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아로 돌아온 진영은 여인을 집무실로 데려가 자리를 권하였다. 여인은 옆자리에 아이를 앉히고는 갓을 벗어 칼과 함께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의자에 삐딱하게 기대어 앉았다.
“어째서 남장을 하고 다니는가?”
“그야 세상이 험하니까요.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처지인데 계집의 몸으로 어디 마음 놓고 다닐 수가 있어야지요.”
“하긴 그렇지. 그래, 범인은 어떻게 잡을 생각인가?”
“우선은 밥 좀 주십시오. 배부터 든든히 채워야 머리가 돌고 힘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잘 곳도 마련해 주시지요. 이 아이와 함께 지내야 하니 큰 방이 필요합니다.”
“어허, 이곳은 관아일세. 그런 것은 주막에 가서 알아봐야지.”
“아아, 아닐세. 이 이가 우리를 범에게서 구해주지 않았는가? 은혜를 입었으면 그 정도는 응당 제공해 주어야지.”
진영은 다그치는 고섭을 말렸다. 고섭은 공손하지 못한 여인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식사를 곧 준비해 줄 터이니 내아에서 머물도록 하게.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해 주겠네.”
“고맙습니다, 사또 어른.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은 시신들을 전부 보여주십시오. 그 외에도 쇤네가 하라는 대로 다 따라주셔야 합니다.”
“뭐라고?”
여인의 당당한 요구에 고섭은 급기야 고함을 쳤다. 진영도 기분이 좋지 않았으나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더 이상 선택권이 없었다. 어떻게든 도움을 받아야만 하였다.
“영감, 이 계집을 당장 쫓아버리시지요. 참으로 무엄하지 않습니까?”
“자네는 잠자코 있게. 알겠네. 그대가 요구하는 것은 다 들어줄 터이니 부디 이 사건을 해결하여 주시게.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어. 반드시 범인을 잡아야 하네.”
“영감!”
고섭의 만류에도 진영은 마음을 굳혔다.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막으려면 무슨 짓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관찰사도 분명 그리 말하였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사건을 해결하라고. 더는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닐세.”
“고맙습니다, 사또 어른.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푹 쉬게나. 관비가 방으로 안내해 줄 걸세.”
여인은 아이를 데리고 집무실을 나섰다. 고섭은 다시 진영을 설득하려 하였으나 진영은 듣지 않았다.
“그만. 더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는가. 우리는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단 말일세.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시신을 전부 마당으로 옮기게.”
진영의 단호한 말에 고섭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신비한 여인의 정체를 파악하고 싶었던 진영은 밥상을 나르는 관비를 따라 내아로 건너갔다. 여인은 마루에 걸터앉아 보따리에서 육포를 꺼내어 데리고 온 아이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큼!”
진영의 헛기침 소리에 여인은 밥상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아이가 무척 허기졌던 모양이군. 어서 들게.”
“고맙습니다, 사또 어른. 허나 이 아이는 이미 배를 채웠으니 괜찮습니다.”
여인은 아이 몫의 밥그릇까지 제 앞으로 가져가더니 크게 한 숟갈 퍼서 입에 쑤셔 넣었다. 아이도 딱히 밥상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볼수록 기이한 인물들이었다.
“저, 이름이 무엇인가? 어디 출신이고?”
여인은 식사를 방해받기 싫은 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씹던 밥을 삼켰다.
“떠돌이 계집 따위의 이름을 알아서 무엇하시려고요?”
“그래도 이름은 알려주어야 도리가 아닌가.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그저 아무개라고 불리고 싶은가?”
“낭선이라는 이름이 있기는 하나 되도록 부르지는 말아주십시오. 양친이 작고하시고 집안도 망한 뒤로 오랫동안 이름으로 불릴 일이 없어서 어색하거든요.”
“허, 저런……”
뜻밖의 사연에 진영은 여인의 아픈 곳을 찌른 듯하여 미안해졌다.
“아직 어려 보이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 딱한 일일세.”
“더 궁금한 것이 있으시거든 어서 물으십시오. 밥 좀 먹게.”
낭선의 가시 돋친 말투에도 진영은 호기심이 앞서 불쾌할 새도 없었다. 문득 낭선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특이하였다. 국과 다른 반찬은 손도 대지 않고 생선과 밥만 먹고 있었다. 이상하긴 하였으나 생선을 유난히 좋아하나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떻게 그런 신묘한 힘을 얻었는가? 그 사납던 범이 그대에게 꼼짝도 못 하던데.”
낭선은 결국 수저를 내려놓고 진영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기로 하였다.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몹쓸 병에 걸려서 목숨이 위태로웠는데, 백약이 소용없고 아무리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가도 무슨 병인지조차 알아내지 못하더랍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아버지 몰래 갓 신이 내린 어린 무당을 찾아가셨고, 그 무당이 인어의 살점을 먹어야만 낫는다고 하였답니다.
“뭐라? 인어라니? 그게 말이 되는가?”
“기껏 찾아간 무당이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니 어머니가 실망해서 바닷가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고 계셨는데, 거짓말처럼 인어가 바다에서 고개를 내밀고 다가오더랍니다. 그 인어가 말하길 하도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서 물 밖으로 나와봤다고 하더랍니다. 과연 생긴 것이 전설로 전해 듣던 그 모습 그대로였답니다. 배꼽 아래까지는 영락없는 사람이었는데 어찌나 아름답던지 넋을 빼앗겨 눈물이 쏙 들어갔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인어에게 사정을 말씀하셨더니 그 인어가 저도 자식이 있어서 남의 일 같지 않다면서 눈물을 흘리더랍니다. 그러더니 손톱으로 제 팔뚝의 살점을 조금 잘라서 건네주었답니다. 어머니께서 그 길로 집으로 달려오시어 제게 그것을 먹이셨더니 정말 무당의 말대로 제 병이 씻은 듯이 낫더랍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당신 뺨을 몇 번이고 때리셨답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신기한 이야기에 진영은 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아이는 그런 진영의 표정이 웃겼는지 그의 얼굴을 가리키며 키득거렸다.
“그, 그래서 그 뒤로 그런 힘이 생겼단 말인가? 인어의 살을 먹어서?”
“어머니께서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하시었습니다. 아버지도 뒤늦게 아시고 노발대발하시다가 제가 살아났으니 그냥 불문에 부치기로 하셨답니다. 그러고서 얼마 뒤에 오랑캐들이 쳐들어와서 어머니는 끌려가고 아버지는 맞서다가 돌아가셨고요.”
“저런……”
“어머니도 결국 오랑캐들 땅에서 돌아가셨겠지요. 이제 되었지요?”
낭선은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마저 밥을 욱여넣었다. 낭선의 이야기와 직접 보았던 그의 능력을 떠올리니 진영은 신뢰가 생겼다. 비로소 희망이 보이는 듯하였다. 낭선의 도움으로 이번에는 틀림없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대는 보기보다 나이가 많았구먼. 병자년에 부모를 잃었다면……”
낭선이 들은 체도 하지 않자 머쓱해진 진영은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