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유독 친정 엄마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을까.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기쁨이자 든든한 장녀였고 늘 그런 존재이고 싶었다.
심하게 아프던 어느 날도 엄마의 전화에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별일 없이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노라 통화한 적이 있다.
아이처럼 응석 부리고 싶던 나는 전화를 끊고 얼마나 울었던가.
화초처럼 자랐다.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원하는 모든 것은 다 이룰 수 있다는, 아주 자신감 넘치는 화초로 잘 자랐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의 나는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아직도 한없이 마음 여리고 어른아이 같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 무엇과도 환산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을 받아온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얼마 전에는 우연히 산책길에서 부모님과 마주쳤다.
수많은 클로버 중에서 네잎클로버를 발견한 듯, 딸과의 우연한 만남을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며 기뻐해 주셨다.
'오늘도 마주치려나?'
하는 마음으로 그 길을 걸었다.
두리번두리번 몇 번을 뒤돌아보며 걸었는지.. 다른 길로 산책 가셨는지 만날 수 없었다.
호르몬 탓일까. 갑자기 주책맞게 눈물이 난다.
친정집이 코앞인데도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서럽고 그리움이 느껴졌다.
힘든 모습 보이고 싶지 않다.
아픈 모습 보이고 싶지 않다.
잘 사는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다.
몇 년 전 연명치료 거부서를 작성하셨다는 이야길 들었다. 납골당도 싫고 훨훨 날아가고 싶으시다고 하셨다.
엄마는 끝까지 자식들 걱정이셨구나.
마음이 무너진다.
차오르는 눈물을 들키기 싫어 고개를 돌려 대화 주제를 바꿨다.
- "아픈 데는 없니?"
- "응 없지. 그리고 엄마한테는 아프다는 얘기 안 할 거야"
또 속 마음과 달리 무뚝뚝한 말투로 얘기한다.
내심 서운하셨을지도 모를 엄마의 마음이 눈 옆으로 느껴진다.
항상 자식 걱정인 엄마의 눈동자는 크고 깊으며.. 순수하고, 때로는 슬퍼 보인다.
엄마의 우주였을 나는, 그저 행복하고 건강한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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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흔 살이 넘은,
한 아이의 엄마인 내가 오늘도 '응애'하며 운다.
그렇게 속으로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