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은 밥상을 앞에 두고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허기를 느끼면서도 조금 전 보았던 광경이 자꾸만 떠올라 밥이 입에 들어가지를 않았다. 하지만 낭선의 도움으로 그동안 찾지 못한 새로운 단서들을 얻어서 마침내 사건을 해결할 기대감이 크기도 하였다. 식욕을 잃은 진영은 결국 밥상을 물리고 밖으로 나갔다.
마당으로 나온 진영은 남한산을 바라보았다. 유학을 공부한 양반이자 벼슬아치로서 그는 평생 미신 같은 것은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그의 오랜 신념이 흔들리고 있어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런 그의 속을 알 리가 없는 푸르른 남한산은 야속하게도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탁-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에 진영은 고개를 돌렸다. 호선이 담장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의 입에는 축 늘어진 토끼가 물려 있었다. 아이가 여우라는 사실을 알고도 진영은 속이 거북해져서 도로 산으로 고개를 돌렸다.
“심기가 불편하신 모양입니다.”
어느 틈엔가 낭선이 그의 곁에 와 있었다. 진영은 흠칫 놀라다가 헛기침을 하며 담담한 척을 하였다. 호선은 담장에서 뛰어내려 마당 쪽으로 달려갔다.
“아, 아닐세. 그저 오늘 본 것들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울 뿐일세.”
낭선은 진영의 옆으로 다가와 함께 남한산을 바라보았다.
“그러실 만도 하지요. 사또 어른 같은 양반님들은 다 미신이라며 어떻게든 외면하려고만 하시니까요. 그러나 이 세상에는 여전히 눈으로 이해하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온 나라가 부처를 받들어 모시던 지난날도, 공자를 받들어 모시는 오늘날도 그것들은 쭉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테고요.”
낭선의 의미심장한 말에 진영은 그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남한산에 두고 있는 그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마치 나이 지긋한 사람과 같은 진중함이 느껴졌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던 형용하기 어려운 분위기 탓에 꼭 인간을 초월한 존재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욱 믿음이 가며 의지하고 싶어졌다.
“나는 내 고을의 백성들을 지켜야 하네. 상대가 무엇이건 백성들을 해친다면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없애버릴 것이야. 이미 약조를 하였으니 그대가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다 하겠네. 그러니 앞으로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일러주게.”
진영의 각오에 낭선은 마치 원하던 답을 들은 것처럼 얼굴이 환해졌다.
“시신을 발견할 때마다 저 남한산을 수색하셨지요?”
“그리하였지. 그러나 별 성과가 없었네.”
“그렇다면 놈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또다시 사람을 동원하여 산을 들쑤시면 더 깊숙이 숨어버릴 터이니 최소한의 인원만 들어가야 합니다.”
“요괴를 유인하여 끌어내자는 말이군. 어떻게?”
“그야 미끼를 써야지요.”
“미끼?”
“놈은 사내만 노리니 사내 한 사람을 미끼로 써야 합니다.”
“뭐, 뭐라?”
사람을 미끼로 쓰자는 말에 진영은 경악하였다. 요괴의 미끼가 되면 분명 목숨을 보장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사태가 시급하다 해도 그렇지, 어찌 산 사람을 미끼로 쓴단 말인가? 짐승으로 대신하면 어떻겠는가?”
“아니 됩니다. 그동안 저렇게 말라죽은 짐승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놈은 사람만 노립니다.”
낭선은 단호하였다.
“허나 얼마 전 새 상감께서 등극하시면서 전국에 사면령이 내렸네. 죄수도 없단 말일세.”
“그렇습니까? 그럼 어찌한다?”
또다시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다른 지역에서도 죄수를 구할 수 없었고, 목숨을 내놔야 하는 일에 자원할 사람도 없을 게 분명하였다.
“정녕 다른 방법은 없는가?”
한참을 고민하던 진영은 다시 낭선에게 물었다.
“현재로선 그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미끼가 되겠네.”
낭선은 크게 반응하지는 않았으나 제법 놀란 눈치였다. 한 지역의 수령씩이나 되는 사람이 직접 목숨을 걸겠다고 하니 믿기지 않는 듯하였다.
“쇤네가 최선을 다하겠지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그렇네.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로서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일세. 내 기꺼이 미끼가 되어 그 요괴를 물리치도록 돕겠네.”
“안 됩니다, 영감!”
숨어서 그들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는지 고섭이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그는 칼을 뽑아 낭선에게 겨누었다. 금방이라도 그 칼을 휘두를 기세였으나 낭선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네 이년. 정녕 죽고 싶은 게로구나. 감히 뉘에게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느냐!”
“칼을 거두게. 내가 자청한 일일세.”
“그럴 수 없습니다. 이 계집이 지금 영감을 사지로 보내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칼을 거두라니까!”
고섭은 마지못해 칼을 내렸다. 낭선은 씩씩대며 자신을 노려보는 고섭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오늘 바로 가시지요. 놈은 해 질 녘에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니 해가 지기 전에 가야 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양민처럼 보이도록 변복을 하셔야 합니다.”
“알겠네. 지금 당장 준비하도록 하지.”
“영감!”
진영이 집무실로 돌아가려 하자 고섭이 그를 가로막았다.
“영감, 차라리 소관이 대신 가겠습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
“이미 내가 하기로 결정되었네. 자네는 나서지 말게.”
“영감!”
고섭은 진영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진영은 자신을 그렇게까지 걱정하는 고섭이 참으로 고마웠다. 그래서 더욱 그를 대신 보내고 싶지 않았다. 진영은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는 것을 막고 싶었다.
“백성을 위해 죽는다면 관리로서 그만한 영광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난 이미 결심을 굳혔네. 자네는 참 좋은 사람이야. 무관으로서도 또한 이 나라 조선의 백성으로서도. 그런 자네를 앞서 보내고 싶지 않네. 어서 일어서게.”
진영은 고섭을 다독이며 일으켰다. 그의 두 눈에 맺힌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하였다.
“아무나 가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사또 어른께서 가시렵니까?”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낭선이 물었다.
“그래, 내 결정에는 변함이 없네.”
“알겠습니다. 그럼 두 시진쯤 뒤에 출발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