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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뚜벅 Aug 17. 2021

생 마르탱 운하를 따라 걷다

도살장, 과학관이 되다

파리 북동부 생 마르탱 운하는 새롭게 변모하는 도시 공간인데 삶 속에 배어든 운하의 문화가 매력적인 곳이다. 영화 <아멜리에> 덕분에 유명세가 진즉 있긴 했다. 혼자 놀기의 달인이던 주인공이 물수제비를 뜨던 곳이 생 마르탱 운하 철제 다리 위에서였다.


도시에서 산업적으로 쇠락한 곳에 예술가들이나 자본이 결합해 좋은 공간으로 바뀌는 일이 잦은데 이곳도 마찬 가지다. 운하를 따라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덕분에 공방이나 예쁜 편집숍, 식당이 만들어지면서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생 마르탱 운하는 센 강에서 출발해 빌레트 공원을 지나 우르크 운하와 생드니 운하까지 이어진다. 전체 길이가 4.6Km 정도니 사실 긴 운하다. 긴 구간을 이동하는데 당연히 수위의 높낮이가 같을 순 없다. 그래서 갑문을 9개나 뒀다. 높낮이 차는 대략 25m 정도다. 갑문이 일정 구간의 물을 막아서 수위가 비슷하게 만들고 다른 쪽 문을 열어 배를 이동시키는 원리로 작동한다. 운 좋게 배가 지나갈 때 보면 물을 폭포처럼 쏟아내는 갑문을 보게 될 텐데 장관이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중간중간 이동 통로로 쓰이는 다리들이 아름답다.


물론 센강도 아름답지만 이런 운하는 주민들의 삶터라서 더 좋다. 운동하는 사람, 멍 때리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 맥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 광장에서 열리는 시장을 오가는 사람 등 그냥 일상의 표정이 가득한 곳이다. 생 마르탱 운하 가는 길, 빵집도 개인적으론 기억에 남는다. 단맛 나는 빵 말고 바구니에 가득 담겼던 식용 빵을 하나 사 올리브 오일과 함께 먹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맛 중 하나다.

처음 이 운하를 상상했던 사람은 루이 14세였고 시공에 들어간 건 나폴레옹 1세 때였다. 하지만 전쟁하느라 바빠서 실제로 운하가 만들어진 건 20년도 더 지난 후인 1823년 샤를 10세 때였다. 그래도 와인에다 세금을 거둬 운하 건설 비용으로 쓰겠다는 발상을 한 게 나폴레옹 1세니 역할은 인정해줘야 한다. 운하를 만든 이유? 처음엔 파리 시민들의 식수원 사용을 위해 만들어졌다. 깨끗한 물은 당시 콜레라 등 질병에 대응하는 의미가 컸다. 만들어지고 나서는 당연히 배를 통해 식량이나 목재 등 화물의 운송 통로로 쓰였다. 그리고 그런 산업적 기능이 사라진 오늘은 유람선이 오가고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로 시민들의 산책로로 쓰는 중이다.

이곳을 찾는다면 먼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날 수 있다. 갑자기 무슨 소린가 하실 텐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발명한 운하 수문 잠금장치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갑문 시설을 자세히 보면 물을 가둬둔 수문을 볼 수 있다. 다 빈치 전엔 이 잠금장치를 수직으로 들어 올리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다 빈치의 발명은 수평으로 두 개의 문을 만들어 여닫는 식으로 바꾼 것이다. 덕분에 물을 가두는 비율도 높아지고 여닫기도 훨씬 간편해졌다. 결국 다 빈치가 개발한 방식은 그 후 운하 건설에 보편적으로 쓰인다. 프랑스는 운하 건설을 위해 다 빈치를 초청하기도 했는데, 다 빈치의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다빈치가 남긴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운하 갑문을 통해 높낮이를 해결하는 구상을 담은 그림이었다. 참고로 다 빈치가 건설에 도움을 더한 운하는 이탈리아 밀라노에도 있다. 나빌리오 그란데Naviglio Grande인데 생 마르탱 운하와 느낌이 비슷하다.  

Navigilo Grande

생 마르탱 운하의 또 하나의 매력은 지하 구간 이동에 있다. 19세기에 도시가 커지면서 지하화한 구간을 유람선을 타고 이동하는데 재미를 더한다. 센 강 조금 지난 Rue du Faubourg du Temple 지점에서 바스티유 광장까지가 지하 터널이라고 보면 된다. 이동 중 중간중간에 원형 환기구를 통해 채광과 환기가 이뤄지는 것도 흥미로운데, 길이로 치면 생 마르탱 운하 거의 절반 정도의 구간이 지하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곳은 빌레트Villette 지역이다. 생 마르탱 운하의 끝자락쯤이다. 여긴 서울로 치면 원래는 ‘마장동’ 쯤 되는 곳이다. 도축장이었다. 처음 이곳이 도축장으로 개발된 건 오스만 때다. 맞다. 파리의 도시 골격을 만들었던 도지사 오스만 얘기니까, 1868년의 일이다. 그 당시 파리의 도축장은 몽마르트르Montmartre, 그르넬Grenelle 등 5군데로 흩어져 있었는데 빌레트 한 곳으로 합했다. 도시 계획 수립 직전에 파리에 콜레라가 퍼졌기 때문에 위생 이유가 컸다. 그리고 미관상 이유라거나 통합 관리의 이슈도 작용했다. 물론 도축 후 물류도 고려됐다. 여긴 생드니 운하가 흐르고 순환철도역도 가까울 정도로 입지 조건이 나쁘지 않다.  

http://lavillette.com/

하지만 2차 세계대전 후 이곳도 변모했다. 냉장, 냉동 기술이 발전하면서 도축 작업이 주로 생산지 인근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1974년 3월 모든 도축 작업이 중단됐다고 한다.

사진은 @Unsplash

 그 후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된 게 80년대 미테랑 대통령 때다. 몇 개 건물은 철거됐지만 가장 큰 소 도축 시설은 1986년에 ‘라 빌레트 그랜드 홀’로 재탄생한다. 원래 소 도축장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를 개조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연극, 무용, 콘서트, 뮤지컬, 전시회를 여는 공연장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곳을 상징하는 건물은 ‘과학 및 산업 시티(Cité des sciences et de l’industrie)’다. 과학관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흥미로운 곳이 많지만 하나만 소개하면 생명과학관이다. 유전자 변형으로 만들어진 나뭇잎 전시가 참 기괴하다. 그리고 의학관 2층에 있는 우리나라 무당과 굿에 대한 소개도 흥미롭다. 옛날 여러 나라에서 치료에 대한 믿음을 가졌던 것들에 대한 전시물로 보면 된다. 파리는 예술의 도시지만 잘 뜯어보면 식물원과 과학관 등 과학의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였다면 이 정도 규모의 공간이 생기면 아파트부터 지었을 걸 생각하니 파리의 공공건축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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