갈 것임에는 틀림없다. 다른 재능을 계발할 나이도 능력도 없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책 읽기와 글쓰기다. 노안으로 책 읽기도 힘들지만 눈이 글자에 맞추어주니 고맙다. 눈이 보이는 한 독서는 꾸준하겠지.


 가끔 눈이 피로해서 감고 있을 때면 주제 사마라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린다. 눈을 뜨고도 사물의 핵심을 볼 수 없는데 눈을 감고 사물의 핵심을 볼 수 있기까지 얼마나 나를 단련해야 할까. 그의 책을 섭렵할 때만 해도 정신은 젊었지 싶다. 그의 작품에 반하여 <눈뜬 자들의 도시>, <수도원 비망록>, <도플갱어> 등, 닥치는 대로 찾아 읽을 때만 해도 잠자는 것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지금 나는 어떤가. 마음 다스리기 좋은 책을 재탕 삼 탕 하고 있다. 법정 스님의 책들, 아잔 브라흐마의 책들, 다니엘 고 튤립의 책, 에크하르트 툴레의 책, 데이비드 호킨스의 책 등,  내가 힘들 때 나를 다스려준 책들을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펴서 읽는다. 이상하게 소설집은 잘 잡히지 않는다. 나를 잠 못 들게 했던 소설책이 즐비한데도 소설보다 명상록에 마음 더 간다. 나이 탓일까. 


 참 맑다. 푸른 하늘, 서늘한 바람, 춤추는 나무들, 날벌레들의 날갯짓조차 눈이 부신 날이다. 빨랫줄에 앉은 딱새가 맑은 음색으로 운다.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도 겁내지 않는다. ‘이리 와 봐.’ 창문을 열고 손을 내민다. 좁쌀 한 움큼으로 꼬여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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