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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뚜벅 Aug 06. 2021

강릉은 왜 커피의 '메카'가 됐을까?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1서 3박

우리나라 바다 옆 하면 떠오르는 풍경? 일단 횟집이 줄지어 있어야 할 거다. 서해라면 조개구이집도 있고. 비릿한 바다 내음까지. 그런데 강릉 안목해변의 풍경은 확실히 달랐다. 횟집이 하나 있긴 했지만 해변 끝머리에 수줍게 존재했다. 물론 커피 말고 소주 파는 집도 있긴 하지만 500m 정도의 길을 따라 대부분이 카페였다. 스무 곳 넘는 집이 카페로 추정된다. 카페는 대부분 3층 구조인데 통창이 있거나 시원스럽게 뚫려 있는 구조다. 바다를 배경 삼아 커피를 즐기는 20대들이 가득하다. 이게 2021년 안목 해변의 모습이었다.

@ 바다로 가는 그림 골목 안목 벽화거리, 2017년 올해의 관광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강릉을 놓고 커피의 메카라고 부르더니 정말이구나 싶었다. 여러 카페 중 방문해 본 곳은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들어간 롱브레드란 곳이었는데 커피 가격도 착한데 기본 이상의 맛이다. 게다가 이런 곳은 사이드 메뉴가 맛없거나 바가지요금인 곳이 많은데, 아니다. 주문한 파니니조차 맛있고 양도 푸짐했다. 대기 시간이 좀 걸린 게 흠이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다 보면 그 정도는 용서될 정도다.

@롱브레드

강릉 안목해변이 언제부터 이렇게 커피의 상징이 된 걸까? 너무 궁금해 찾아보니 원래 이 지역도 옛날엔 횟집 가득했던 곳이었다. 대신 가게 앞에 커피 자판기가 많았다고 한다. 500미터 정도의 해변에 80개 정도의 커피 자판기가 있었을 정도다. 그런데 자판기마다 맛이 다 달랐다. 옛날 80년대엔 커피와 설탕, 프림을 섞는 자기만의 비율들이 존재했다. 1:1:1 1:2:1 식이다. 마찬가지로 자판기마다 자기만의 최적 배합비율로 차별화를 시도했던 것이다. 게다가 바다가 예쁜 곳이다 보니 순식간에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가 됐다.  버스 노선도 하루 3번뿐이라 쉽게 오기 힘든 곳이었는데 이 점도 원인이었을까? 커피 메카로 변신한 씨앗 같은 얘기다.


강릉이 커피 메카가 된 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박이추란 1세대 바리스타 덕분으로 보인다. 강릉 보헤미안 커피공장 역시, 지금은 너무 유명한 곳이다. 파나마 게이샤, 하와이안 코나, 블루마운틴 같은 커피 도 맛볼 수 있는. 그런데, 박이추 이  분도 참 독특한 인생을 사셨다.  원래 재일교포인데 낙농, 목초 이런 일을 전공했던 분이다. 그래서 젊어서는 야마기시 생태 마을의 꿈을 꾸면서 강원도에서 목장을 운영했다. 그런데 사업을 접을 때쯤 '땅 하고 똥만 남았다'라고 할 정도로 폭삭 망했다. 그러고 나서 일본에 다시 돌아가 커피 유학을 한다. 당시 한국은 믹스커피가 대세였는데 그 시절에 드립 커피를 배워와서 전파해야겠다 꿈을 꾼 것이다. 그리고, 고대 앞에서 보헤미안이란 카페를 열었는데, 사실 잘 안 됐다. 그 시절에 비싼 고급 품종의 커피를 팔면서 타산 맞추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 물가도 물가고… 그 후 일본의 고향마을과 비슷한 바닷가 강릉에 다시 터를 잡아 가게를 열고 커피 드립을 시작했다.

@강릉 커피축제

내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려고 커피를 배우던 시절, 선생님은 1세대 바리스타 얘길 가끔 해주셨다. 1서 3박. 1세대 바리스타를 상징하는 이름들이다. 신촌에서 융드립으로 이름을 날린 서정달, 오사카에서 커피를 배워온 박상홍, 구로동 다도원의 박원준 이 분들이 쟁쟁한 1세대 바리스타다. 특히 박이추 선생 얘기가 흥미로왔다. 우리 같은 초참 수습생들이 달달달 떨면서 가늘게 가늘게 드립 물방울을 커피 원두에 내릴 때였다. 그때, 박이추란 분이 있는데 그냥 주전자로 휙휙 원을 세 번 돌리면 추출이 끝났다고 했다. 대충 내린듯한데 커피를 마셔보면 또 놀랍게도 맛있다면서. 마치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하는 표정이 흥미로왔다

@강릉 커피축제

내가 박이추 선생이 대단하다 느낀 건 사실, 자신의 커피 스타일을 바꿔 간 유연성 때문이다. 박이추, 이 분은 처음엔 커피의 추출 성분을 더 많이 하려고 강한 볶음 방식을 쓰는 걸로 유명했다. '강배전'이라고 한다. 쓴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은 이 강배전의 강렬함을 좋아하겠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커피가 주는 과일맛이나 신맛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원래 신 맛이 나는 품종인 에티오피아 계열의 생두를 강배전 한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온다. 그런데 박이추 이 분은 강하게 볶는 걸로 명성을 쌓고 이미 성공을 거둔 후에 약하게 볶아 신맛을 살리는 걸 섞었다. ‘약배전’이라고 한다. 스스로의 로스팅 스타일을 수정한 셈이다. 노년에 다가갈수록 궤도 수정이 어려운 게 인생이다. 게다가 이미 성공한 인생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걸 바꾸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후배들과 토론했던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니 대단하다 싶다.

@강릉 커피축제

누가 뭐래도 이 분이 강릉에 살았기에 강릉이 커피 메카가 된 것이다. 1세대 바리스타 ‘전설의 맛’을 느끼기 위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강릉 보헤미안으로 달려간 이들이 한둘일까?


그리고 대한민국 커피의 대명사 중 하나가 된 ‘테라로사’란 상징이 더해지면서 강릉은 대한민국 대표 커피도시가 됐다.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는 한 마디로, 산속에다 커피 로스팅 공장을 짓고 전 세계를 돌면서 커피농장들을 발굴하고 직거래를 트면서 스페셜티 커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이다. 그리고 한 명만 더 꼽으라면 최금정 커피커퍼 대표가 있겠다 2001년에 횟집 즐비하던 안목에다 국내 최초 3층 통유리 카페를 연 분이니까. 다들 개척자들이다.


갑자기 흥미로운 게 떠올랐는데 바다가 커피랑 인연이 깊다는 점이다. 스타벅스의 고장은 시애틀이고, 일리 커피 1호점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 있다. 둘 다 해안도시다. 게다가 미국이나 이탈리아는 원래  커피나무를 키우지도 않는다. 그런데 커피 브랜드의 1호점들을 갖춘 도시가 됐다. 안목 해변을 보유한 강릉에서도 세계 시장을 주무를 커피 브랜드가 만들어질까?

참고로 안목항에 간 날, 폭우가 갑자기 들이붓듯 쏟아지다가 순식간에 화창하게 개는 바람에 해변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우리 가족, 바다를 전세 낸 듯 해수욕을 즐겼다. 우리 모두 이 해변은 유럽의 어느 해변 같다 말했는데 새파란 하늘과 쪽빛 물빛, 카페 건물이 만든 실루엣이 그런 느낌을 줬나 보다. 생각해 보니 그해 여름의 즐거운 추억이다.


그날 강릉이 더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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