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꾼의 시신은 다음 날 아침 동료들에게 발견되어 현령을 거쳐 광주 부윤에게도 보고되었다.
“영감, 고섭입니다.”
“들어오게.”
소식을 전하러 관아로 달려온 군관 고섭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부윤 진영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시신이 또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번엔 어디인가?”
“이번에도 남한산입니다. 나무하러 가던 사람들이 계곡 근처에서 찾았다고 합니다. 시신의 상태로 보아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진영은 붓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광주에 부임하기 전부터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이었다. 피해자가 이미 스무 명을 넘긴 심각한 사태라 진영이 직접 수사를 맡게 되었으나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범인을 잡지 못한다면 진영은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조정의 문책을 면할 수 없었다.
“시신은 수습하였는가?”
“예, 영감. 이리로 실어 오는 중입니다.”
“가보세.”
진영은 고섭과 함께 집무실을 나섰다.
고섭이 소식을 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형방과 나졸들이 시신을 관아로 가져왔다. 시신은 거리에 모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멍석으로 감싸서 들것으로 옮겨졌다.
“어휴, 또 죽었네.”
“이게 벌써 몇 명째래요?”
“이번에도 그 산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네. 거기만 갔다 오면 이런 일이 생긴다니까. 역시 귀신이나 도깨비가 틀림없어.”
“이거 어디 불안해서 살겠나? 쯧쯧……”
사람들이 관아로 향하는 나무꾼의 시신을 보며 서로 수군거렸다. 또다시 피해자가 발생하여 그들의 두려움이 극에 달하였다. 언제 누가 다음 표적이 될지 모르는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나 관아에서는 범인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상태였다.
“근데 어째서 시체들이 하나같이 바짝 말린 어포처럼 되는 걸까?”
“그러게. 산짐승이나 사람이 저렇게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도깨비가 틀림없다니까. 그러니까 하나같이 저렇게 해괴한 꼴로 죽었겠지.”
“그래, 도깨비라고밖에 설명이 안 돼. 그나저나 이렇게 사람이 계속 죽어 나가는데 사또는 대체 뭘 어쩌고 있는 게야?”
“이번 사또도 영 시원찮다니까.”
“일을 해결할 생각이 있기는 한 건가? 허구한 날 산속만 뒤지고 시체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범인이 잡히냐고, 쯧쯧……”
“에휴, 사또만 믿고 가만히 있다가 죽느니 차라리 여길 떠나는 게 낫겠어.”
사람들은 진영에게 불신으로 가득한 불평을 쏟아내었다. 물론 그가 듣는 데서 대놓고 비난을 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진영은 이미 그들의 불만을 다 알고 있었다. 소문이 널리 퍼져 진영의 관할인 광주 일대의 민심이 날이 갈수록 흉흉해지고 있었다. 시신이 관아로 들어가고 군사들은 관아 앞까지 몰려든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
도록 막아섰다. 그리고 대문을 닫고 걸어 잠갔다. 대문이 굳게 닫히자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이내 흩어졌다.
“풀어라.”
진영이 지시하자 나졸이 멍석을 펼쳤다. 시신은 마치 뼈대 위에 가죽만 씌워 놓은 것처럼 바짝 말라 있었다. 눈알은 사라져 눈구멍만 뚫려 있었고, 말라붙어서 털이 다 빠진 피부는 핏기가 하나도 없어 창백하였다. 그동안 죽은 다른 피해자들과 똑같은 흉측한 모습이었다. 이미 여러 번 보았던 광경임에도 아전들은 도저히 그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같은 수법이로군. 동일범이 분명하다.”
“예, 영감. 마찬가지로 피와 몸 안의 물기가 다 사라졌습니다.”
“역시 범인의 흔적이나 다른 단서는 전혀 없는가?”
“예. 다른 피해자들처럼 외상은 있으나 사람의 손이 닿은 흔적이 없고, 딱히 주변에 원한을 산 사람도 없습니다. ”
진영과 아전들은 도무지 해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피해자들 간에는 별다른 관계나 공통점이 없었다. 몸 여기저기에 뚫린 구멍 외에는 범인의 흔적도 없었고, 발견된 시기도 일정하지 않았다. 인력을 총동원하여 산속을 몇 번이나 뒤졌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하였다. 유일한 단서는 그들이 모두 남한산에서 살해당했다는 것과 하나같이 몸속의 피와 수분을 전부 잃고 말라 죽었다는 것뿐이었다.
“저, 영감…… 아무리 살피고 생각을 해 보아도 이 사건은 도깨비의 짓으로밖에 설명이 되지를 않습니다.”
“어허, 이 사람! 자네까지 그런 소리를 하는가?”
형방이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 진영은 호통을 쳤다. 그는 관아의 아전이 일반 백성들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기이한 사건이라고 해도 유교를 숭상하는 나라에서 살인 사건의 범인이 도깨비라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피해자는 계속 늘어나고 수사에 진전은 없는 절망적인 현실이었다. 진영이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이 없자 아전들은 서로 눈치만 살폈다.
“이젠 방법이 없네. 내가 직접 조정으로 가서 이 사건에 대해 아뢰어야겠네.”
한동안 말이 없던 진영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예? 영감께서 직접요?”
“허나 영감, 그러다가 형판 대감의 노여움을 사십니다. 전임 부윤께서도 임기 내에 해결하시지 못하고 물러나신 일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자칫 주상 전하께서도 아시면 그땐……”
“어차피 각오하고 있던 일일세. 내가 부임한 곳에서 일어난 일이니 내가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된 이상 조정에 이 일을 아뢰고 처결을 받아야겠네. 어서 말을 준비해 주게. 우선 경기도 관찰사부터 만나보아야겠네. 그게 순서이니까.”
딱히 대책이 없었기에 아전들은 진영을 더 말릴 수 없었다. 진영은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한층 편안해진 표정으로 나졸이 끌고 온 말의 등에 올라탔다. 고섭도 그와 동행하여 한양으로 출발하였다. 진영은 이제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조차 잃어가고 있었다.
<용어 해석>
부윤 : 조선 지방 행정구역인 부를 관할하는 종2품 지방 장관.
형방 : 각 지방 관아의 육조에 속하는 육방 중 형방에 속하여 형전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하급 관리.
형판 : 형조판서. 조선 중앙 행정기관인 육조의 하나로 사법, 형법, 소송 등을 관할한 형조의 장관.
관찰사 : 조선 각 도의 지방 행정을 관할하는 종2품 지방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