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으로 살아간다는 것

by 이연

“29살이 되면 생각이 참 많아지더라고. 곧 서른인데, 나는 지금까지 뭘 해놨나 싶고. 뒤를 돌아보면 정작 크게 해 놓은 것도 없더라고. 근데 막상 서른이 되고 나니깐 별 거 없더라고. 똑같아 서른도.”

내가 28살이었을 때 서른 중반을 향해가고 있는 지인에게 들었던 말이다. 나도 스물아홉이 되면 그럴까, 생각이 많아질까 싶었지만 그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흘려들었다. 내가 딱 29살이 되었을 때엔 사실 별생각 없었다. 그때의 목표는 그저 ‘딱 서른이 되기 전까지만 방황해 보고 이제 정착하는 거야.‘라는 생각뿐이었다.

스무살 중반, 대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의 나는 의기양양했다. 그 당시에는 취업이 잘 되는 간호학과였고, 토익 점수도 괜찮았고, 해외 연수경험에 수상경력까지 있었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웬만한 자격증도 있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당당히 취업해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싶었지만, 들어가고 나서가 문제였다. 3차 병원인 만큼 극악의 중증도, 하루 2~3번 화장실도 겨우 가고 끼니는 거르기 일쑤였다. 너무나도 바쁜 탓에 날이 잔뜩 선 동기들과 선임들. 조그마한 일에도 너 잘 걸렸다 싶어 미친듯이 괴롭히고 쪼는 분위기가 당연했다. 오버타임은 기본이었고, 어떤 선임은 자신보다 후임이면 이름으로 조차 불러주지 않고 ‘야’라며 무시하기 바빴다. 어느 순간부터 내 자신을 잃어갔고, 대학병원이라는 곳 자체가 끔찍했다. 다시는 쳐다도 안 볼거라며 사직서를 냈고, 현재까지도 쳐다 보지도 않고 있고 의학 드라마 조차 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스무살 후반에 이르렀다.

29살일 때는 정말 정신없이 살았다. 일을 하면서 정신전문요원수련을 하느라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었다. 어느새 나는 서른 살을 맞이하게 되었다. 서른. 내가 어렸을 때는 서른이라고 하면 별생각 없이 흔히들 말하는 ‘아줌마‘나 ’ 아저씨’라고만 생각했다. 서른은 엄청나고, 사회적인 지위에 있으며 자기 자신을 넘어 자식까지 책임을 지는 대단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땐 당연히 서른이면 내가 커리어우먼으로 유치하지만 드라마처럼 또각 구두를 신으며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내 일에 전문성을 가지고 일을 하는 멋진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평생 해외 출장에, 멋진 양복을 입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라 ‘나도 어른이 되면 저런 멋진 회사원이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내가 서른을 맞았을 때엔, 스무 살 초중반 때보다 더 큰 역풍을 맞았다. 이십 대에는 그저 맞지도 않은 직업 안에서 어떻게든 내 길을 찾아보려고 퇴사도 하고, 도전도 하고, 이직도 하여 어느새 나는 파워 이직러가 되었다. 그때는 나는 그다지 불안해하지 않았다. 나는 쉬고 있지 않고, 끊임없이 그게 뭐라도 하고 있었고, 서른 전까지만 찾으면 된다 싶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내가 끈기가 없다며 나의 퇴사나 도전을 만류해도 들리지 않았다. ’ 당신들이 내 삶 살아줄 거 아니잖아.‘ 반항심도 컸다. 그렇게 서른을 맞이했고, 어떻게든 맞지 않지만 간호사라는 틀 안에서 내가 맞는 것을 찾겠다며 핵심간호술기를 잘 쓰지 않는 정신과에서의 경력이 다였다. 물론 정신과라는 곳도 맞는 사람이 가는 것이 맞다. (실습 때 정신과 실습을 가고 우는 학생들을 꽤나 많이 봤다.) 나는 학부 때부터 정신간호학 성적이 가장 좋았고, 실습을 할 때면 눈이 반짝반짝하게 빛났었기에 더 그쪽으로 선택한 것도 많다. 하지만 서른을 맞이한 ‘나는 내가 간호사가 맞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간호사가 계속하고 싶은 게 맞을까?라는 작은 의심의 씨앗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은 이십 대에 내가 열심히 일궈놓은 모든 것들을 통째로 흔들고 있었다.



“내가 병원 잘 다니고 있다고? 아냐. 그러면 내가 전혀 관련도 없는 중국어를 공부하겠다고 방통대(방송통신대학교)를 신청했겠니.”


“아직 누구한테 말은 해 본 적 없긴 한데, 나 공기업 준비 안 하려고. 계약직으로 일했을 때 나랑 맞는지도 모르겠고, 이미 도전자들 스펙이 어마무시해졌는데 내가 그걸 할 자신이 없어. 나 그냥 나중에 가정전문간호사 하려고. 나랑 좀 맞는 거 같더라고. 근데 그거 하려면 대학원 나와야 하는데… 일 하면서 너무 힘들 거 같아. 나중에 좀 여유로워지면 도전해보고 싶어.”


“이번에 인턴 끝날 때 두 명 중에 한 명만 정규직 전환 시켜준다 했어. 근데 나는 연락이 안 왔어. 너무 억울하고 자존심 상해. 내가 그 다른 한 명보다 학벌도 괜찮고, 일도 내가 더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곳도 안 되면 나는 어딜 가 수 있을까? 너무 지쳐. 나는 제발 일 좀 하고 싶어. “


“전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 이곳으로 이직한 거야. 이곳은 잘 맞아. 내 전공이랑 전혀 무관한 곳인데 난 그냥 이게 더 좋더라고. 미술은 돈 벌기 힘들잖아. 내가 어떤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하는데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더라고. 석사도 아니고. 근데 가끔은 나중에 이 직업이 아니라 사업하고 싶어. 뭘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고민이 많아.”


“나랑 해외 갈 생각 없어? 한국에서 간호사 그만하고 싶어. 같이 준비해 볼래?”


“서른이라도 새로 시작할 수 있지 않나? 아직 괜찮지 않아?”


“결혼도 해야 하는데 뭔가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아? 이제는 안정적이어야 하잖아. 뭔가를 하려면 너무 불안정해지는 걸.”


“외국 대학원을 가려고 어렵게 잡은 연구원 계약직 재계약을 포기했는데, 떨어졌어. 다시 재계약하려고 말씀드렸는데, 이미 그 자리에 어떤 사람이 뽑혔더라고. 당장 5월에 퇴사인데 막막해. 지금 취업시장도 안 좋은데. 너무 불안해서 요새 머리도 많이 빠지고, 두통이 심해졌어.”


“모르겠어. 난 이제 뭘 하기엔 너무 지쳐. 근데 또 뭔가 일만 하니깐 불안해. 공부라도 해야하나? 서른살이니깐 뭔가 의미있는 걸 해야 할 것 같아.”


최근에 더 큰 고민과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나는 큰 용기를 내어 주변 친구들에게 연락하여 내 고민상담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방황만 하고, 서른이 되었는데도 이 모양일까. 어렸을 때 대단한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도 볼품없는 꼴이라고 생각했다. 왜 나만 이 모양일까 싶었다. 주변 친구들은 직장도 잘 다니고 있었고, 물론 아직 취준생인 친구도 있었지만 다들 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SNS를 보더라도 지인들은 직장에서 열심히 경력도 쌓고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아이도 낳아 예쁘고 단란한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서른이 되어서 집 앞 조그만 병원에 들어가 새롭게 배우고 일을 하면서 다른 걸 찾아 공부해야겠다는 나 자신을 보며 비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서른인데 왜 나는 스무 살처럼 새롭게 시작하고 앉아있을까, 나를 열심히 키워준 부모님께도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연락했을 때, 다들 저마다의 고민과 불안 속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혼을 하기엔 아직 자신이 부족하고, 결혼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지금 그 자체로도 가족이랑 살면서 안정적인데 왜 해야 하는지 몰라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무기한으로 미룬 친구부터 시작해 계속 이 일을 해야 하나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다니는 친구들까지 정말 다양했다.


최근에는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커져서 나 자신을 괴롭혔다. 일부로 내 스스로가 극도로 피곤해질 정도로 잠을 못 자게 했고, 본가에 있을 때에도 죄인이라는 생각에 가득 차 있었고, 이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려워 혼술을 해보기도 했다. 체력이 떨어지자 체력을 보충할 생각만 집중을 하여 정신적으로는 편안함을 느꼈다. 이상하게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남의 시선도 더 신경 쓰게 되었다. 지금 일을 쉰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내가 내 자신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예전에 내가 담당했던 우울증 대상자가 생각났다. 그 대상자는 6~8개월간 무직 상태로 인해 자금 상태도 힘들었고, 언제 취직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울감이 극심했었다. 당시 그 대상자에게 내가 ‘우울해서 스스로 감당이 어려우면 꼭 센터나 주치의에게 연락해 주세요.‘나 ‘가능한 지역사회 자원 연계해 줄게요 ‘, ‘힘드신 거 알지만 그래도 가끔 햇빛 보면서 걷기도 해 주세요.‘ 등과 같은 말을 했었는데, 지금 내가 겪어보니 내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그 대상자도 나와 비슷한 서른 살 대였다. 그냥 뜬금없이 요새 그 대상자가 생각이 난다. 비슷한 상황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대상자와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서른이 되어서 다시 방황을 시작했고, 이 직업을 하기 싫은 마음이 커져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들이 혼란스러운 것이다. 무기력함도 커졌다. 지금까지 퇴사를 해도 새롭게 스펙을 쌓아 올리고, 면접 준비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계속해왔다. 서른이 된 지금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이직하는 것도 이제 지치고, 새롭게 모든 걸 시작하는 것도 힘들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른이 되어서야 이 직업은 나의 직업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답답한 마음에 chat gpt에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서른에 시작해서 잘 된 케이스가 있어?’ 눌러놓고도 스스로 너무 웃겨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이상하게 AI가 주르륵 늘어놓은 답변들에 안심이 되었다.

‘생각보다 서른에 방황하는 사람이 많았구나. 과거에도, 현재도. 나는 너무 힘들지만 남들이 보기엔 의외로 평범할 수도 있겠다.’


서른. 아주 젊지도, 그렇다고 아주 나이가 많지도 않은 정말 애매한 나이. 나이도 애매한데 경력도, 돈도, 앞으로의 미래도 살아온 날 이상으로 남은 애매한 상황으로 아직은 방황해도 괜찮은 나이. 그렇지만 의미 있는 방황을 해서 견고한 마흔을 위해 준비해야 할 나이. 스무 살 대처럼 아직 방황을 할 순 있지만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할 나이.


나는 다시 내려놓고 조금만 더 내 자신을 믿고 방황해 보기로 했다. 주변 사람들, 그리고 아직 서른 살 대 인 사람들도 나처럼 잘 풀리지 않고 이십 대에 생각한 만큼 견고하지 않을지라도 아직은 조금 더 해보라고 응원해주고 싶다. 에일리의 말처럼 모두 자신의 경기를, 자신의 시간에 맞춰서 하고 있을 뿐이니깐. 서른이라고 너무 크게 생각할 것도 없고, 남들과 비교해서 부족하다고, 훨씬 괜찮은 상황이라고 좌절하거나 우쭐될 필요도 없다. 아직 우리는 레이싱 중이고, 언제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모르니깐. 그냥 나 자신을 믿고 묵묵하게 미래를 향해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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