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벌이고 있어 걱정스럽다. 강대국 러시아가 예전의 소련 시절 복속시켰던 우크라이나를 다시 얻기 위해 전면전을 벌이고 있어 상대적으로 약한 우크라이나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상황이다. 다행히 국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아 버티고는 있지만 시간만 벌어줄 뿐 전세를 뒤집기는 처음부터 어려워 보인다. 티비를 보니 이근 대위가 우크라이나를 도와 주로 떠났다. 사실은 나도 마음으로 응원하지만 행동으로 못 나서는 이유는 러시아의 눈치가 보이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같은 생각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똑같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께서 나와 외부강사 섭외 문제로 갈등을 비져왔다. 사실 작년 초 우리 반 아이들과 새로 맡은 청소구역을 확인하러 갔다가 어느 방과후 교실이 엄청 더러운 것을 보고 아이들과 열심히 한 달 정도 치운 기억이 있다. 그 교실을 쓴 외부강사를 이번에 또 그 선생님께서 계약을 한 것이다. 어차피 내 일이 아니니 내가 뭐라 할 말을 없었지만 문제의 외부강사를 만난다면 정말 크게 한마디하고 싶었다. 그런데 올해 내가 맡은 업무에 외부강사를 섭외해야 하는데 하필 작년의 문제의 그 외부강사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은 참 잘짜여진 각본과 같이 아이러니하다. 나는 올해 내가 관리하는 장소에 그분이 또 엉망으로 만든 것을 보고 그분에게 연락하여 바로 와서 치워 줄 것을 요구했다. 치우고 나서 나와 믹스커피를 마시며 왜 그렇게 치우지 않고 생활한 것에 대해 추궁을 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문제는 작년과 올해 그분을 계약한 선생님께서 나에게 자기 일이 침해당해서 기분 나빴는지 엄청 뭐라고 하고 나에게 인심 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나는 예의를 다해 얘기했고 차라리 내가 추진하는 업무를 닫으면 닫았지 그분은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쓸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 후 나는 며칠 동안을 괴로워하며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면서 나의 의견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그 선생님의 공격에 참기 힘든 마음속의 동요를 느끼고 있었다. 젊은 시절 부당하다 싶으면 젊은 패기에 참지 못하고 내뱉어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중년에 접어 드니 세상 물정이 밝아지고 직장 내에서 나의 위치와 행동 그리고 말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되도록 큰 피해가 없다면 내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게 좋다 라는 것도 조직사회에서 몸으로 체득하던 터였다. 이번의 일을 통해 사실 며칠 정도는 얼마나 화가 나고 괴로운지 눈을 감아도, 청소를 해도, TV를 봐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그 생각이 났고 무척 힘들었다. 그런데 그 괴로운 시간이 지나고 나니 한 가지 배움을 얻었다. 바로 '잃은 게 없을 때만 싸울 수 있다'였다. 내가 지금 직장 내에서 많은 동료들이 좋아해 주고 위로 아래로 존경받는데 굳이 사소한 문제로 그 선생님과 싸움이 난다면 나에 대한 이미지에 타격을 줄 것이란 생각에 한발 물러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야 나도 그 예의 없는 선생님께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지적해야 된다라고 강하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날 만은 시원할지 몰라도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이다. 나는 이미 직장 내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해주는 사람이니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다. 싸우지 않는 달콤함이 싸워서 생기는 잠깐의 시원함 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