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던 진영은 갑자기 차가워진 공기에 놀라 눈을 떴다. 정신이 드는 순간 온몸을 훑는 한기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얼마나 잤는지 이미 해가 넘어가서 산속이 어두워져 있었다.
“이런, 벌써 해가……”
진영은 서둘러 움츠러들었던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이보게, 정 군관. 어서 일어나게. 날이 저물었네. 어서 일어나!”
진영은 아직도 나무에 기댄 채 미동도 없는 고섭을 흔들었다.
“정 군관! 어서 일어……?”
무언가 이상하였다. 고섭의 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드는데도 몸이 꼭 단단하게 굳은 듯 요지부동이었다.
“헉!”
고섭을 살펴본 진영은 경악하며 뒤로 자빠졌다. 고섭은 나무에 기대어 앉은 자세 그대로 가늘고 긴 나뭇가지로 칭칭 감겨 있었다. 서로 포갠 다리부터 얼굴까지 온통 나뭇가지가 휘감아 얼핏 커다란 고치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찌나 세게 감았는지 옷을 찢고 살을 파고들어 피가 새어 나오고 눈알이 터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극…… 극……”
더욱 끔찍한 사실은 고섭이 그 상태로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진영은 그동안 요괴에게 당한 시신들보다 더 참혹한 광경에 차마 도우려는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하고 허우적대며 도망쳤다. 요괴의 손이 심장을 움켜쥐기라도 한 듯 숨이 막혀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산짐승처럼 기다시피 무작정 비탈길을 올라가던 진영은 이내 무언가 단단한 것을 잡았다. 진영은 그것이 작은 나무의 밑동인 줄 알았으나 촉감이 달랐다. 발목이 높이 올라오는 가죽신이었다. 사람의 발을 보는 순간 진영은 이제 살았구나 싶어 고개를 들었다. 개경으로 떠났던 낭선이었다.
“그, 그대는……!”
진영은 낭선이 너무도 반가워 몸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낭선은 느닷없이 진영의 등을 밟았다.
“아무 데도 못 가십니다. 어차피 벗어날 수 없으니까.”
낭선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싸늘한 말투로 진영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발로 힘껏 그를 눌렀다. 그 힘이 마치 커다란 바위로 짓누르는 듯 엄청나서 진영은 저항할 수조차 없었다.
“어어…… 어억……”
이어서 거칠고 따끔거리는 무언가가 발끝에 느껴졌다. 고을을 집어삼킨 것과 같은 나무뿌리들이었다. 뿌리들은 마치 뱀처럼 진영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매의 발에 잡힌 토끼처럼 단단히 붙잡힌 진영은 손가락조차 까딱할 수 없게 되었다.
“딱하게 되었소. 그래도 사또 어른은 소임을 다 하려 애쓰셨는데……. 저기 저놈처럼 오래 끌지는 말라고 내 부탁드리겠소. 잘 가시오.”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낭선의 말뜻을 헤아려 볼 새도 없이 진영은 나무뿌리들이 살을 뚫고 몸속으로 파고들어 피를 빨아내는 것을 느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혼란스럽던 것도 잠시, 정신이 아득해지고 오한이 밀려들며 잠에 빠져드는 듯하였다. 죽어가면서 진영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프지도 않고 더는 살아남으려 아등바등 노력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한산에서 내려와 사람의 발길이 끊긴 어느 외진 곳으로 향한 낭선은 맞은편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진영의 고을에서 나무뿌리에 파묻혀 사라졌던 호선이 달려오고 있었다. 호선은 쏜살같이 낭선의 품속으로 몸을 날렸다.
“고생했다. 다치진 않았지?”
낭선의 배꼽에 얼굴을 파묻던 호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자, 가자. 바로 저기야.”
낭선이 호선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가리킨 곳에는 한 폐가가 있었다. 불에 탔는지 아니면 썩었는지 온통 새까맣게 변하여 반쯤 쓰러진 흉물스러운 집이었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낭선과 호선은 서슴없이 그 으스스한 장소로 향하였다.
집의 마당이었던 공간에 들어선 낭선은 들고 있던 보따리를 땅에 내려놓고 풀었다. 입구를 잘 봉해놓은 술병과 약과였다. 보따리를 풀자마자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호선은 약과를 보며 입맛을 다셨으나 먹으려 들지는 않았다.
“약조대로 이 아이를 무사히 돌려보내 주시어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것 한 번 드셔보시지요. 개경에서 어렵게 구해온 귀한 것입니다.”
술과 약과를 펼쳐 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은 낭선이 허공에 대고 말하였다. 꼭 폐가에 누군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하였다.
“간소하지만 드시고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십시오. 그 무엇으로도 당신의 깊은 원한을 달랠 수 없겠으나 이것들로 피 맛을 씻어내십시오.”
말을 마친 낭선은 폐가를 향해 엎드려 절을 올리고는 도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호선아. 여긴 옛날에 이 조선이 들어선 지 얼마 아니 되었을 때 이제라는 왕자가 살았던 곳이야. 망나니 같은 작자라 공부와는 담을 쌓고 여색을 밝혔는데, 어느 날 어리라는 여인이 그 눈에 들고 말았어. 이미 임자가 있던 몸이었는데도 상대가 왕자라 차마 뿌리치지 못하였단다. 결국 다음 임금이 될 왕자였던 이제는 궁궐에서 쫓겨나고 이리로 오게 되었지. 그런데 그 아비는 그래도 제 새끼라고 어리를 데려가도록 해 주었단다. 어리는 따를 수밖에 없었고, 왕자를 홀려서 망친 요부라며 손가락질은 물론 손찌검까지 당해야 했대. 얼마나 억울하고 서러웠겠니? 결국 저 남한산에 올라가서 목을 맸고 그 원한이 목을 맨 나무에 스며들었던 거야. 오랜 세월 동안 죽은 자리를 떠나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울부짖으면서 산에 떠돌던 짐승들의 혼과 전란으로 죽은 넋들까지 전부 집어삼켜서는 악귀가 되고 말았어.”
호선은 낭선의 말을 전부 알아들었는지 표정이 침울해졌다.
“참으로 불쌍하지? 꼭 우리 어머니처럼 말이야. 내가 접때 우리 어머니 이야기 들려줬지? 오랑캐들에게 끌려간 어머니를 외조부님이 재물을 써서 어렵게 데려오셨는데, 아버지란 작자는 정조를 잃은 더러운 여자라며 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느냐고 책망하였어. 그러고는 나에게도 어머니와 연을 끊으라고 하였고. 아예 죽었다고 여기라고도 하였어. 다시 들어도 어이없는 이야기지? 나를 낳고 인어의 살점을 구해오면서까지 나를 살려주신 분을 잊고 살라니. 그런 후안무치이니 제 자식 손에 죽었지.”
낭선의 눈에는 어느새 분노가 채운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인간의 삶과 세상을 잘 모르더라도 어떻게든 위로해 주고 싶었던 호선은 낭선의 뺨을 어루만졌다.
“어리가 이 땅의 사람들을 마음껏 잡아먹고 한을 풀었으면 좋겠다. 난 꼭 이 조선이 우리 집안처럼 망하는 꼴을 보고 죽을 테야. 먼 옛날 고려와 신라처럼 조선도 언젠가 반드시 그렇게 망할 거야. 그때까지 내 곁에 있어 줄 거지, 호선아?”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려는 듯 호선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낭선이 호선에게 안겨 묵은 고통과 슬픔을 달래는 사이 술과 약과를 차려놓은 자리에는 빈 술병만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