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호에 지옥과 같은 징계위원회를 뒤로하고 그때 주고받았던 말들에 깊은 마음속 동요를 느껴며 지내는데 오늘 드디어 결과가 왔다. '불문 경고'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보니 다행스럽게도 나에게 크게 변고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세히 살펴보니 금품 및 향응 수수, 성비위, 음주운전 등으로 불문경고를 받으면 5년 이내 승진에 문제 있을 수 있으나 그 외 비위로는 승진에 직접적인 제한이 없다고 한다. 나는 다행인지 그 외 비위에 속했다. 승진이란 게 지금 당장 하는 게 아니더라도 뭔가 나에게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불문 경고를 받아 이것 또한 문제가 생긴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상황을 악화시켰을까? 스스로에게 되묻고 싶다. 세상이 변한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거 같다. 예전의 교육방식으로 아이들을 대하니 문제가 일어난 듯싶다. 어느 누구도 예전의 방식을 원하지 않는다. 문제는 내가 지금의 교육 방식대로 배운 바 없기에 잘 모르겠다는 게 정답이 아닐까 싶다. 그냥 한발 물러서 있는 게 상책인 거 같다. 잘 모르는데 괜히 나섰다가 또 경찰조사, 시청조사, 법원판결, 아동학대 상담 6개월, 교육청 징계위원회 참석 등 5가지의 가시밭길을 걷게 될 것이다. 게다가 나에게 법원에선 피의자, 교육청에선 혐의자라고 출석요구서에 표시한다. 정말 죄 많은 인간이라 느껴진다.
이렇게 글을 쓰고 하루가 지나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본질 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들판의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 발에 차이는 작은 돌멩이 하나 모두 의미가 있다고 배웠는데 인간으로 태어난 나는 과연 무슨 의미일까? 한번 돌아보게 된다. 작년에 선생님들과 배드민턴 연수를 통해 만났던 분들을 올해도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되었는데 왜 그렇게 반갑던지. 나에게 어떻게 지냈냐며 묻는데 차마 있었던 일을 얘기 못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였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에 잠긴다. 대학생 때 읽었던 심리학 책에 '인간은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데카르트가 얘기했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나에게 딱 맞는 말이다. 좋았던 좋지 않았던 나는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며칠이 지났는데 첫째가 대학교 편입을 위해 1년간 노력했던 결과를 듣게 되었다. 같이 공부한 아이는 좋은 대학에 좋은 과로 진학을 하게 되었는데 첫째는 어떻게 된 일인지 떨어졌다고 한다. 물론 다른 대학도 편입을 봤기에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데 첫 번째 대학에서 떨어지고 나니 그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게다가 같이 공부한 친구는 붙었을 때 그때 느끼는 감정을 나도 익히 아는 감정이었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이상하게 내가 잘못되었을 때는 몰랐는데 아이가 그것을 겪는 것을 보니 부모로서 마음이 더 아팠다. 저녁에 아이들과 장을 보러 같이 나갔는데 발랄한 다른 아이보다 첫째의 걸어가는 뒷모습이 왜그렇게 슬퍼보이는지. 게다가 먹거리 장을 보는데 자꾸 자리를 피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는 아빠로서 당연히 모른척 했다. 하지만, 슬픈 마음이 가슴으로 와 닿았다. 그렇게 잠도 오지 않는데 누워 어느새 자고 났더니 성공보다는 건강이 우선한다고 생각 든다. 좋은 대학에는 떨어져 마음은 아프지만, 건강을 잃지는 않았기에 그나마 다행으로 느껴진다. 예전에 내가 뭔가를 목표로 열심했다 떨어졌을 때 부모님께서 해주신 말씀도 이게 아닐까 싶다. 목표했던 바를 못 이룬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건강만 뒷받침된다면 다시 시도하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부모님께 들은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줄 날이 온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