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지옥을 두 번 경험했다
오늘은 이스라엘 전쟁 473일째
이번 주 일요일 1월 26일에 4명의 여자 인질이 추가로 석방될 예정이다. 하마스는 아직 이번에 석방될 인질의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다.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의 의료 시스템은 한국과 다르다.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것만 얘기하자면, 난 두 번의 병원 출산 과정 동안 돈을 한 푼도 지불하지 않았다.
다른 의료 비용도 국가 의료 보험 리스트에 맞게 사용하면 모두 공짜다. 굳이 개인적으로 꼭 지정해서 상담할 의사가 있을 경우에는 본인이 비용을 지불하고 예약을 하면 된다.
한 달에 정기적으로 한 번씩 자동 이체되는 clalit 보험료를 제외하고, 병원이나 클리닉에서 일어나는 모든 의료 비용은 무료이다.
나의 출산에 관계되는 치료비, 수술비, 입원비 등 모든 비용은 국가 의료 보험에서 지급이 되었다.
둘째 딸은 첫째와 다르게 자연 분만을 하기로 결정하고 있던 중, 출산 예정일 일주일 전쯤에 아래쪽에 피가 보였다.
출산 응급실에서는 자궁 3cm가 열렸다며 일단 노산이라며 입원을 시켰다. 다시 친정 엄마가 병원을 왔다 갔다 하시며 나에게 지극 정성으로 음식을 해다 주셨다. 이때가 엄마 나이 70살 정도셨는데 남편의 스쿠터 뒤에 음식을 꼭 부여잡고 매일 병원을 오셨었다.
입원하고 3일이 지났는데도, 자궁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집으로 퇴원을 하고 싶다고 하니까 담당의사가 나는 39살의 노산이라서 조심해야 한다며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빨리 출산이 되라고 엄마와 함께 병원 근처를 매일 밤 산책하며 몇까지 스트레칭을 길거리 벤치를 부여잡고 해 보았다.
엄마는 오후 4시까지 나와 함께 있으시다가, 4시가 넘으면 다시 사위의 스쿠터 뒤쪽에 매달려서 첫째 손자를 케어하러 나가셨다.
나는 첫째 아들을 진통 없이 제왕절개로 낳아서 출산 진통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입원하고 3일이 지나고, 그 날도 남편은 밤 9시까지 나와 있다가 별 진전이 없어서, 이제 그만 집으로 가 보라고 했다.
남편이 나가고 5분쯤 지나서 갑자기 배가 아파오는데, 보통 느낄 수 있는 느낌이 아니고, 누군가 칼로 내 배를 찌르는 데 했다. 바로 간호사에게 말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Avner, 빨리 당장 돌아와! 배가 너무 아픈데, 간호사가 출산할 것 같대"
남편은 기겁을 하고 가던 길을 되돌아왔다.
난 무시시한 고통에 온 정신이 다 뒤집혔다. 단지 한 가지 생각은 그 와 중에도 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간호사에게 바로 알렸다.
"난, 애피두랄 무통 진통제를 놓지 마! 친구가 그러는데 진통제 없이 낳아야 출산의 기쁨을 두 배로 느낄 수 있대"
"오케이, 너 원하는 대로 해 줄게, 걱정하지 마!"
남편이 돌아왔고, 엄마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해 드린 후에 우리는 분만실로 내려갔다.
엄마는 큰 아들을 친구 집에 맡기고 한참 후에 분만실에 도착하였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배가 아팠는데 자궁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의 분만은 코미디가 되었다.
나도 모르게 한 손은 엄마, 한 손은 남편 손을 잡았다.
"옴... 옴... 오.... 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안 지르려고 유튜브에서 본 명상 "옴"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엄마도 나를 따라서 숨을 쉴 때마다 " 옴"을 중얼거리셨다. 갑자기 남편도 우리를 따라서 "옴"을 따라 했다. 분만실에서 만난 새 간호사는 우리를 무슨 이단 종교단의 신봉자처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아무리 이를 악 물고 "옴"을 외쳐도 별 진전이 없었다. 11시에 분만실에 내려갔으니 벌써 2시간이 지났다. 간호사는 지금 애피두랄을 주겠단다. 아직 참을만해서 계속 싫다고 했다. 2시간이 더 넘게 " 옴"을 외쳤다. 간호사가 아직도 멀었단다. 4시간을 셋이서 손을 꼭 잡고 "옴"을 소리쳤고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처음 보는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자기가 분만실 과장이라고 소개를 한다. 분만이 굉장히 천천히 진행되는 케이스라며 아직 5cm도 자궁문이 안 열려있단다. 산모가 너무 지쳐서 마지막 힘을 못 쓸 것이라며 지금이 에피두랄을 맞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한다. 산모의 80%가 에피두랄을 맞고 성공적으로 출산을 했다며 적극적으로 나를 설득했다.
나는 4시간이나 "옴"을 중얼거리느라 정신이 반은 나가있던 상태였고 점 점 강도가 심해지는 복통에 에피두랄을 놔아 달라고 오케이를 했다. 금방 주사를 놔줄지 알았는데 현재 맞고 있는 수액을 다 맞아야 만 내 무통 분만 주사를 놓아줄 수 있단다.
이제는 반대로 애피두랄 주사를 못 맞고 진통 속에서 아기를 낳게 될까 봐 마음이 불안했다. 남편을 계속 간호사에게 보냈다. 남편은 간호사에게 설설 기며 제발 주사를 놔 달라고 했다. 1시간 후에 결국 무통분만 주사를 맞았다. 새벽 1시 40분경이었다. 나는 이제 곧 아기를 출산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간호사가 이불을 가져오더니 나한테 덮어 주며 이제부터 한숨 자란다. 남편에게도 간이 의자를 주면서 눈을 붙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연세가 있으시니까 이제 집에 가서 쉬라고 하신다. 우리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지만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따라 했다.
우선 엄마를 택시를 불러서 집에 보내 드리고, 우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침 10시 반쯤 아침 교대를 한 새로운 간호사가 들어오면서 우리를 깨운다. 이제 분만을 하게 된단다. 잠에서 반쯤 깨어난 나는 시키는 대로 눈을 뜨고 마음을 다시 잡았다.
나는 이제 아무 진통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숨을 쉬고 아래에 힘을 주었다. 둘째 딸아이는 금요일 아침 11시 40분경에 태어났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집에서 큰 애를 보고 계셨고, 엄마 대신 가족처럼 지내는 달리아가 출산 현장을 사진으로 남기겠다며, 여기저기를 누비며 출산 분만 사진을 수십 장 찍으셨다.
딸을 본 남편은 이제야 자신에게도 진짜 딸이 생겼다며 실감을 하는 눈치이다. 오후에 아들과 친정 엄마가 아기를 보느라고 병원에 오셨다. 엄마는 그냥 하염없이 우셨다.
"야, 내 딸이지만 너 진짜 대단하다. 마흔을 다 보고 딸을 낳으니... 내 딸이지만 놀랍다!" 하시며 계속 눈물을 흘리셨다.
이렇게 난 이스라엘에서 제왕 절개와 자연분만을 통하여 아이를 둘 낳았다. 만약 누군가 어느 쪽이야? 하고 물으신다면 난 제왕 절개라고 권해 드리고 싶다. 시간제한이 없는 자연 분만은 내 입장으로 봤을 때 너무 원시적인 것 같다. 분만 시간을 정하여 출산하고 아이도 별 고통 없이 짧은 시간에 분만되는 게 내 적성에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