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가 다 지지 않았음에도 산속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허름한 평복으로 갈아입은 진영이 앞장서서 산길을 올라갔고 낭선과 호선이 뒤따랐다. 어느 정도 올라와 선선한 바람이 불자 낭선은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 길을 달리 잡아야겠습니다. 놈이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 우선은 최근에 죽은 사람이 발견된 곳으로 가십시오. 저희는 몸을 숨기고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알겠네.”
진영은 내심 두려웠으나 티를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곧장 달려올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낭선은 진영을 안심시키고는 호선과 함께 다른 길로 향하였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진영은 나무꾼의 시신이 발견되었던 계곡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산중에 혼자 남게 된 진영은 두려움이 더욱 커졌다. 해가 지고 요괴가 나타날 때까지 그곳에 꼼짝없이 있어야만 하였다. 모습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존재를 어둠 속에서 홀로 기다리려니 너무도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석양이 내리고 햇빛이 점차 사라지자 진영은 초여름인데도 온몸이 덜덜 떨렸다. 무서워서 뿐만이 아니라 서서히 내리깔리는 어둠과 함께 한기가 돈 탓이었다. 이윽고 해가 완전히 졌고, 진영은 바위에 걸터앉아 몸을 웅크렸다. 아무리 산속이라도 여름에 접어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한기였다. 어느 순간부터 물 흐르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밤에 우는 새들의 울음소리도, 바람에 서로 부딪히는 나뭇가지 소리도 없었다. 분명 심상치 않은 징조였다. 마침내 올 것이 오고 있는 듯하였다. 진영은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품속에 숨겨둔 단도에 손을 가져갔다. 어둠은 더욱 짙어져서 그가 앉아있던 바위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당장이라도 소리를 질러 낭선을 부르고 싶었다.
덜그럭-
“헉!”
온 신경이 곤두서있던 진영은 바위에서 발을 내리며 밟은 돌에서 난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그는 겨우 돌에 놀란 스스로가 한심하여 허탈해졌다.
으흐흐흐흑……
그때, 다른 소리가 물 흐르는 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몸이 움츠러든 진영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람의 울음소리 같았다. 그 소리는 물소리를 뚫고 점차 또렷하게 들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젊은 여인이 구슬피 우는 소리였다. 진영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아직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아 눈앞은 물론 발밑도 보이지 않아서 발로 땅을 더듬으며 울음소리를 따라갔다.
으흐흐흑……
어두운 산속에 울려 퍼지는 여인의 울음소리는 너무도 소름 끼쳤다. 진영은 요괴가 길 잃은 사람을 흉내 낸다는 사실을 알고 두려운 와중에도 그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단도를 언제든 뽑을 수 있도록 품속에 손을 넣은 채 진영은 천천히 나아갔다. 울음소리가 코앞에서 들리게 되자 진영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거, 거, 거기 뉘시오?”
대답은 없고 울음소리만 이어졌다. 진영은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걸었다.
“거기 누가 있소?”
몇 걸음 더 나아가니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어떤 형상이 보였다. 무언가가 잔뜩 웅크린 채 물가에 앉아있었다. 차츰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며 그 형상이 선명해졌다. 잔뜩 웅크리고 앉아있는 사람의 뒷모습이었다. 진영은 가슴을 뚫고 튀어나올 기세로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에게 다가갔다.
덜그럭-
진영이 또 돌을 밟는 순간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진영은 단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도와주셔요……
젊은 여인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기이하게도 소리가 동굴 속에서 말하는 듯이 울렸다. 진영은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낭선과 호선으로 가득 찼다. 어서 그들이 와서 자신을 구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도와주셔요……
여인의 애처로운 호소에 진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모두 그 말에 속아 참변을 당하였기에 그는 입을 꾹 다물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도와주…… 죽어……
‘뭐?’
도와…… 죽어……
도와달라더니 죽으라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 진영은 심장이 터질 듯하였다. 그는 이제 위험을 직감하였다.
죽어…… 죽어……
여인이 고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몸을 돌려서 진영을 쳐다보지는 않고 그대로 서서 죽으라는 말만 반복하였다.
죽어…… 죽어…… 억울해…… 죽어……
진영은 단도를 뽑아 들고 용기를 쥐어 짜내어 호통쳤다.
“이 요망한 것! 썩 사라져라!”
여인은 여전히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진영은 뒷걸음질 치면서도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요괴가 덮쳐올 것만 같았다.
뚜두둑-
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소리가 나며 여인의 머리가 뒤로 돌았다. 몸은 그대로 물가를 향해 서 있었다. 도저히 산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핏기가 없는 새하얀 얼굴에 뚫린 두 눈구멍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진영은 몸과 반대로 돌아있는 여인의 얼굴과 정면으로 마주쳐 버렸다. 한순간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진영은 단도를 든 손에 힘이 빠져 그만 칼을 놓쳐버렸다.
죽어…… 죽어!!!!!!!!
여인은 날카로운 괴성을 지르며 머리가 돌아간 채로 순식간에 진영에게 달려들었다. 진영은 재빨리 몸을 돌려 도망치려고 하였으나 뭔가가 그의 팔과 다리를 붙잡더니 거칠게 휘감았다. 당황한 진영이 몸부림을 치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세게 조여들었다. 피부에 쓸리는 느낌이 마치 나뭇가지 같았다. 사지가 붙잡힌 진영은 공중에 들어 올려졌다.
“으아아아악!”
통증과 공포로 진영은 비명을 질렀다. 여인의 모습을 한 요괴는 몸을 머리와 같은 방향으로 돌리고 진영에게 손을 뻗었다. 진영은 어떻게든 벗어나려 몸부림쳤으나 소용없었다. 새하얀 손이 진영의 목을 잡으려는 순간, 무엇을 봤는지 요괴가 당황하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주변이 서서히 밝아지더니 거대한 불덩어리가 진영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계곡가에 있던 나무에 불덩어리가 달라붙어 화염에 휩싸였고 진영은 나뭇가지로부터 풀려나 땅에 떨어졌다.
크아아아!
포효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요괴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은 앞발을 휘두르며 요괴를 공격하였다. 진영이 몸을 피하면서 보니 늑대만 한 몸집에 꼬리가 다섯 개 달린 여우였다. 요괴는 여우의 이빨과 발톱을 피하면서 주위의 나무들을 조종하여 나뭇가지를 마구 휘둘렀다. 진영을 다시 붙잡으려는 것이었다.
“엎드려요!”
낭선의 목소리가 들리자 진영은 곧바로 머리를 감싸고 납작 엎드렸다. 낭선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진영을 잡으려던 나뭇가지들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요괴는 분노하여 나뭇가지들을 전부 그에게 뻗쳤으나 낭선은 이리저리 피하며 가지들을 잘라냈다.
끼아아아아아악!
요괴는 비명을 지르며 불붙은 나무를 쓰러뜨렸다. 낭선과 여우는 잽싸게 쓰러지는 나무를 피하고는 요괴를 뒤쫓으려 하였으나 이미 사라진 뒤였다.
“괜찮으십니까?”
낭선이 칼을 칼집에 넣으며 진영을 부축해 일으켜 주었다.
“괜찮네. 저 여우가 호선인가?”
“그렇습니다. 호선아, 돌아가자.”
요괴가 사라진 자리를 향해 으르렁대던 호선은 다시 아이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그대들에게 여러 번 신세를 지는구먼. 고맙네. 아까 그 불도 인어에게서 얻은 힘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굉장하군. 참으로 굉장해. 그나저나 요괴를 놓쳐버렸으니 이제 어찌한다?”
“이제 놈을 직접 마주하고 한 번 겨루어 보았으니 두 번째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관아로 돌아가셔서 쉬시지요.”
“그래도 되겠는가? 놈을 추격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숨어버렸는데 어디로 달아났는지 알아야 쫓아가지요. 어서 가시지요.”
낭선은 산에서 내려가기 전에 불타고 있는 나무를 향해 칼을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계곡에서 물기둥이 솟구쳐 불을 꺼뜨렸다.
낭선은 밤눈도 밝았는지 칠흑같이 어두운 산길을 성큼성큼 잘도 내려갔다. 진영은 발밑이 보이지 않아 그의 팔을 꼭 붙들고 따라갔다. 호선은 이미 산기슭까지 먼저 내려가서 그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곳곳에 불이 밝혀진 고을 초입까지 내려오니 고섭이 횃불을 든 군사들과 함께 달려오고 있었다.
“영감!”
그들 뒤로 아전들과 주민들까지 따랐다.
“영감, 괜찮으십니까? 비명 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다시피 멀쩡하네. 이들의 신묘한 재주 덕에 요괴의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하였네. 한데 왜 다들 나와 있는가? 어찌하여 백성들까지 저리 몰려왔는가?”
“다들 영감이 걱정되어 영감께서 산으로 올라가신 뒤로 여기 모여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감, 무탈하셔서 다행입니다.”
아전들은 긴장이 풀려 목소리에 기운이 없었다.
“허허, 참. 민망하니 그만하고 관아로 돌아가세. 안타깝게도 요괴를 놓쳐버려서 다시 대책을 세워야 하네.”
“예, 영감.”
진영은 주민들에게 다가가 그들 앞에 섰다.
“모두 이 사람을 걱정해 주어서 고맙소.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소이다. 비록 요괴를 놓쳐버렸으나 이 사람이 책임지고 반드시 찾아내어 퇴치하겠소. 그러니 오늘 밤은 편히들 주무시구려. 자, 모두 집으로 돌아가시오.”
주민들은 진영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고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불만이 많았던 그들은 사건을 해결하려 목숨을 거는 일도 마다하지 않은 진영에게 다시 신뢰를 주기로 하였다.
관아로 돌아온 진영은 소매를 걷어 붉은 자국이 난 팔을 고섭에게 보여주었다. 그제야 고섭은 요괴의 존재를 실감하고 경악하였다.
“여인의 모습을 한 요괴라니…… 나무를 수족처럼 부렸단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나뭇가지로 나를 휘감아 묶어두고는 해치려고 하였지. 이것이 그 자국일세. 생긴 것도 어찌나 흉측하던지 마주치는 순간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네. 눈은 없고 구멍만 뚫려서 피눈물을 흘리더군.”
고섭은 상관이 그런 일을 당할 때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이제는 낭선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왜 시체에서 나무 냄새가 났는지 알겠습니다. 단순히 산속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요괴의 본체가 바로 나무였습니다.”
낭선의 말에 진영도 조금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동의하였다.
“그 말이 맞는 듯하군. 그 요괴가 나에게 다가와 손을 뻗었을 때 분명 나무 냄새가 짙게 나고 있었네. 그렇다면 그 산중에 있는 나무들 가운데 하나겠구먼.”
“허나 나무가 저리 많은데 어느 것인지 어떻게 알아낸단 말입니까? 한 번 낭패를 보았으니 쉬이 다시 나오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진영과 고섭은 동시에 낭선을 바라보았다. 낭선은 생각에 잠겼고 진영과 고섭은 숨죽여 그의 답을 기다렸다.
“사또 어른, 말을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어디를 말인가?”
“개경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이제 우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할 듯합니다. 개경에 도움을 주실 만한 분이 계시니 가서 그분을 뵙고 오겠습니다.”
“개경이라니? 대체 어떤 사람인가?”
“요괴에 대하여 잘 아는 분이십니다. 서두르면 내일까지 돌아올 수 있습니다.”
“허, 이것 참……. 하는 수 없지. 제일 잘 달리는 녀석으로 데려가게.”
“고맙습니다, 사또 어른.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낭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옆에 앉아있던 호선을 쓰다듬었다.
“호선아, 금방 다녀올 테니까 넌 여기 있어. 아무 데나 돌아다니거나 말썽 피우면 안 돼, 알겠지?”
호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낭선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이어 고섭도 말을 데리러 따라나섰다. 별안간 낭선이 자리를 비운다고 하니 진영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