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 May 12. 2024

어느 택시기사 아저씨의 이야기

오랜만에 병원에 차를 두고 와서 택시를 탔다. 출근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대략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데 운전을 하고 다니면서부터는 도저히 대중교통을 다시 이용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눈물을 머금으며(?) 택시를 타기로 했다.

나는 정신병원에서 일을 하는 간호사이다. 택시를 이용할 때 목적지가 정신병원이면 웃기게도 가끔 택시 기사 아저씨로부터 전화가 온다. 확인을 하기 위해서일까? 택시를 종종 이용하지만 출근길을 설정해서 카카오 티 택시를 잡을 때면 90%는 그렇게 확인 전화가 왔다. "음... 병원에 가는 것이 맞죠?"

택시 기사 아저씨는 내가 환자인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하는 것일까? 만약 정말 그렇다면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거의 반쯤 감긴 눈으로 한 손에는 커피를 가득 담은 텀블러를, 다른 한 손에는 근무복이 들어있는 가방을 가지고 무거운 몸을 택시 안으로 꾸겨넣었다. 아침 일찍부터 출근하려니 너무나도 졸려 휴대폰을 조금 보다가 졸기 시작했다. 무거운 적막 속에서 침묵을 먼저 깨뜨린 것은 택시 기사분이었다.

"병원 근무자신가 봐요? 출근하시는 건가요?"

이번에도 확인을 하기 위해서인가 싶었지만 대화를 하는 것도 잠이 깨는 데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네... 하하. 출근하는 길입니다."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고는 딱히 더 할 말이 없어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5분이 지났을 때 택시 기사분이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거기는 폐쇄 병동만 있나요?"

오. 폐쇄 병동을 아는 정도면 정신과 병동에 관심이 있는 분인가 싶었다. 아니면 요새 한창 정신과 병동 관련 드라마로 인해 아시는 것일 수도 있다 생각했다.

기사분은 조금씩 아는 것을 물어보기 시작하셨다.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럽게 꺼내다가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가를 반복하였다. 그러다가 기사분께서 갑자기 한숨을 쉬며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정신질환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지 몰랐어요. 사실은 제 아내가 몇 개월 전에 조울증을 진단받았거든요. 원래는 뇌 질환으로 수술을 받고 나서 아내가 이제 나는 병신이 되었다고 하면서 우울증을 크게 앓았거든요. 지금은 많이 회복했는데도 불구하고요. 그러다가 조증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치를 부리는 사람이 아닌데 갑자기 고가의 가구를 몇 개 사질 않나 이것저것 쇼핑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카드도 뺏고 현금으로만 쓸 수 있도록 했는데 백화점에 가서 새로 카드를 발급받고는 천만 원짜리 밍크코트를 덜컥 사버리지 않겠습니까?"


갑작스러운 기사님의 고백에 나는 당황을 했지만 정신과 병동의 근무자로 얼마나 놀라고 걱정스러웠을지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기사님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제가 아내를 정신병동에 보냈다고 하니깐 주변 친구들이 제게 뭐라고 하더라고요. 아직도 정신병원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안 좋은지... 제가 아내를 그 감옥 같은 곳에 보냈다고 생각을 하더라고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과 같이 있어보면 얼마나 힘든지 모를 겁니다 아마."


맞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신질환을 가졌다고 해서 안타까운 시선, 정신병원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 그렇기에 더더욱 정신질환을 가졌으나 이런 편견으로 인해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고 증세가 악화되었을 때 입원하는 분도 정말 많다고 한다. 정신 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해도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아내가 약을 먹고 나서는 많이 나아졌어요. 양극성장애 약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부작용으로 하루종일 자더라고요. 잠에 취해서. 무기력하고... 약을 줄이니 또 불면이 오고... 하도 약에 취해있는 것 같아 제가 약을 몇 개 빼버렸어요."

"네? 약을 의사 처방 없이 마음대로 빼면 안 됩니다. 약을 마음대로 조절하거나 끊게 되면 그게 오히려 악영향을 줍니다. 장기 입원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약은 꾸준히 드셔야 합니다. 부작용이 너무 셀 경우에는 주치의에게 이야기해서 조절해 달라고 하시는 게 맞아요."


나는 기사님께서 아내분의 약을 마음대로 빼버렸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실제로 병동에는 양극성장애(조울증)를 가진 환자분들이 증상이 나아져서 퇴원을 했다가 이젠 괜찮겠지 하면서 마음대로 약을 끊고 증상이 악화되어 조증이 심해져 폭력적인 행동, 과도하게 떠 있는 기분으로 잠도 안 자는 모습, 과도한 소비 등의 모습을 보여 재 입원하는 분들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정말 위험한 행동이다. 나는 기사님께 여러 번 당부를 드렸다. 기사님의 아내분께서 어서 호전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심 어린 조언과 당부의 말씀을 드렸다.


택시가 점점 병원에 가까워지자 기사님께서 아내분의 이야기를 마저 해주셨다.

"조증이 막 발현되었을 때 아내가 뇌 수술을 받고 우울해하다가 갑자기 '나는 다 나았다. 뭐든 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기분이 고양되고 몸도 다 성치 않아 제가 밥을 차려줘야 먹을 수 있는 정도인데 갑자기 인스타그램으로 어디서 쿠팡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았는지 그걸 하겠다고 하네요. 허허. 정정한 성인 남성도 힘들어하는 일을 팔도 성치 않는 사람이 그걸 하겠다고. 허허."


큰 소리로 웃으며 이야기를 하셨는데 기사님의 눈은 슬픔을 가득 담고 있었다. 허허 웃으며 아내분의 이야기를 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먹먹했다. 정신 질환을 가진 가족이 있으면 얼마나 힘든지 그 고통을 나는 안다. 그분도 얼마나 답답하고 힘드셨을지 그 짧은 대화 속에서 그분의 마음이 충분히 내게 전달이 되었다. 항상 병동에서 다양한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분들을 보며 나도 사람이기에 간호 처치를 하면서 환자분들께 화가 나기도 하고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하나 답답하기도 하고 정신병동에서 일을 하면 얼마나 감정 소모가 많은 직업인지 하루에도 여러 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분들의 가족들은 얼마나 속이 타고 있을까. 그런 걸 생각하면 내가 지금 힘든 건 가족분들의 그 고통의 반에 반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오늘 본 택시 기사님께서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고 걱정을 하는 지 느낄 수 있었다. 부디 꾸준히 치료를 잘 받으시고 증상이 호전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픔을 표현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