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은 미친 짓이다.

나는 겁이 없는 여자다.

by Kevin Haim Lee

나는 살면서 때때로 겁 없이 많은 일을 저질렀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고, 나의 결정에 대한 확신이 항상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마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는 내게 닥친 문제들을 타인과 의논하지 않기 시작한 것 같다.


부모님과 형제들에게도 내 문제를 털어놓지 않았다. 친구들에게는 모든 결정을 마친 뒤에야 통보를 했다.


누군가는 이것을 철없는 청소년의 발악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확고한 원칙이 있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내문제는 내가 결정을 내리겠다, 이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내가 진다. 결코 남의 탓을 하지 않는다"


물론 결정을 잘못하여, 땅을 치면서 통곡을 한 적도 있다. 잘못한 결정으로 고통을 고스란히 받은 적도 있다.


30년을 한국에서 옹고집으로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살다가, 느닷없이 영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다. 물론 비행기표를 사고, 학교를 정한 후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포했다.


"결혼할 마음이 절대로 없어... 한국에서 언제 결혼할 거냐고 듣는 소리가 너무너무 지겨워! 한국을 벗어나야겠어!"


마침 한국에 발령이 난, 이스라엘 가족의 아이들을 일주일에 세 번씩 베이비시터를 하고 있었다. 물론 영어로 아이들과 놀았다.


마침 아이들의 엄마 로라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었고 우리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로라에게 나는 한국에서 사는 게, 보수적이고, 남녀 차별이 있어서 답답하다고 했다. 나는 한국 정서에 잘 맞지 않는 반항아로 별난 한국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1년 정도 준비를 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갈 계획이라고 얘기했다.


로라는 갑자기 자기 친구 얘기를 했다. 영국 런던에 살고 있는 줄리아라는 친구가 nanny(유모)를 찾고 있다고 했다. 7개월 아들과 4살 된 아들이 둘인데, 야간 대학교에 다녀야 해서, 저녁에만 도와줄 오페어(Au Pair-가사 도우미)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내가 오페어를 하게 되면, 난 줄리아 집에서 살 수 있고, 일주일에 얼마간의 용돈을 받는다고 했다. 정확히 오페어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국의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할 것 같았다.


줄리아와 이메일로 연락을 하기 시작하고, 줄리아는 친구 로라가 추천한 사람이라서 무조건 환영한다고 얘기했다.


6월에 연락을 시작했는데, 자신의 대학교가 9월에 개강을 한다고, 나에게 9월까지 런던에 올 수 있냐고 물었다. 내가 온다고 하면,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꼭 약속한 대로 9월까지 런던에 와야 한다고, 몇 번을 신신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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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까칠합니다. 세상에서 나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새 중년의 반이 넘어갔습니다. 조울증을 치료하면서 세상을 다시 보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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