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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신 어머니의 고집

어찌하오리까?

by Kevin Haim Lee

아침에 일어나고 나니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잠깐 밖에 나가셨거니 하고 미리 커피 한잔을 타 놓고 엄마를 기다리는데 30분이 지나도 들어오시지를 않으신다.


"엄마, 왜 안 들어오셔?"

올케에게 물었다.

"어머님 은행에 가신 것 같아요!"

What!!!!

이 더위에!!!


우리 엄마는 허리 수술도 받으셨고 걷는 것이 불편하셔서 지팡이를 잡고서 일상생활을 하신다.


며칠 전에 새마을금고에 넣어 놓으신 적금이 만기가 되었다고 언뜻 말씀을 하셨는데, 아무래도 그 돈을 해결하러 가신 모양이다.


'나도 있고, 언니도 있고, 올케도 있는데, 엄마는 왜 그 먼 길을 혼자 가시고 싶으셨을까?'


가까이서 살면서 자주 챙겨드릴 수 없는 입장인 나로서는 엄마의 숨겨진 자금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물어볼 수가 없다.


한국에 올 때면 오자마자 내가 얼마간의 용돈을 엄마에게 드리고, 엄마는 나 사고 싶은 거 사라며 내게 현금을 주시기도 하고 카드도 주시기도 하면서 나에게서 받은 돈의 몇 배의 돈을 쥐어 주신다.


엄마는 86세의 나이신데도 젊어셨을 때처럼 아직도 꼬박꼬박 예금을 할 수 있는 방도를 언제나 찾으신다.


통장이 하나도 아니고 두세 개 이신 것 같다. 은행을 가기가 벅차시니 올케한테 은행 심부름을 시키시고 통장은 엄마의 장롱 속 깊은 곳에 소중하게 모셔져 있다.


엄마는 꼬박꼬박 엄마의 통장에 들어오는 월세와 연금을 엄마만의 방식으로 이리저리 옮기시며 불어나는 통장 속의 돈을 보면서 지금도 삶에 활기를 느끼시는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만 나이 드신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은행을 왔다 갔다 하시다가 넘어지시기라도 하시면 그땐 어쩌란 말인가!


커피를 다 마시고 나니, 엄마가 땀을 뚝뚝 흘리시면서 마루로 올라오신다.


"엄마! 어디 갔다 오셔?"

날카롭게 질러댔다.

"엄마, 지금 혼자 은행 갔다 왔지?

"어... 내가.."

엄마는 아이가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사람처럼 우물쭈물하신다.


"엄마! 제발 좀! 그러지 좀 마셔! 그 먼데를 왜 혼자 가셔!!"


엄마는 더위와 허리 고통으로 이미 잘 들으시지도 못하시는 것 같다.


나는 과일을 깎아 드리고, 선풍기를 고정시켜 드리고 가만히 옆에 앉아서 엄마에게 변명할 시간을 드렸다.


"통장이 같은 주소로 두 개라, 걸리면 안 될까 봐 내가 오늘 먼저 갔지!"


엄마는 엄마대로 엄마 나름의 생각이 있으셨다.


엄마에게 그런 것 없다고 설명해 드리고 이번이 은행에 혼자 가시는 마지막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날 저녁 엄마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을 때 마음에 담아 뒀던 말을 털어놓았다.


"엄마! 돈 모을 생각하지 마시고,

엄마 쓰고 싶은데 다 쓰셔!

우리 다들 먹고사는데

엄마한테 돈이 있으면

우리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싸움 나! 그리고 우리

세금 내야 해!"


내 진심이다. 엄마가 젊었을 때 고생을 많이 하셨으니까, 지금 삶의 노을기에는 쓰시는 재미를 느끼며 사시기를 바란다.


떠나시고 난 후에 남겨 주실 생각을 하지 마시고 살아생전에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푹푹 용돈을 노나 주셨으면 좋겠다.


엄마는, 오늘 저녁 마루에서 나와 함께 '한일톱텐쇼'를 보시면서 열심히 구성진 가락의 트로트를 따라 부르시고 계신다.


음정도 가사도 하나 맞지 않다. 그래도 꾀꼬리 같이 맑은 목소리로 엄마 나름의 명곡을 만드신다.


엄마의 논리와 고집은 엄마의 인생이다. 자금까지 살아오신 세월 속에서 당신이 만드신 욕심이며 신념이다.


잠이 들기 전에 말씀하시는 엄마의 통장 계획을 들으면서 "어", "어"하며 대충 대꾸를 해드린다.


이만큼은 누구를 주고, 저만큼은 누구를 주고, 깐깐하게 말씀하시는 엄마의 계획은 확실하고 젊은이 못지않게 공평하시다.


나는 이제 자신감 있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엄마에게 부정적인 딴지를 걸고 싶지 않다.


왜 그렇게 안 쓰고 모으시냐고 물어보면, 너희들 나중에 똑같이 나눠주려고 그러신단다.


"그래. 엄마 돈이니까 엄마 하고 싶은데로 하셔!"


그런데 우리 이건 하자.


"엄마 나중에 기억력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엄마 통장이 어디에 몇개가 있는 지 우리 좀 적어 놓자!"


난 곧 이스라엘에 돌아가면 엄마의 일상 생활을 돌봐 드릴 수가 없다. 이렇게 엄마와 누워 비밀 얘기를 나눌 수 도 없을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외손자와 외손녀의 만행을 늘어 놓으며 이젠 난 육아의 지옥에서 벗어나서 즐겁다고 잠결에 말씀드렸다.


난 이제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하고 살 수 있어서 좋은데, 엄마의 인생을 나의 자로 '그거 아니야' 하고 고치려고 하고 싶지 않다. 엄마는 엄마식대로 사셔야한다.


엄마! 그냥 당당하게 셈 잘 맞추어 가시면서 지금처럼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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