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관찰사의 감영에 도착한 진영은 아전의 안내로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힘없이 의자에 기대어 앉아있던 관찰사는 진영을 보고 일어서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이오. 그간 별고 없으셨소?”
“크흠……”
관찰사는 기분이 좋지 않은 듯 다시 자리에 앉으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었다. 이미 예상한 반응이었다. 진영은 시선을 떨구고 그의 비난을 들을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관찰사는 말이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자 진영은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무래도 그 사건으로 인하여 관찰사까지 입장이 곤란해진 모양이었다. 사직서라도 써 왔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지금 막 조정에 다녀오는 길이오.”
관찰사가 먼저 침묵을 깨자 진영은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조정에는 어인 일로……”
“조정에 갈 일이 달리 무엇이겠소? 광주의 일로 형판 대감의 조언을 구하러 다녀왔다오.”
“아, 그렇구려……. 허면 어찌 되었소?”
“부윤에게는 좋은 소식일지 나쁜 소식일지 모르겠으나, 대비께서 상복을 입는 기간을 정하는 일로 여전히 논의가 오가고 있었다오. 그 때문에 형조는 물론이고 온 조정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입도 못 떼어보고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소. 조당에 그야말로 찬 바람이 불더이다.”
“아직도 그 일이 결론이 나지 않았단 말씀이오?”
“그렇소. 대체 언제까지 그러고들 있을 셈인지…….”
관찰사는 짜증이 올라와 도로 의자에 기대어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진영은 내색하지 않았으나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 논의 중인 사안은 대왕대비가 죽은 왕의 친모가 아니었기에 불거진 문제였다. 새로 즉위한 왕의 정통성과 관련된 중요한 일이기는 하였으나, 그 때문에 조정은 당장 도성 밖에서 사람이 연이어 죽어 나가고 있는 실상을 모르고 있었다. 관찰사가 화가 난 이유도 그것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번이 파직을 면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시다. 조정의 관심이 다른 데에 쏠려있을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떻게든 범인을 잡고 이 사건을 신속히 종결지으시오. 아시겠소?”
“……잘 알겠소.”
관찰사는 기운이 빠지는지 언성과 태도가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마지막 기회라는 말에 진영은 부담감이 더욱 커졌다. 차라리 당장 이 자리에서 파직을 당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그만 돌아가시오. 이 사람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 도움을 청하시오.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나도 곤란해지니 말이오.”
“고맙소이다. 허면 이만 물러가겠소.”
진영은 관찰사에게 인사를 하고 집무실에서 나왔다. 관찰사의 말대로라면 형조로 찾아가 봐야 형판은 만날 수도 없을 듯하였다.
터덜터덜 감영을 벗어나면서 진영은 관찰사가 한 말을 곱씹었다.
‘파직을 면할 마지막 기회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영감, 어찌 되었습니까?”
고섭이 물었다.
“지금 예송 때문에 조정의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알아서 해결하라더군.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겠다고도 하였네. 일단 돌아가세.”
밤이 깊었으나 진영은 집무실을 떠나지 못하였다. 더는 대책이 서질 않았다. 머리를 싸매고 아무리 고민을 해 보아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관찰사에게 도움을 청해도 별 소용이 없을 듯하였다.
“밤이 늦었네. 자네는 그만 퇴청하게.”
고섭도 그때까지 관아에 남아 진영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아닙니다, 영감. 어찌 소관 혼자 편히 쉴 수 있겠습니까?”
“괜찮으니 그만 물러가 눈 좀 붙이게. 어차피 난 오늘 밤은 잠이 오지 않을 듯하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좋은 수가 떠오르지를 않아. 어서 퇴청하게.”
그제야 진영은 등잔불을 끄고 집무실을 나섰고, 고섭도 마지못해 그에게 인사를 올린 뒤 집으로 돌아갔다.
이미지 출처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