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이 만든 유일무이한 아름다움
스페인 여행 때는 늘 가고 싶은 도시가 넘쳐나서 문제다. 게다가 교통 연결이 편치 않아서 ‘코르도바’를 제치곤 한다. 하지만 안달루시아식 정원 '파티오' 축제로 상징되는 '꽃의 도시'가 코르도바다. 방문해보면 이 도시를 떠나기 싫어질 것이다. 이 도시를 찾아보면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이슬람이 남긴 유산' 메스키타 Mezquita다. 메스키타는 스페인어로 모스크란 뜻이다.
코르도바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일단 10세기 유럽에 대한 상상력이 가미되면 좋겠다. 당시 기독교 유럽의 중세 도시들 대부분은 비포장 흙길이었다. 하수도 시설은 당연히 갖춰져 있지 않았다. 거리엔 오물과 악취가 들끓었다. 주민들 대부분은 문맹이었다.
같은 시대 코르도바의 모습은 어땠을까? 일단 중세 유럽에서 몇 안 되는 거대도시였다. 인구 20만 명 이상이 살았다. 도로는 잘 포장돼 있었고 야간엔 가로등까지 켜졌다. 하수도는 당연히 정비돼 있었고 수백 개의 공중목욕탕, 병원에 공원, 도서관까지 갖췄다. 놀라운 건 도서관 이용자들이 주로 주민들이란 점이다.
중세 시대 이슬람은 기술력이나 지식의 측면에서 유럽 기독교를 압도하는 선진도시였고, 코르도바는 그 상징이었다.
코르도바가 이렇게 이슬람 왕조의 수도가 된 건 756년의 일이다. 이때 무슨 일이 있었냐면 시리아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우마이야 왕조가 몰락했다. 바로 압바스 왕조의 반란 때문이었다. 우마이야 왕족 혈통에 대한 살육이 이뤄졌다. 그때 우마이야 왕조의 마지막 생존자가 바로 압드 알-라흐만 1세 Abd al-Rahman 다. 스페인 쪽으로 도망을 쳤고 코르도바를 수도로 정해 이곳을 통치했다. 후 우마이야 왕조라 부르는 시기다. 참고로. 다마스쿠스를 정복한 압바스 왕조는 그 후 바그다드로 수도를 옮겨 한동안 이슬람 세계를 통치한다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는 우마이야 왕조 집권 시기에, 그전에 세워졌던 ‘성 비켄테’ 교회를 허물고 그 자리에다 모스크를 지은 것이다. 증축을 거듭하면서 한 번에 25,000명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규모로 커졌다. 지금도 코로도바 구시가를 산책하다 보면 담장 규모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육중한 메스키타를 만나게 된다. 아마도 당시 우마이야 왕조는 압바스 왕조의 바그다드에 필적하는 모스크를 짓고 싶었던 듯하다. 건축은 785년에 이뤄졌는데 교회를 허물면서 교회 자재를 건축자재로 활용했다. 덕분에 세월이 중층적으로 쌓이면서 특이한 모습의 모스크가 됐다. 로마 시대의 흔적이 보존된 곳도 있다. 투명한 유리를 통해 교회 지하 바닥의 유물을 볼 수 있게 해 뒀다. 선명한 색상의 타일과 정교한 모자이크를 볼 수 있다.
기록 중엔 코르도바 출생의 10세기 이슬람 역사가 아흐마드 알 라지가 쓴 게 남아 있다. ‘당시 알 리흐만 1세가 관용을 베풀어 기독교인들이 한동안 교회에 예배드리는 것을 허락했다’고 전한다. 그러다가 교회건물을 기독교인들로부터 구입해 철거하고, 그 자리에 모스크를 건축했다는 기록이다. 나름 합법적인 매매의 과정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러고 보면 이슬람은 유대인들에 대해선 꽤 환대했던 편이다. 완전한 자유까진 아니지만 이전의 가톨릭의 탄압과 비교해, 종교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자유는 부여했다. 코르도바에 '유대인 거리'까지 조성된 이유다. 참고로 이들 유대인이 쫓겨난 건 레콩키스타(Reconquista)로 스페인이 가톨릭 국가로 바뀐 후 1492년에 내려진 유대인 추방령, 알함브라 칙령에 의해서다
외관상 수수하고 육중하기만 한 벽의 문을 통과해 메스키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중정(Courtyard)과 중정을 에워싼 열주 양식의 복도를 만나게 된다. 이슬람교도들이 손과 발, 얼굴을 씻던 시설로 추정되는 분수도 있다. 전형적인 초기 이슬람 건축 양식들이다. 한 가지 그때랑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오렌지 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점 정도일까?. 이건 레콩키스타 이후 기독교도들이 심은 것이다. 원래 모스크로 쓰이던 시절엔 텅 빈 공간이었다. 예배를 보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코르도바 메스키타의 상징은 붉은색과 흰색이 교차 사용된 돌의 무늬가 아닐까 싶다. 강렬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게다가 이게 아치 무늬를 만들면서 이중으로 세워져 있다. 이 이중 아치가 없다면 코르도바 메스키타가 주는 독특한 느낌은 사라질 것이다. 교회 건축에 쓰인 로마식 기둥을 재활용하고 그 위에 거대한 이슬람식 2층 아치릏 둬 천장을 받치고 있다. 돌기둥의 숲 속에서 느껴지는 공간감에 색감의 대비가 주는 아름다움이 특징적이다.
앞에서 얘기했듯 기둥은 모두 성당이나 신전에 쓰였던 것들의 재활용이다. 당연히 크기나 굵기가 다르다. 건축가 입장에선 서로 다른 하중의 분산을 고민하면서 이런 식의 이중 아치를 구상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다마스쿠스엔 이런 이중 아치 기법을 썼던 모스크가 존재했다.
결국 이슬람 건축 양식을 쓰면서 현지의 유산들이나 자재와 접목을 이뤘다는 점이 흥미롭다. 덕분에 전무후무한 후우마이야 왕조 건축 양식의 핵심적인 특징이 만들어졌다.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고 융합하고 파괴하고 변모하면서 새로움이 탄생한 순간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13세기 말, 이번엔 코르도바가 가톨릭 국가가 된 후 이 메스키타를 허물어버리고 성당을 새로 짓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에 내부 공간 일부만 변형시켜 가톨릭 교회의 성당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구조 변경을 했다. 허물어버리기엔 모스크가 너무나 아름다워서였을까? 초승달 표식이나 이슬람 구조물 대신 십자가를 붙였고, 예배당, 제단, 회중석만 만들었다. 성당 쪽으로 강한 빛이 들어오게 만들어 어두운 모스크와 대비되게 만들었다. 다만 개인적 감상으론 모스크 쪽이 훨씬 아름답다. 당시 왕 카를로스 5세도 이곳에 와서 ‘흔히 볼 수 없는 것을 없애고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만들었다'라고 탄식했다. 같은 심정이었나 보다. 그래도 파괴 대신 공존을 선택한 건 다행이다. 덕분에 코르도바 메스키타는 모스크와 성당이 한 공간에 있는 지구 상 유일한 곳이 됐다.
그라시아스~ 코르도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