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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뚜벅 Aug 07. 2021

색채의 마법사, 훈데르트바서

비엔나에서 만난 아파트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했을 때 꼭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는 오늘 소개하려는 훈데르트바서가 개조한 ‘알록달록’ 아파트였다.

일단 빈이라는 도시는 흥미로운 구조를 갖고 있다. 성당을 중심으로 한 구도심이 있고 그 구도심을 동심원으로 둘러싼 링스트라세(Ringstrasse)로 불리는 대로에 근대 건축물이 존재한다. 그리고 더 외곽엔 서민들의 주거공간과 공원,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 동심원이 퍼져가면서 층위를 달리하는 시대가 섞이고 한 공간에 공존하는 느낌이  참 이채롭다.


훈데르트바서 아파트를 찾아가면 이거 꽤나 외곽 지역이구나 깨닫게 된다. 그러다 원래 이 아파트가 ‘임대 아파트’란 사실이 떠올랐다. 일반 아파트보다 30∼40% 정도 저렴하게 입주할 수 있는데 대략 가장 작은 집이 9평 정도다. 일단 이 부분부터가 흥미롭다.

쓰레기 소각장 슈피텔라우(Spittelau)

생각해보면 훈데르트바서가 만든 건축물 중엔 사람들이 싫어할만한 유형의 건축이 많다. 예를 들어 그가 디자인한 쓰레기 소각장 슈피텔라우(Spittelau)가 있다. 원래 소각장은 ‘우리 동네엔 안돼’의 대표적인 시설 아닐까? 그런 곳을 관광명소로까지 탈바꿈시켰다. 모르긴 몰라도 슈피텔라우는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지역민에게 사랑받는 소각장일 듯싶다.

임대 아파트엔, 물론 편견이지만 저소득층이 사는 우범지역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훈데르트바서 아파트는 다르다. 지역 내 차별의 공간이 아닌 자부심의 공간이다. 여기 사는 게 너무나 자랑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관광객들이 방문하다 보니 당연히 카페나 식당도 만들어지고 거리도 단장되면서 지역에 활력이 가득하다.


기회가 되면 뉴질랜드 북섬 카와카와라 공중화장실도 방문해보고 싶다. 여기도 훈데르트바서의 생태건축 중 하나인데, 공중 화장실도 우리 동네에 꼭 만들어주세요, 반기는 시설은 아니다.

훈데르트바서 아파트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가우디를 떠올린다. 아마도 곡선이 주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궁금증이 생겨 훈데르트바서의 건축 철학을 좀 살펴봤다.


재밌는 게 '창문권'(Window right)이란 게 있었다. 이건 쉽게 말해 거주민들이 자기 팔이 닿는 범위까지 창문 주변의 색깔 같은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쉽다. 흔히 눈이 '영혼의 거울'이라 불리듯, 창문은 거주자의 정신을 보여준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주어진 권리다. 자유를 표현하라는 거다. 하지만 이 아파트에서 이 권리를 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viennatouristboard

창문을 보면 크기나 모양이 다 달랐다. 대략 8가지 패턴이 섞여있다. 또 자세히 관찰해보면 저층일수록 창문 개수를 많이 두거나 크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채광에 불리하니 저층의 창문 크기를 키운 거라고 이해하면 쉽겠다. 다름을 통해 동일한 햇볕권을 보장한다는 철학이 흥미롭다.


그리고 창문 배치 역시 삐뚤빼뚤 내키는 대로다. 퍼즐 쌓듯 만들어졌다. 창문이 일직선상에 정렬된 격자무늬 건물과는 확실히 다르다. 당시 유럽의 전반적인 건축 사조가 합리주의였는데 그 상징은 직선이었다. 하지만 훈데르트바서는 의도적으로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그 역시 자연은 직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게 가장 잘 구현된 곳 중 하나는 아마 화장실이 아닐까? 모자이크 타일을 직선 배치했다면 그건 훈데르트바서가 아니다.

아쉽게도 거주 공간이라 관광객은 들어갈 수 없고 안내책자로만 확인해야 했다. 타일 모자이크를 활용하면서도 단 한 곳도 같은 게 없었다. 어쩌면 그는 직선에서 전체주의가 만든 폭력을 느낀 듯하다.


또 하나 아파트에 눈길을 끄는 건 층층마다 심어진 나무다. 이건 나무 세입자권(Tree tenant right)이라 불린다. 나무가 자랄 땅을 빼앗아서 인간들이 집을 지었으니, 나무한테 집의 일부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권리는 옥상이나 테라스에 심어진 나무한테 해당하는 권리는 아니다. 집 안에 심어진 나무들 얘기다. 그 나무들이 인간의 집에 세 들어 살 권리가 있으니 잘 도와야 한다는 얘기다.


집세? 당연히 낸다. 산소를 내뿜어 공기를 정화하고 밖으로 뻗어나가서 외관까지 아름답게 만든다. 그게 나무가 내는 집세다. 창문을 자세히 보면 밖으로 튀어나온 집 안의 나무를 만나게 된다.

훈데르타바서는 건축을 '제3의 피부'로 설명하기도 했다. 피부, 옷, 건축, 사회환경, 지구환경 이렇게 5개의 피부를 예로 들면서.


참고로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던 훈데르트바서는 평생 6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들쭉날쭉하고 바닥도 울퉁불퉁한 곳에서 통일성 없음이 오히려 행복한 디자인으로 완성되는 공간, 그게 훈데르트바서의 아파트가 주는 매력이 아닐까? 그가 지상에 만들고 싶어 했던 파라다이스다.


"나 혼자 꿈을 꾸면 한낱 꿈일 뿐이지만 우리가 함께 꿈을 꾼다면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 됩니다." 훈데르트바서의 얘기다.

훈데르트바서(1928~2000)의 삶을 ‘기행’으로만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시대가 그랬다. 태어나고 1년 후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아버지가 숨졌다. 게다가 어머니는 유태인이었다. 1938년에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합병된다. 강제이주를 당했다. 할머니를 포함해 외가 쪽 유태인 친척 69명이 몰살당했다. 비극이었다. 그의 평화에 대한 집념과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칭송은 그의 내면을 지탱해준 힘이 무엇이었나를 보여준다. 기회가 되면 그의 삶과 철학의 단면, 고민들도 찾아보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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