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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뚜벅 Aug 07. 2021

보스니아 스타리 모스트

다리에 얽힌 슬픔의 역사

스타리 모스트 Stari Most는 오래된 다리란 뜻이다. 로마 시대부터 있던 다리니 그렇게 불릴만도 하다. 처음엔 나무로 만든 현수교였다고 한다. 한 번 상상해보시라. 나무다리가 체인에 매달려 있는 형태였을 테니 흔들림이 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계곡 아래로는 깊이가 20m를 넘는다. 다리를 지나면서 아마도 흔들 흔들 '죽음의 공포'를 느꼈을 법 싶다. 다리 아래 네레트바 강으로 내려가 보니 물살은 지금도 거세다.

이 다리를 지금의 돌다리로 바꾼 이들은 오스만 제국 사람들이다. 참 흥미롭다.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뉘면서 이곳 주민들의 종교는 가톨릭과 정교로 나뉘었다. 그 후 오랜 기간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면서 개종 작업도 이뤄졌다. 그 결과 ‘하얀 피부의 이슬람교도’가 가득한 땅이 된 게 보스니아다. 발칸 반도는 이베리아와 아페니니와 함께 이슬람이 기독교와 조우한 곳이다. 모스타르에서 길을 걸으면서 기념품 샵 분위기만 봐서는 '작은 터키'엔 온듯한 느낌이었다.

16세기 무렵, 술탄 슐레이만은 다리를 만들라고 명령했고 오스만 제국 최고 건축가 시난의 제자였던 하이루딘이 다리를 만들게 된다. 나무 대신 돌로 아치교를 만들었다. 1557년에 시작해 1566년에 만들었으니 꽤 오랜 기간이 소요된 편이다. 길이 30m 정도에 폭은 4m 정도라고 가늠하면 편하다. 지금 기술로 보면 이런 정도의 다리를 만든 게 뭐 대단한 일일까 싶지만 당시로선 경이로운 기술이었다. 단일 구간에선 가장 긴 다리였다고 한다. 추정이지만 하이루딘은 물에 비친 다리의 모습까지 해서 하나의 원을 그리도록 설계한 듯싶다.


처음 다리가 만들어졌던 당시, 이곳을 방문한 첼레비의 탄성이다.


"다리는 하나의 절벽에서 다른 절벽으로 뻗어 나와 있고 아치는 하늘로 치솟은 무지개를 닮았다.

가난하고 비참한 알라의 노예인 나는 16개 나라를 거쳐갔지만 이렇게 높은 다리는 본 적이 없다.

그것은 하늘만큼 높은 바위에서 바위로 던져졌다"

(17세기 오스만 제국의 여행자 에블리야 첼레비(Evliya Çelebi)의 기행문)

"쉴레이만에게 있어서 이 다리의 우선적인 기능은  자신의 군대가 달마티아 해변의 부유한 도시로 손쉽게 접근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다리는 또한 은이 풍부하게 산출되는 보스니아 내륙의 산악 지대와 교역을 수월하게 해 주었으며, 달마티아의 염전으로부터 귀중한 소금을 내륙 지방의 마을로 신속하게 수송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에서


속설엔 계란이나 금속을 섞어 다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다리 공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지금 진위 여부를 확인하긴 힘들다. 다만 후세 사람들이 다리의 견고함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나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건 사실이기도 하다. 나중에 나치의 탱크가 이 다리를 지날 때도 거뜬했으니까.


참고로 헝가리 출신으로 조국에선 환영받지 못했던 화가지만 촌트바리 역시 이곳을 방문해 그림을 그렸다.

Roman Bridge at Mostar 1903, 촌트바리

이렇게 견고한 연결의 시설물이었고 누군가에겐 창조의 원동력이었지만 다리는 유고 내전의 포화 속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비극이었다. 시내 곳곳에 돌 위에 새겨진 문구는 마음 아픈 이야기다. ‘DON`T FORGET 93’

@twouprid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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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오가면서 교류했고 그렇게 수백 년을 이웃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벌인 일이었다. 크로아티아인들은 대개 모스타르의 서쪽에 살았고 보스니아는 동쪽에 거주했다. 한 때 이웃이었던 이들이 총부리를 겨눴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 합세해 세르비아와 맞서기도 했던 사이였다. 화력에서 우세했던 크로아티아가 모스타르를 9개월 정도 포위했고 93년 11월 9일 60여 발의 집중 포격을 보스니아 거주지를 향해 쏘아댔다. 다리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당연히 모스크도 파괴됐다. 무의미한 전쟁의 비극. 무너진 다리와 모스크가 웅변하는 이야기다.

유네스코의 제안으로 98년 다리 재건은 시작됐다. 강물에 떨어진 다리의 파편까지 건져서 복원 공사에 이용했다. 가능한 오스만의 건축기법을 최대한 따라 재건이 이뤄졌다. 400년 전 다리 공사 때 돌을 운반해온 채석장에서 다시 돌을 구해왔다. 2001년 본격적인 재건 공사가 시작된 후 2004년에 다리가 개통됐다. 지금 쓰고 있는 다리다.

지금 이곳은 보스니아 지역 중 그나마 관광으로 활기를 되찾은 곳이다. 다리를 찾아온 관광객 때문이다. 방문 당시 다리 위엔 관광객들이 돈을 모아주면 강을 향해 다이빙하는 보스니아 청년들이 있었다. 원래는 담력 실험 같은 성인식의 의미로 행해지던 다이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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