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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일생- 인생의 의미는?

내가 이스라엘에 사는 이유

by Kevin Haim Lee
이스라엘 전쟁 중에 찾아낸 책들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중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나의 친구들은 모두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할 예정이었다. 나도 친구들과 같은 종류의 고등학교에 가게 되는 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학부모 진학 상담을 하시고 갑자기 나에게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상업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어느 지방의 조그만 중소기업의 공장장이셨다. 공장이 지방인 관계로 금요일 저녁에 집에 오셨다가 월요일 아침 다시 양산으로 출근을 하셨다. 아버지의 어깨에는 우리 3남매와 두 부모님이 무겁게 얹혀 있었다.


3형제 중 둘째였던 나는 조그맣고 활달한 아이였다. 그러나 중3 때에는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라는 미래에 대한 인생 계획이 전혀 없던 무지막지 순진한 아이였다.


아버지가 상업학교를 가야 한다고 해서 "네"라고 바로 대답하고, 제일 좋다는 서울여상을 목표로 학력고사 준비를 하였다.


반에서 10등 정도 하던 성적이었기에 담임 선생님은 그리 큰 희망을 가지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난 뺑뺑이를 돌려서 고등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는 달리 성적으로 상업 학교에 합격해야 한다는 차이가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우리 집은 가난하구나'

비로소 내 일상의 가난함에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조그만 방 두 칸에 나뉘어 생활을 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한 방. 그리고 우리 가족 방. 아버지가 오시면 5명이 같이 자고, 평일에는 4명이 같이 자고.


학원이라면 친척 언니가 출근하는 주산학원에 두세 달 다닌 적이 있을 뿐 어느 곳에도 다닐 수가 없었다.


너무너무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싶고, 걸스카우트에도 다니고 싶었지만 철이 일찍 들었는지 가슴속 깊은 곳에 묻고 말도 꺼내지 않았었다.


난 홀로 외롭게 고입 학력고사를 준비하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같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난 왜 살아야 하는 거니?'

'난 왜 여기 태어났지?'

'난 왜 다르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많은 의문들이 잠잠했던 나를 일깨웠다. 그래도 공부는 아주 열심히 했다.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목표가 있다는 것과 별로 다른 것에 신경 쓸 반항의 유혹들이 없었다.


학력고사를 치르고, 난 바로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언급되었던 문학 서적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 읽었던 '여자의 일생'은 나를 소녀에서 여자로 눈을 뜨게 한 내 인생의 책이다.


1883년 기 드 모파상이 발표한 장편소설. 순진하고 착하게 성장한 여주인공 잔느의 비극적인 고통스러운 일생을 담은 글이다.


난 불행의 연속인 잔느의 인생에 놀랐고, 수동적이고 회의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우유부단하게 받아들이는 잔느가 싫었다.


이때, '난 어떻게 살까'에 대해 깊고 끝없이 고민했다.


'난 절대로 잔느처럼 무력하게 살지 않을 거야! 결혼도 안 할 거야! 다른 여자들처럼 살지 않고 다르게 살 거야'


막연하게 나의 미래에 대한 차별화를 고민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나의 여자 인생에 대한 고심 속에는 한국에서는 살 수 없다는 문화의 보수성과 여성에 대한 남성 차별의 벽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난 지금 여자도 18살이 되면 군대를 가야 하는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


한국에 비하면 성차별이 전반적으로 높지 않다. 그래서 이곳에서 사는 게 가끔은 속이 시원하다.


가끔씩 '난 어디에서 죽어야 하나?' 문득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태어난 곳과 사는 곳, 그리고 죽는 곳은 여자의 일생에서 정해진 무슨 룰이 있을까?'


난 죽을 수 있는 곳이 두 곳이 있다.

한국? 아님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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