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벗어나 질주를 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마음이 상하고 답답하다.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이방을 뒤졌다. 내 지갑에서 나온듯한 지폐 한 장을 찾아냈다. 친구가 사줬다면서 새 백을 갖고 나가는 아이. 나에게서 훔친 돈으로 산 것 같다.
아이는 부모의 관심과 욕구부족으로 이러한 도벽이 생긴다는데 도대체 내가 어떻게 무엇을 잘 못한 것일까?
용돈도 넉넉히 주었고, 필요한 것도 온라인 주문을 하면 내 카드로 결제해 주었다. 아빠도 일주일에 80,000원씩 용돈을 준다. 자기도 알바를 2개를 뛴다. 한 달에 거진 1,700,000을 쓰는 것 같다. 엄청난 금액이다. 한 푼도 저금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열이 팍친다.
나는 4월부터는 아이에게 용돈을 주지 않고 내가 모아서 내년 3월에 목돈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어제 말했다. 아이는 크게 반박하지 않았다.
아이와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다. 아이가 싫다. 전쟁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업보가 내게 돌아온 것일까! 이방인의 나라에서 25년을 살면서 자식을 열심히 키웠다고 생각했다. 어제부터 하늘로 치솟는 수치심과 실망감에 기분이 엉망이다.
내 마음에 화를 알아채고 극복하고 싶다. 쉽지가 않다.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실망스러움을 정말 극복하고 싶다. 잘 안된다. 아이의 도벽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이 문제를 남편에게 맡기고 싶다. 아이에게 누군가는 문제 제기를 하고 문제 근본 문제를 알아내서 아이를 도와주는 게 바른 방법이다.
나는 지금 아이와 대화하기가 두렵다. 시간이 지나면 나의 마음의 상처가 아물기를 바랄 뿐이다.
어제 한국 엄마들과 상담을 하며 나온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다음과 같다.
아이방 서랍에 있는 200 세켈짜리 지폐 대신에 나의 노트를 넣어둔다.
노트의 내용은 '네가 엄마 지갑에서 빌려간 400 세켈 중에서 200 세켈을 내가 가져간다. 200 세켈은 언제든 지 될 때 엄마에게 돌려줘'
Shani, the 200 shekels from the 400 shekels you borrowed from my wallet this week will be kept by me. You can pay back the remaining 200 shekels whenever it's possible for you.
나는 이 방법이 아주 노련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실행하려고 했는데, 아이 방에 어제 오후에 들어가 보니 벌써 돈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아이와 대치중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에게 남의 돈에 손대는 것은 너무 어리석고 멍청한 짓이라는 걸 아이가 깨닫게 하고 싶다.
다음 주 금요일부터 나는 혼자 유럽 여행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 오는 친구들과 함께 2주 유럽을 여행하고, 그곳에서 바로 한국으로 들어간다. 결국 아이를 두 달 반 동안 보지 않게 된다.
아이는 내가 없으면 눈치 주고 간섭하는 엄마 없이 아빠와 함께 통자유를 만끽하며 지금보다 더 활개를 떨치며 살 것이다. 어쩜 더 행복하게 느낄 수도 있다.
나는 아직도 자꾸 눈에 거슬리는 아이를 보지 않게 되니까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 나도 딸아이로부터 해방되어 이 아이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 벌써 만 18살이 되는 아이를 사사건건 간섭할 힘도 없다. 엄마의 입장과 딸의 입장은 하늘과 땅처럼 우리나라 태백산맥만큼 길고도 멀다.
이제 18년 된 모녀의 끈을 느슨하게 놓아야 한다. 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지난 양육 방식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을 수도 있다. 이제 어른의 세계로 들어서는 아이를 더 이상 잡을 수가 없다.
잘하든 못하는 이제 딸의 인생이다. 그냥 내버려 두겠다.
'언젠가 아이도 결혼을 해서 자기 같은 딸을 낳으면 현재의 나의 마음을 이해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