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은 지난밤 겪은 일로 인하여 늘 보던 남한산이 다르게 보였다. 더는 이전과 같은 고요한 평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제의 그 한기가 관아까지 흘러 내려오는 듯하였다. 마치 산이 살아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처럼 섬뜩하여 차마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낭선이 돌아오기만 바라고 있었다. 아무런 걱정 없이 속 편하게 마당에서 뛰노는 호선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낭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진영은 계속 마당을 서성이며 그를 기다렸다. 호선도 이제는 마루에 가만히 앉아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낭선의 소식도 알 길이 없어 진영은 속이 탔다. 뭔가 잘못되었는지 아니면 오가는 길에 사고라도 당했는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급기야 낭선이 자신을 속이고 도망쳐 버린 것은 아닐지 의심까지 들었으나 호선이 관아에 남아있었으니 그 의심은 곧바로 접었다. 답답하고 불안하여 지금이라도 낭선을 찾아 개경으로 달려가고픈 마음이었다. 불안감을 달래려 호선에게 말이라도 붙여보려 하였으나 포기하였다. 인간 아이의 모습인데도 본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다가가기 어려웠다.
“휴……”
정오가 지나고 진영은 결국 마루에 털썩 걸터앉아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진영이 갑자기 마루로 올라와서 놀랐는지 호선은 벌떡 일어나 마루에서 뛰어내렸다.
“어, 놀랐느냐? 미안하구나.”
진영이 사과하였으나 호선은 눈길도 주지 않고 마당 한가운데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도 말은 못 하는 모양이었다. 여간 어색하고 멋쩍은 것이 아니었다.
크르르르……
갑자기 호선이 몸을 부르르 떨며 위협적인 소리를 내었다. 그러더니 쭈그리고 앉은 채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 돌더니 순식간에 본래 모습으로 변하였다. 그는 발밑을 노려보면서 제자리에서 빙빙 돌았다.
“왜 그러느냐?”
진영이 마루에서 엉덩이를 떼는 순간, 땅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지진이 일어나려는 듯 땅이 서서히 울리기 시작하였다.
“이, 이게 무슨?”
진동은 점점 더 거세져서 담장에 금이 가고 기와들이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진영은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어 간신히 기둥을 붙들고 중심을 잡았다. 관아의 문들이 일제히 열리며 고섭과 아전, 나졸들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영감! 지진입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넓은 곳으로 피하셔야 합니다! 어서요!”
“아니, 이게 웬 날벼락이야?”
진영은 고섭의 부축을 받아 마당으로 달려갔다. 담장 너머로 보니 관아 주변의 집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주민들도 밖으로 뛰쳐나와 이리저리 도망치고 있었다.
우우우-
“모두 한곳으로 모이게!”
진영과 아전들은 울부짖는 호선을 에워싸고 쓰러지지 않으려 서로에게 기대었다. 그때, 거대한 나무뿌리가 흙먼지를 튀기며 땅에서 솟아 올라왔다. 뒤이어 관아 곳곳에서 뿌리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관아의 전각들과 담장은 물론 백성들의 집까지 땅에서 올라오는 뿌리로 인하여 무너지고 있었다.
“저, 저게 대체 뭐야?”
“영감, 여기도 위험합니다! 아예 고을을 벗어나야겠습니다!”
“그래야겠네. 어서 가세!”
진영과 아전들은 너도나도 고을 외곽을 향해 달렸다. 나졸과 군사들도 간신히 대형을 갖추어 그들을 뒤따랐다.
나무뿌리들이 여기저기서 흙먼지를 튀기며 올라와 일대를 뒤덮으려 하고 있었다. 큰길은 이미 뿌리를 피해 달아나는 백성들로 인산인해였다. 집들이 무너지면서 샛길들은 대부분 막혀버렸다. 호선은 도망치지 않고 올라온 뿌리 하나에 매달려 그것을 물어뜯었으나 역부족이었다.
“군사들은 길을 열어라! 어서 길을 열어라!”
고섭의 지시에 군사들이 길에 몰린 주민들을 밀어내려 하였으나 소용없었다. 둑으로 막힌 물길처럼 꼼짝할 수 없는 상태였다.
“영감! 정신 차리십시오! 서두르지 않으면 나무에 깔려 죽거나 몰려드는 인파에 밟혀 죽고 말 것입니다!”
공황에 빠져버린 진영은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머릿속이 하얘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전의 말처럼 백성들은 도망치면서 서로 밟고 밟히고 있었다. 호선은 나무뿌리에 붙잡혀 울부짖고 있었고,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뿌리가 튀어나오면서 튕겨 날아가거나 흙과 잔해에 파묻혔다. 나무뿌리는 점점 더 많이 솟아나서 고을을 통째로 집어삼킬 기세였다. 고을을 쑥밭으로 만든 뿌리들은 이윽고 서로 뒤엉켜서 발버둥 치고 있는 사람들을 덮쳤다. 이대로 모든 게 다 끝나는 듯하였다.
“어, 어서, 군사들은 어서 길을 열어라! 백성들을 밀어내란 말이다!”
보다 못한 고섭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신 명령을 내렸다. 그는 요괴와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허나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서 도무지 밀어낼 수가……”
순간 고섭의 눈빛이 돌변하였다.
“그럼, 그럼 죽여라! 다 죽여버려! 어떻게든 길에서 치우란 말이야! 다 죽여!”
군사들은 귀를 의심하였다. 고섭의 마음은 이미 두려움이 이성을 밀어낸 뒤였다.
“명을 듣지 못하였느냐? 당장 시행하라! 이야아앗!”
급기야 고섭은 앞장서서 칼을 뽑아 들고 바로 앞에 있던 주민을 베었다. 군사들은 결국 마지못해 고섭의 명령을 따르고 말았다. 무참한 살육은 이미 비명과 울음소리가 넘치던 거리에 딱히 혼란을 더하지는 않았다. 고섭은 넋이 나간 진영을 끌고 시체들을 밟아 넘었다.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서야 진영 일행은 겨우 고을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든 진영은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나무뿌리가 고을과 주민들을 전부 집어삼킨 뒤였다. 관아를 중심으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람이 북적이던 고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전들과 일부 군사들은 그 혼란 속에서 자신들의 가족을 챙기러 흩어졌다가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였다. 절망한 진영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영감. 괴로우시더라도 계속 가셔야만 합니다. 달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한성으로 가시지요.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괴롭기는 매한가지였으나 고섭은 상관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인간의 무력함을 절실하게 깨달은 진영은 고섭의 부축을 받아 겨우 일어섰다. 반면 군사들은 한양까지 따르고픈 생각이 없었다. 무고한 사람들을 직접 살해하고, 관아와 집이 모두 사라져 살길이 막막해진 마당에 책임감이 남아있을 리 만무하였다. 그러나 이미 한 번 피를 본 고섭이 두려워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정신없이 피신하느라 얼떨결에 남한산으로 들어선 일행은 그대로 산을 넘어 한양으로 가기로 하였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들리는 산속에서 진영은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그러나 흙투성이가 되어 말도, 가마도 없이 두 발로 산을 올라 도피하는 현실은 너무도 참담하였다. 앞으로 다가올 일은 일단 한양에 무사히 도착하고 나서 생각하기로 하였다. 한편 산을 오르는 동안 군사들은 하나둘 몰래 행렬을 이탈하였다.
“저놈들이……!”
고섭이 뒤늦게 그를 알아채고 칼을 뽑아 들었으나 진영은 그의 손을 붙들었다.
“놔두게.”
“영감!”
“우리가 무슨 염치로 저들을 붙잡아 둘 수 있겠는가? 어차피 도성으로 가서 오늘의 일을 고하면 나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걸세. 그러니 괜한 목숨 더 빼앗지 말고 어서 가세나. 원한다면 자네도 따르지 않아도 좋아.”
진영이 붙든 고섭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분노인지 연민인지 모를 눈물이 고섭의 눈에 고였다.
“그 계집에게 속았습니다. 요괴와 직접 대면하고 나니 겁에 질려서 홀로 달아난 것입니다! 제가 기르는 여우까지 내던지고……!”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허나 지금 와서 그를 따져서 무엇하겠는가? 전부 내 잘못일세. 누구의 탓도 아니야. 그러니 어서 가세. 나를 끝까지 따라주겠다면 말일세.”
고섭은 결국 참던 눈물을 쏟으며 칼을 도로 칼집에 넣었다.
“모두 각자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 나는 어차피 죽으러 가는 길이다. 따르지 않아도 좋다. 아니, 따르지 마라. 이는 명령이다!”
진영은 남은 군사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그러자 군사들은 고섭의 눈치를 잠시 보더니 한 명도 빠짐없이 뿔뿔이 흩어졌다. 일부는 그래도 고마운 마음에 진영에게 예를 갖추고 떠났다.
“가세.”
군사들이 모두 떠나고 진영은 고섭의 어깨를 다독이며 걸음을 옮겼다.
갈수록 가팔라지는 산세에 진영과 고섭은 얼마 못 가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나무에 기대어 비탈길에 아슬아슬하게 주저앉았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더는 한 발짝도 움직일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갈증과 허기까지 밀려와 어지러웠다. 무엇이든 먹을 만한 것을 찾아 보고 싶었으나 진영은 자신이 배를 채울 자격도 없다고 여겼다. 게다가 말을 꺼내면 고섭이 또 음식을 구하려 무리할 것 같아 그냥 참기로 하였다.
“조금만 더 쉬었다가 일어나세. 오늘 안으로는 도성에 도착해야 하니까.”
고섭은 대꾸가 없었다. 몹시 지쳐서 깜빡 잠이 들었거나 대답할 기운조차 남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신도 녹초가 되긴 마찬가지였기에 진영은 고섭이 안쓰러워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이윽고 허기와 피로는 진영의 눈꺼풀마저 끌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