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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뚜벅 Sep 25. 2021

프랑스 생드니, 중세의 소망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첫 성당

처음 프랑스 파리 북부 생드니를 찾은 건 출장 때문이었다. 낙후된 이미지를 주는 동네였다. 이민자들도 많고 히잡을 쓴 여성도 자주 눈에 띄었다. 로맨틱한 파리 도심과는 달리 거칠고 황량해보였다.아마도 아랍이나 아프리카 출신이 많아서 그리 느낀듯하다.


하지만 그 곳엔 유럽 많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최초의 성당이 있다. 고딕 양식은 특이하게도 건축양식의 선구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기록돼 있다. 생드니 수도원의 쉬제 수도원장이다.

먼저, 생 드니, 즉 드니 성인은 프랑스에서 정말 유명한 성인이다. 파리 몽마르트르 샤크르쾨르 성당 등 여러 곳 성당 외벽 조각을 자세히 보면 자신의 잘린 머리를 들고 서 있는 성인을 볼 수 있다. 바로 성 디오니시우스다.


원래 이탈리아 출신인데 250년경 파리에 파견됐다. 초대 주교였다. 그러다 선교 활동 중 이교도에게 참수돼 순교했다. 1290년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가 쓴 <황금 전설>에 따르면 디오니시우스 성인은 참수형을 당한 뒤에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자신의 묘지로 점찍어둔 지금의 생드니까지 걸어갔다고 한다. 참수를 당한 곳이 몽마르트르 언덕 근처였으니 장장 6Km 정도의 거리다. 코로나 전 파리 화가들의 스케치 손길이 분주했던 몽마르트르 언덕이 원래는 순교자의 산이었다.

생드니 수도원의 성당 증축은 1144년에 시작됐다. 원래 중세 사람들의 삶의 기반은 종교였다. 그런데 유럽에선 10세기, 11세기엔 마을마다 풍요가 넘쳐났다. 휴경지를 줄이는 농법이 도입됐고 덤불과 잡초가 무성한 땅을 개간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덕분에 풍작이 거듭되고 비약적인 생산력의 발전이 이뤄졌다. 성당 증축은 그 결과물이다. 이제 어떻게 지을까?


쉬제 원장은 첫째 '빛'에 주목했다. ‘사람들은 신체의 감각을 통해 신성한 묵상에 오르게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정말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 환희와 감격을 느끼고, 그게 영원한 것, 고귀한 세상에 대한 염원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성당 내 빛이 만드는 공간과 색과 선이 만드는 아름다움은  ‘비천한 땅에서 고귀한 세상’으로 성도들을 이끌 매개체였다. 게다가 그에게 빛은 하나님이었다. 초월적이며 본질적인 빛이 세상의 빛으로 변해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하고 성당 안을 가득 채워야했다.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이 처음 만들어졌다. 그리고 세로로 길쭉하게도 배치됐다. 빛의 벽이 세워진 것이다.

이게 왜 혁신적이고 새로운 양식이냐면 그전까지 성당 건축은 육중하면서 어두운 느낌이 강했다. 그런 공간에 빛이라는 신의 광휘가 가득 찬다면……그게  쉬제 원장이 새롭게 꿈꾼 성당의 모습이었다.  아름다움을 통해 아름다움의 근원을 드러내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중세의 생각, 빛의 신학을 건축으로 구현한 게 고딕 양식인 것이다.    

고딕 양식의 또 하나의 특징을 꼽자면 뭐니 뭐니 해도 바로 ‘높이’ 일 것이다. 다른 건축 양식과 달리 누구나 고딕 양식은 금방 알아차린다. 하늘로 뻗은 높이는 결국 하나님을 향한 사람들의 느낌을 표현한다. 높이를 키우고 키운 후 그 끝에 첨두아치를 뒀다. 끝이 뾰족한 아치는 높이의 느낌을 시각적으로 극대화시켜 주는 장치다. 그리고 이들에게 높이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높이여야 했다. 지금 표현하고 싶은 건 불멸의 느낌이니까. 그래야 세상에 발 딛고 사는 이들을 한 순간이라도 초월의 마음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사는 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초월적 느낌의 높은 성당이 그들에게 어떤 역할을 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딕 성당을 개축하면서 벽과 문을 조각으로 뒤덮었다. 초기 기독교 역사 중 일정 기간에 이콘 파괴의 시대가 존재했음을 떠올려보면 큰 변화다. 책이나 문자가 많지 않던 시절,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친숙한 양식이 고딕 양식인 이유도 어쩌면 우리도 이미지로 세상을 보는데 익숙한 세대라서가 아닐까?  

성당에 빛이 가득 차게 하려면 스테인드글라스는 커져야 하고 벽도 얇아질수록 좋다. 게다가 천정 높이까지 극한으로 높아져야 하는데 이때 생기는 고민은하중 문제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고딕 양식은 성당 외부 측면에 플라잉 버트리스란 버팀목을 만들고, 천정엔 활 모양의 리브 볼트를 둬서 하중을 분산시킨다. 그렇게 다양한 성당 건축의 기법이 철학을 도와 만들어지는 성당이 바로 고딕이다.


이제 유럽의 도시들은 도심 한복판에 대성당을 하나씩 갖게되는 대성당의 시대를 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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