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나의 초라함을 해결해 주었다.
어렸을 때는
앞니- 뻐드랑니가
내게 열등감이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툭 튀어나온 입과
뻐드랑니가 항상
나를 못 생기게
만드는 것 같았다.
30년 동안
뻐드랑니로 살다가
영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에
이빨을 교정하였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나의 뻐드렁니
자괴감은 사라졌다.
이제는
이스라엘에서
새로운 분노가 생겼다.
이 창피함은
나를 좌절시키고
나를 화나게 만든다.
24년을 이스라엘에서
살았다.
히브리어는 대충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다.
문제는 말하기이다.
사람들이
내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물론 소리를 지르며
말하지 않기 때문에
못 들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엄청 기분이 상한다.
내 발음이 문제인지,
내 문법이 문제인지,
내 자신감이 '푹! 푹' 떨어진다.
나 자신이
창피해서 미칠 지경이다.
자신들과 다른
내 외모만 보고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내가 히브리어를
모를 거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이해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하고
지들끼리
별별 얘기를 다 한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잘 모르는 나라.
한국을 북한하고
동일시하는 나라.
내가 이스라엘에 와서
팔자를 고쳤고
큰 횡재를 했다고
생각하는 나라.
나를 무시하는 듯한
이스라엘 사람들로 인하여
내가 인종차별을
받는다는 피해 의식까지
생긴다.
K-Pop 열풍으로
이제 좀 한국의 국력을
알게는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어느 미개한 나라에서 온
안쓰러운 이방인
취급을 받는 듯하다.
언어에 대한 열등감!
인종에 대한 열등감!
마음이 답답하고
이 나라가 싫어진다.
히브리어로
말하고 싶지 않다.
입 다물고 '꾹'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
한국에서 4개월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히브리어라
복잡한 발음들이
입에 잘 붙지 않는다.
아예 히브리어를
모른다고 하고
영어로 얘기하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이 언어 열등감을
Google Translate가
깔끔히 해결해 주었다.
올해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이 앱은
나를 더 이상
기 죽이지 않는다.
문장이
길어질 것 같으면
이 '구글 뚝딱이'에게
번역을 요청한다.
사란들에게
번역 히브리어를 보여준다.
그럼 모든 대화가
가능하다.
물론 짧은 대화나
단어가 필요할 때면
내가
히브리어로 말한다.
이제 Google Translate는
내가 의사를 만날 때,
히브리어 서류를 확인할 때,
누군가에게 중요한 부탁을 할 때,
나의 모든 불안감을
깔끔히 정리해 준다.
이제 더 이상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져서
살 것 같다.
Google Translate를
못 읽는 것은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다.
난 더 이상
"흐흐, 프프, 크크" 하며,
25년이 지나도
나에게 낯선 발음을
제대로 하려고
긴장할 필요가 없다.
더 이상
'뭐라고'
재 질문을 하는
상대방에게
기죽지 않는다.
창피하지도 않다
제대로 발음이
안 되는 것은
내 언어 능력 문제일 뿐이다.
발음이 안된다고
소심해질 필요가 없다.
너희들도 한번
한국말을 배워 봐라!
100%
나하고 똑같이
발음 난관에
직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