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숨

by 어둠의 극락

다음 날 아침, 나졸들이 관아 앞마당에 멍석을 깔고 왼쪽에서부터 발견된 순서대로 시신들을 눕혀 놓았다. 낭선은 시신을 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보았다. 거리낌 없이 손으로 만지며 입안을 들여다보거나 냄새를 맡기도 하였다. 진영과 아전들은 한 발 뒤로 물러나 가만히 지켜보았다. 시신을 빠짐없이 다 살펴본 낭선이 마침내 손을 털며 일어섰다.

“사또 어른. 이 시체들 전부 산중에서 발견되었지요?”

“그렇네. 그걸 어떻게 알았는가?”

“냄새가 나니까요. 하나같이 썩은 내가 아닌 나무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다. 일부는 민물 냄새가 나는 것을 보아 계곡 근처에서 발견되기도 하였군요.”

진영과 아전들은 모두 놀라 입이 벌어졌다. 낭선은 그들이 전혀 맡지 못한 냄새로 시신이 발견된 장소를 정확히 알아내었다. 과연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 확실하였다.

“그리고 처음 발견된 시신은 남정네이고 두 번째는 여인네인데, 세 번째부터 다시 남정네들인 것을 보면 여인은 입맛에 맞지 않아 그 뒤로 사내들만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참으로 극악무도한지고. 대체 범인의 정체가 무엇인가? 어째서 이런 짓을 벌이는지 알아낼 수 있겠는가?”

“이 자리에서 당장 말씀드릴 수는 없겠으나, 확실한 점은 짐승도 인간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신들의 모습을 보면 산 채로 피와 수분은 물론 정기까지 다 빨아 먹힌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분명 산속에 숨어 살면서 산에 들어서는 인간을 잡아먹고 힘을 기르려는 존재가 틀림없습니다.”

낭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형방은 손뼉을 쳤다.

“그것 보십시오, 영감. 소인이 도깨비의 소행이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도깨비는 인간을 골려주는 짓을 좋아하지, 잡아먹지는 않습니다.”

형방은 낭선의 말에 무안해져 입을 삐쭉거렸다.

“도깨비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낭선은 가장 최근에 죽은 피해자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그것은 망자가 알려줄 겁니다. 호선아!”

낭선의 부름에 마루에 앉아있던 호선이 쪼르르 달려왔다. 호선은 대뜸 시신 위에 걸터앉더니 시신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들었다. 그러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여 시신의 콧구멍에 대고 숨을 불었다. 그러자 하얀 연기가 입에서 흘러나와 시신의 콧구멍으로 스며 들어갔다. 연기를 다 불어넣은 호선은 손을 털며 시신에서 내려와 낭선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끄어어어……

“아니 저, 저게 뭐야?”

시신이 기괴한 신음과 함께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아전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우왕좌왕하였고, 고섭은 재빨리 칼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진영은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얼어 붙어버렸다. 이윽고 시신은 두 팔을 앞으로 뻗으며 상체를 일으켰고 뻣뻣한 팔을 휘저으며 괴성을 질렀다.

끄어어억…… 서…… 어서…… 가야…… 한다니……까…… 길을 잃어……

죽어가는 사람이 간신히 쥐어 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시신이 말하였다. 신음과 함께 쇳소리 같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낭선은 조금도 두려운 기색 없이 시신의 말을 자세히 들으려 자세를 낮추었다. 진영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떼었다.

“영감!”

고섭이 말렸으나 진영은 듣지 않았다.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죽은 사람의 증언을 듣고 싶은 호기심이 앞섰다.

길을…… 잃어…… 따라오…… 시오…… 끄어억…… 곧…… 해가 져……

진영은 더 가까이 다가가 시신 바로 옆에 섰다. 고섭은 몹시 두려웠으나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칼을 든 채로 그의 뒤에 바짝 붙었다.

끼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시신이 미친 듯이 팔을 휘저으며 비명을 질렀다. 아전들은 혼비백산하여 이리저리 달아났고, 진영과 고섭은 깜짝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나다가 서로 발이 엉켜 넘어졌다. 시신은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누워있던 자리에서 마구 뒹굴며 몸부림쳤다. 낭선은 놀라지도 않고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러더니 시신을 날로 베는 대신 칼자루 끝으로 머리를 내리찍었다. 그러자 난리를 치던 시신이 곧바로 조용해지며 되살아나기 전처럼 쓰러져 뻗어버렸다. 시신이 얌전해지자 도망쳤던 아전들이 하나둘 조심스럽게 마당으로 돌아왔고 진영과 고섭은 몸을 일으켰다. 낭선에게 붙어있던 호선은 일어서서 옷을 터는 그들을 가리키며 키득거렸다. 진영은 가슴이 진정되질 않아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이 아이가 지닌 재주입니다. 본디 여우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꼬리가 늘어나면서 스스로 터득하더이다.”

“여, 여우라고? 저 아이가?”

호선은 마치 자랑하듯이 치맛자락을 들어 자신의 발을 진영에게 보여주었다. 얼굴과 손은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아이의 두 발은 털로 뒤덮인 여우의 것과 같았다. 호선은 넋이 나간 사람들에게 혀를 삐쭉 내밀었다.

“망자의 마지막 말을 들어보면 길을 잃은 사람을 도우려 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해 질 녘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가여운 사람 행세를 하며 먹잇감을 노리는 게 틀림없습니다.”

“과연 그렇군. 허면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낭선은 진영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더니 씨익 웃었다.

“일단 밥 좀 주시지요.”

“이런……”

고섭은 약이 올라 짜증을 내었다. 대답 대신 밥이나 달라는 낭선의 말에 진영은 허탈하였으나, 오늘 하루 동안 믿기지 않는 일을 연이어 겪었던 탓에 한숨 돌리고 정신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알겠네. 반 시진 뒤에 다시 하도록 하지. 모두 물러가게.”

“예, 영감.”



<용어 해석>

시진 : 두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