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샌가부터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불안감과 초조함을 외부로 표현하고 있다.
종이 끝 다 찢어놓기, 강박적으로 이메일함에 들어가 확인하기.
하루 몇 회인지 셀 수도 없이 메일함을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나는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처음에는 대학병원 내과병동 간호사였다가 여러 이유로 인해 금방 사직을 하고 임상은 내 길이 아님을 깨닫고 건강검진센터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어린 나이 24살이었으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큰 마음을 먹고 대학병원 암병동 간호사로 일을 했다. 하지만 1년이 되기 조금 전에 나는 온갖 우울증, 무기력감, PTSD 등을 달고 울며 사직을 했다. 다시는, 절대로 임상에 가지 않으리라며 굳게 마음을 먹고 어떤 길로 가야 할지 크게 방황을 했다.
그렇게 간호직 공무원을 1년이 안되게 도전을 했는데(시기상 어쩔 수 없었다) 한두 점 차이로 떨어졌다. 하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간호직 공무원으로 이직을 실패하고 바로 가장 관심이 있던 정신과 간호사로 전향했다. 그렇게 3년 간 나는 정신과 간호사로 일을 하며 정신전문요원 자격증도 취득하였다.
하루하루 웃으며 일을 했고, 스스로 뿌듯했다. 공부도 재밌었기에 과제도 까다로운 환자로 잡아서 면담을 했고, 사명감을 가지며 일을 했다. 운이 좋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애정을 듬뿍 가지며 공부해서였을까? 나는 정신전문요원 수련을 졸업할 때 최우수상을 취득하였다. 이후 나는 이 정신전문요원 자격증을 가지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찰 나 지역사회로 나가 일을 하는 선배들을 보고 큰 고민 없이 기초 광역 정신건강센터로 이직을 하였다.
이때부터 나는 탄탄대로로 가고 있던 길에 커다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센터는 정신과 병원과 너무나도 달랐고, 월급은 형편없었다. 일은 어찌어찌하겠지만,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수련하기도 했고 나의 3년 경력은 휴지조각이 된 것 마냥 월급이 쌩 신규 상근직 월급과 같았다. 나는 이때부터 충격을 먹기 시작했다. 대충 병원을 나오면 월급이 적어지는 것을 알 긴 했지만, 너무했다. 이 월급을 받으려고 수련을 한 것은 아니었다. 사직을 하고 나는 정말 큰 현타를 느꼈고, 어찌어찌 먹고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간호사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
정말 불취업도 아닌 용암 취업이구나.
거의 대부분이 계약직이었고, 그 마저도 경력이 최소 1년 이상이어야 했다. 내가 졸업하던 시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취업 시장이었다. 그때는 정말 쉽게 말해 골라서 갈 수 있었다. 아주 큰 대학병원아 아니면 일반 종합병원은 적당하게 갈 수 있었다. 근데 지금은 정말 갈 곳이 없어 막막한 현실이었다. 정신과 경력이 거의 다인 나는 더욱더 갈 수가 없었고, 이제 갓 졸업한 신규들도 스펙들이 어마무시했다.
그 와중에 나를 더 슬프게 만드는 것은 정신과는 무경력에도 어느 때나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월급은 당연히 최저고 말이다. (물론 국립정신병원은 좀 다르다.) 무경력에도 들어갈 수 있는 정신과 병동이면 나는 왜 이렇게까지 전문요원을 취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이었을까.
그야말로 나의 멘털은 바사삭 재가 되었다.
물론 타 직군에 비하면 말할 것이 없다. 좋은 명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취업시장의 문이 닫혀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해 속이 썩어 들어가는 친구도 있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나는 간호사로 간호사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나의 현재 이직 가능성은 최악이라고 볼 수 있었다.
2월까지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 입장에서, 서울에 새롭게 이직을 하게 된다면 집 계약 연장을 해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본가로 돌아가야 하는 터였다. 나는 똥줄이 타들어갔고, 일단 보이는 곳을 찔러 넣어보았다.
그렇게 암 한방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지만 임상 경력이 없는 나는 과연 지금 나이 30살, 더 늦어지면 정말 종합병원으로 이직도 힘든 상황인데 이곳을 들어가는 게 맞나 라는 의구심을 품었다. 일단 어차피 이직할 곳도 없는 상황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시작했다. 2주 동안 수련기간을 주는데, 거진 4~5년 만에 보는 여러 주사제와 중심정맥관을 보니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대학병원에서의 PTSD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이고 아무 이유 없이 머리가 새하얘졌다.
‘여기서도 이런데, 과연 종합병원은 갈 수 있을까? 무슨 수로?’
‘간호사랑 안 맞는 걸까? 지금이라도 진로를 바꿔야 하나? 하지만 이제 와서 무슨 수로?‘
정말 수만 가지의 생각이 나를 덮치며 나 스스로를 옥죄였다. 나는 혼자 끙끙 앓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조심스럽게 연락을 시도해 보았다. 내 주변의 친구들도 정말 다양했다.
대학병원 병동 간호사, 대학병원 전담간호사, 종합병원 병동 간호사, 암 한방병원 간호사, 심평원 간호사, 건강검진센터 간호사, 휴직 간호사 등.
모두 내게 해줄 말은 없고 그저 ‘힘내라 ‘라는 말 뿐이었다. 물론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인생은 자기가 개척해 나가는 것이니깐.
난 대체 뭐가 다 안 맞고 불만이라 이렇게 파워 이직러가 되고 아직도 방황을 하는 것일까. 남들은 잘만 찾아서 잘 적응해 나가는데 말이다. 주변 친구들 보기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암 한방병원도 너무 싫었고, 그냥 지금 현재로 모든 게 너무나도 끔찍했다. 나는 왜 간호학과를 선택했고, 간호사를 했는가. 간호사 커뮤니티 사이트를 들어가 보니 나와 같은 사람들이 수두룩 했다.
‘탈간호 어떻게 하나요?‘
‘탈임상하고 싶어요.’
‘간호사가 된 게 가장 후회되어요.‘
라는 글이 빽빽했다.
더군다나 현재 암 한방병원에서 일을 하는 동갑내기 동기도 나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았다. 물론 그 동기는 3년 동안 대학병원에서 일을 꾸준히 잘해왔지만, 그 이후로는 재활병동에서 일도 하고, 건강검진센터에서도 일을 하는 등 이곳저곳을 떠돌다 결국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이 현실이 너무나도 한숨만 나왔다. 불안하고 앞으로 미래가 막막하니 나의 강박은 더욱 심해졌다.
종이 모서리 죄다 찢어놓기, 이메일 계속 들어가서 확인하기.
종이는 모르겠지만 이메일은 왜 계속 내가 무의식적으로 들어가서 확인하는지 알게 되었다.
예전부터 이직을 하면 서류 전형이든 면접이든 모든 결과는 이메일로 통보가 되었다. 젊은 나이였고, 나름 성실히 쌓아둔 덕에 많은 결과는 ‘최종합격‘이었다.
물론 이 브런치 합격도 이메일로 확인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언젠가부터 이메일을 보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나는 또 멋 모르고 뭐든 찔러 넣어야 한다 라는 생각에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담간호사를 지원했는데, 아직 서류 전형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 터도 있었다. 된다고 해도 이게 맞는 걸까 싶은 생각이 더 컸지만 지금 당장 좋은 소식을 하나라도 더 봐야 이 불안감이 해소가 될 것만 같았다.
결국 나중에 그 결과는 특이하게 문자로 왔지만 말이다. 결론은 서류 합격이었지만 철회를 하였다.
이럴 거면 해외 간호사를 해야겠다.
근데 해외로 가려니 또 고민이 되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다. 더 이상 실패하면 너무 늦어버리는 나이가 된다. 그걸 알기에, 그리고 지금까지 너무나도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기에 이제는 도전하는 것 하나하나가 큰 고민이었다.
원래 부모님께 나의 고민거리를 말하지 않으나, 나도 모르게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내가 이젠 정말 절박했기 때문이다. 그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딸 목소리 들으니깐 좋네. 새로 들어간 곳은 잘 적응하고 있어?”
라는 말 한마디에 울컥했다. 아뇨, 아버지. 저 전혀 잘 못 지내고 있어요. 전 왜 하는 일마다 이렇게 적응을 하지 못하고 패배자처럼 사는 걸까요.
“그냥 좀 바빠요. 근데 저 고민인 게 있어요.”
나는 나의 감정을 제하고 사실 그대로 현실을 말했다. 본가에서 그나마 가까운 종합병원에 이직하여 임상 경력을 쌓을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이다.
“딸,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올해는 너의 해야. 너 서른이라고 하지만 아직 만으로 28살이야. 아직 20대라고! 내가 오랜 사회생활을 해봤지만, 짧은 호흡을 가지고 이직을 하면 그만큼 후회가 더 컸어. 부디 긴 호흡을 갖고 이직을 하길 바란다. 아직 2월까지 시간이 있잖아. 그때 가서 지금 공고에 뜬 곳을 가도 늦지 않아. 이렇게 취업이 힘든 시기에 계속해서 공고가 뜨거나 굳이 헤드헌터를 써서 데려가려고 한다? 뭔가 이상하잖아. 지금 조급하고 불안해서 무작정 선택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봐.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사람이 힘든 시기가 있다면, 좋은 시기도 와. 조금만 긴 호흡을 가져보자.”
나는 더 듣다 보면 펑펑 울어버릴 것 같아 급하게 전화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나는 한숨을 푹 쉬며 출근을 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최대한 빨리 실패를 없애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빠르게 실패하기가 핵심이다. 직접 해보지 않는 이상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일을 하면서 어떤 기분이 들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정확히 말해 수백 번의 실수와 실패로 일궈진 것들 뿐이다.‘
나는 계속해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여러 번 이직과 실패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너무나도 지쳐있었고, 스스로에게 실망도 많이 했다. 계속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새로운 곳을 도전하고 나오고를 반복하는 나 자신을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가 무너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심란한 마음이 가득했던 어느 날 책방에서 우연히 본 책 ‘빠르게 실패하기-존 크럼볼츠‘였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위안을 얻었다. 나는 실패자가 아니라고. 서른이면 아직 괜찮다며 스스로를 많이 다독이며 얼마나 나중에 행복하려고 이렇게까지 힘든 걸까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언젠가 이 불안감과 좌절감에서 벗어나 종이 뜯기와 이메일 강박적으로 들어가서 보는 행동을 멈추었으면 좋겠다. 현재 용암취업시장에서 고통받는 나와 나의 친구, 그리고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 모두 어둠의 긴 터널 끝에 빛을 보는 날이 금방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