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치과는 지옥의 문이다!
살살 아프기 시작한 오른쪽 이빨.
한국에서 질긴 해물 요리를 계속 먹으면서 이빨에 걸린 음식 조각을 이쑤시개로 열심히 쑤셨던 참이라 아프겠거니 생각했다. 딱딱한 음식 먹기를 좀 쉬면 나아지리라...
밤새 끙끙거리다가 결국 어제 아침 한국 치과를 방문하였다.
이스라엘 치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넓은 공간, 상냥한 간호사들, 일단 영문 진단서가 가능한 지 확인하고 접수를 하였다.
30분쯤 대기를 하다 진료실에 들어가 치아 사진을 찍고, 더 자세히 보기 위하여 CT까지 찍었다.
사진을 본 후 의사는 오른쪽 치아에 염증이 너무 심하니, 치아 2개를 발취해야 한다고 말을 한다.
한국에 남은 시간은 20일, 순간 망설여진다.
이스라엘에서 치과를 예약하고 진료를 받고 치료를 진행하는 절차는 말로 치자면 '지옥의 문'이다.
국가 보험으로 지정되는 치과 의사는 실력을 믿을 수가 없고, 잘한다는 소문난 치과 의사는 예약이 일 년이 모두 다 차 있어서 VIP 코스로 보험 없이 자비로 치료를 받아야 하고, 그 금액은 한국보다 두세 배는 더 비싸다.
어제부터 아무것도 씹지 못해서 맛있는 옥수수도 못 먹고 왼쪽으로만 살살 씹어서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단 이스라엘에 돌아가기 전에 아직도 먹을 것이 많고 만날 친구들이 많은데 치통으로 그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10분가량 고심하다가 뽑자고 결론을 내렸다.
일단 한국에서 깔끔하게 뽑고, 이스라엘에 가서 임플란트를 하자.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지만, 이 방법이 최우선인 것 같았다.
치아를 두 개 빼고, 올리브 영에 들러 이것저것 쇼핑을 하다가 엄마 집에 돌아오니 집안이 난리가 났다.
9시 30분에 치과에 잠깐 갔다 온다던 아이가 12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으니 엄마가 애가 타신 모양이다. 나에게 연락이 되지 않으니까, 내 친구에게 카톡을 하셨고, 마침 나는 그 친구에게 이빨을 뽑는다고 연락을 한 상태였고, 그 친구가 엄마에게 내가 치아를 뽑고 있는 중이라고 알려 드렸던 것이다.
인천에 살고 있는 언니까지 호출 호령을 내리셨다.
"애가 이빨을 갑자기 뽑는 다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
엄마의 등쌀에 언니와 올케, 엄마가 나를 잡으러 동네 치과를 뒤질 찰나에 내가 태연히 오른쪽 볼에는 아이스 박스를 가볍게 누르고 다른 손에는 팥빵 가방을 들고 여유롭게 집에 들어섰다.
"야! 너 어떻게 된 거야? 몬 이빨을 뽑아! 갑자기!"
언니가 등짝에 한 대 스매싱을 날린다.
난 집안의 초상 분위기에 기겁을 했다.
전화 한 통 없이 갑자기 치아 두 개를 뽑고 천역 덕스럽게 돌아오는 나를 그들은 이해할 수가 없단다.
다른 치과에 가서 한번 더 확인하고 치아를 뽑던지 하지 첫 번째 간 치과에서 덜컥 치아를 뽑는 게 세상에 어디 있냐며 야단을 치신다.
이빨은 벌써 두 개가 사라지고 5일 치 약을 받아 왔다. 순식간에 사라진 나의 이빨 두 개는 이제 다시 심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괜찮아!라고 거듭 엄마에게 말은 했지만, 혹시 내가 지상 최대의 최악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살짝 가슴속에서 후회가 올라온다.
난 별로 내 일을 결정할 때 남과 상의를 하지 않는 성격이다.
결혼 전에도 그랬고, 결혼 후에는 더 많이 모든 결정을 내 의지대로 해왔다.
이스라엘에서 치과를 갔다고 해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발취의 결정은 내 단독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내 이빨이고, 내 치통이니까, '
'한국은 친구들과 가족들과 의논하고, 모르는 것은 물어가면서 함께 결정하는 문화가 아직도 있구나!'
남을 간섭하기도 싫다. 나도 간섭받기 싫다.
가족이 남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인생만큼은 오롯이 내가 결정하고 끝까지 책임지고 싶다.
결국 이제 난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이스라엘에서 사는 것에 더 길들여져 있는 것 같다.
20일이 지나면 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이스라엘 사람으로 다시 살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죽어 장례를 치르는 방식도 한국과 이스라엘은 천지 차이이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들이 한국의 장례 문화에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다.
이스라엘 신랑에게 멋진 치과 내부와 뽑힌 치아 2개 사진을 보냈다.
'이제 안 아프면 된다고, 잘했단다'
난 이스라엘에 돌아가자마자 치과에 정신과에 벌써부터 주르륵 예약이 잡혀 있다.
덜컹 혼자 지내온 두 달이 온전히 자유스러웠다.
딸아이와 소찬 한 일로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싸우지 않아서도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그립다. 이스라엘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지만 그곳이 그래도 이제 내가 살아야 할 곳이란 생각이 부쩍 든다.
그곳에는 내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그들의 관습이 있다. 이제 난 그곳의 관습에 길들여져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