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체력 검사

by 정수TV

초등학교 고학년(5,6학년)이 되면 1년에 한 번 학생체력검사를 받게 된다. 영어로 표현하면 팝스(PAPS)라고 하여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에 아이들은 생소한 듯 행동하지만 실제 검사를 하기 시작하고부터는 눈에 불을 켜고 뭐든 잘하려고 한다.

그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반환점을 돌아오는 셔틀런이라 불리는 것이다. 예전에는 오래달리기를 했는데 가끔 안전사고가 생겨 짧은 거리를 여러 번 돌아오는 셔틀런 방식으로 바뀐 듯싶다. 문제는 과체중의 아이들이 이걸 참 어려워한다. 달리기도 어려운데 정해진 시간에 맞춰 계속 같은 장소를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몸에 부담이 되는 듯싶다. 그래서 1학기에 한번 측정하고 2학기에 정식으로 측정하게 하여 그 사이에 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모아 한 달 정도 기초체력 훈련도 받게 된다.

1학기에 기초체력 저하에 걸린 남학생이 있었다. 한 달 만에 기초체력 훈련을 받고 나아질 거란 기대는 애당초 하지 않았다. 그런데 2학기에 정식으로 측정을 하는데 셔틀런을 20번 정도 왕복하고서는 포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보통 100번은 해야 그래도 체력이 있다고 하는데 여학생도 보통 60번은 하는데 문제의 남학생은 20번 정말로 문제가 있어 보였다.

"야! 너 이리로 와봐라" 나는 살짝 화가 나있었다.

"예?"

"너 이거 뭐야?"

"발가락이 아파서요. 내향성 발톱이라고 합니다."

"내향성 발톱?" 사실 생소했다. 나는 이 아이가 이미 1학기 때 보여준 모습과 오늘 보인 모습에 불신이 있었기에 곱게 들리지 않았다.

"야! 누구는 발가락 안 아픈 아이 있어?"

"전들 아프고 싶어 그래요?" 이제는 반항까지 하였다. 정말로 발가락에 문제가 있는지 수업이 끝나고 사무실로 데려가 확인해 봐야 했다.

"너 수업 끝나고 잠깐 남아봐 확인 좀 해보자." 나는 당연히 운동하기 싫어 별 이상한 이유를 대는 것으로 확신했다.

사무실로 데려가는 사이 나는 이 아이에게 심한 말을 했다.

"야! 너 같은 놈이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수 있겠어! 다른 나라가 쳐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야? 이래 가지고 맞서 싸울 수 있겠어?" 갑자기 애국자가 된 듯 나는 신들린 듯 떠들어 댔다.

"죄송합니다." 아이는 본인의 잘못을 시인했지만 나는 그 문제의 발톱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넘길 수 없는 일이었고 당연히 발에는 이상이 없고 그 후 어떻게 할까를 생각했다. 건강한 발을 확인 후 정신 차리라고 등짝이라도 한 대 때려야 속이 시원할 듯싶었다.

그렇게 사무실에 도착하여 양말을 벗으라고 했더니 양말을 벗기도 전에 양말 끝에 약간의 물기 같은 게 보였다.

'어! 이게 뭐지? 웬 물이지!'

양말을 벗어보니 정말 엄지발가락에 염증이 심하게 나고 고름 같은 게 차 보였다.

"야! 이게 뭐야?"

"예, 병원에 가야 하는데 부모님께서 바쁘셔서 못 갔어요."

옆에 있던 다른 선생님도 관심이 있는지 힐끗 보고서 바쁘다고 못 간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당장 병원에 가서 살을 째고 발톱을 깎는 간단한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내향성 발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아까 전까지 잘 뛰지 못한다고 그렇게 화내며 뭐라 하고, 전쟁 나면 어떻게 할 거냐, 대한민국은 누가 이끌 거냐 등 별의별 얘기를 다했는데 그 아이의 발을 보니 충격 그 자체였다. 얼른 구급함을 열어 소독과 약을 발라주고 큰 밴드를 붙여주어 치료를 해주고 꼭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아이는 흡족한 듯 일어서서 돌아서는데 그래도 내가 내뱉은 말들이 있어 아까는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사실 나는 무지외반증이라고 발가락이 안쪽으로 휘는 병(?)이 있다. 어머니께서 그게 심하신데 나는 한쪽 엄지발가락만 그렇다. 군대 신병시절 40KM 행군을 마치고 와보니 발톱이 3개나 빠졌고 또 군대 축구하다 군화에 밟혀 엄지발톱이 빠진 적도 있다. 그 시절 생각만 해도 아픈 거 같다. 이번에 이 아이의 발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나서 내가 다 아픈 거 같았다.

내향성 발톱은 살아생전 처음 보는 거 같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무지했나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가 살아오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었기에 모두 알 것이라 생각 들었다. 하지만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병을 앓는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닫지 못했다. 요즘 가르치는 아이들과 나는 서로 겉돈다. 하루 종일 잔소리만 하다 오는 거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어쩌면 이번 일처럼 오히려 내가 이 아이들을 모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힘든 가정 사정, 개인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 지도가 오히려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 개인적인 사정을 일일이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끔 아이들의 개인 사정을 은근슬쩍 들을 때가 있는데 듣고 나면 이 아이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된다. 그전까지는 매일 싸워야 할 수밖에 없는 듯싶다.

이번 편은 "호구라도 괜찮아"란 주제로 글을 써봤다. 요즘은 문뜩 이런 생각이 든다. 유튜브를 보다가 나와 같은 직종의 여자 선생님께서 큰 병에 걸리셔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인데 집에 있는 아이에게 본인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일부러 학교에 근무하는 모습이 보였다. 손톱이 모두 빠져 열 손가락에 흰색 반창고를 붙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아파왔다. 그때는 그 영상 속 선생님께서 왜 몸이 불편하신데도 더 힘들게 일을 하실까? 차라리 편하게 집에서 쉬시지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지금 말 안 듣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심정은 그때 그 선생님처럼 나의 아이들이 나를 보고 배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라기 때문이다. 내가 나태하고 기분 나쁘다고 일을 안 한다면 아이들도 커서 분명 나를 따라 할 것이다. '호구라도 괜찮아' 정말 지금 나의 심정을 딱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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