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외부로부터 진실을 요구 받는다. 가족이라도 마찬가지다. "솔직하게 얘기해봐? 다 이해해 줄 테니." 혹시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나의 경험상 절대 솔직하게 얘기해서는 안된다. 솔직하게 얘기하는 순간 우리는 곧 후회될 일이 일어났던 기억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이 다가올 무렵 둘째 아이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며 엄청 나를 졸랐다. 물론 나도 어렸을 때 강아지를 마당에서 키워본 경험이 있기에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생명을 키우는 일은 항상 여러 가지 생각할게 많았다. 강영욱의 '나쁜 개는 없다'라는 TV 프로그램을 많이 시청해보니 산책도 자주 다녀야 했고 강아지도 사람처럼 이상한 행동을 하고 그것에 대해 적절히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유튜브 영상도 많이 봤다. 그래서 결론은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했고 끝내 팻 샾에서 고가의 강아지를 구입하게 되었다. 원래 유기견을 키우고 싶어 웹사이트를 검색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팻 샾을 더 원했다. 내가 어렸을 적엔 강아지가 모두 똥개라고 해서 어디서 새끼를 많이 낳아 키우기 부담되어 나에게까지 왔다. 그 당시 마당에서 강아지를 풀어놓고 키운 기억이 여럿 있다. 그래서 강아지는 사실 나도 좋아한다. 예전 사진을 보면 내가 키우던 '해피'라는 강아지를 안고 찍은 사진이 있다. 너무 똑똑하고 예뻤는데 마지막은 쥐약 먹은 쥐를 먹고 그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도 얼마나 따라 울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강아지를 팻 샾에서 분양받아 데려와 엄청 애지중지 키웠다. 요즘은 아파트에 생활하다 보니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더욱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나는 나중에 허리까지 아파왔다.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니 나의 고통쯤은 웃으며 잊을 수 있었다. 산책도 매일 다녔다. 퇴근하면 어느 날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강영욱이 매일 산책을 다녀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 아픈 몸을 이끌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했다. 그런데 그것도 정도껏이지 내 생활이 점점 강아지 케어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원래 방학이 되면 가족여행도 다 같이 가서 2박 3일 즐겁게 좋은 음식과 좋은 풍경, 좋은 숙소에서 잠자며 그간의 스트레스와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했는데 강아지를 키움으로 해서 그것마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코로나 상황으로 예전보다는 돌아다니는 기회가 적었지만 그래도 모든 가족이 어디를 떠나본 적이 없다. 누군가는 강아지를 케어하느라 집에 남아야 했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서 나는 최선을 다해 강아지를 돌보고 있었던 어느 날 집에 부모님이 오셨다.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니 나에게 강아지를 다른 곳에 보냈으면 하셨다. 아이들은 모두 반대하는데 나는 참 난감했다. 사실 부모님 말씀에도 일리가 있다. 강아지를 키우느라 내가 너무 고생이 많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예뻐해 줄 수는 있어도 배변처리나 산책은 모두 나의 몫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고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3일 정도 고민을 했는데 강아지를 다른 곳에 보내는 게 나를 위해 나은 선택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비난을 할지라도 내가 지금 죽겠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 후 아이들을 설득에 나섰다. 얼마나 아이들이 속상해하고 울고불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아니었다. 나는 사실대로 얘기했다.
"아빠가 너무 힘들다."
아이들은 본인들이 하겠다면 돌아가며 강아지를 케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이야 며칠 아이들이 산책도 다니고 케어도 하겠지만 어차피 개학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학교에 다녀야 했다. 그럼 또 강아지 케어는 자연스럽게 나의 몫이 될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나는 동기 후배들과 소통하는 밴드에 강아지 사진을 올리고 키우고 싶은 사람은 바로 연락 달라고 하니 정말 연락이 두 군데에서 왔다. 강아지가 아직 1살이니 누구나 키우고 싶어 했고 누구나 봐도 예쁜 게 생겼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키울 사람이 생겼다고 하니 그때부터 나에게 엄청 공격적으로 굴기 시작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아이들이 이해는 되면서도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아이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며칠 후 후배가 강아지를 데리러 왔다. 강아지 먹이며 생활용품을 박스에 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내가 비록 키우기 힘들어 보내는데도 눈물이 흘렀다. 집사람은 그날 저녁 강아지가 떠나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렇게 강아지는 떠났고 집은 한동한 적막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아이들이 나에게 엄청 뭐라고 하고 난리를 쳤다. 끝내 가족회의를 하게 되었다. "왜 강아지를 보내게 되었나?"라는 주제로 서로 날 선 비방이 오갔다. 문제는 내가 사실 강아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를 계속 물어왔다. 나는 키우기 힘들어 보냈다고 얘기했으나 좀체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았다. 처음에는 강아지를 보낸 것에 대한 비난에서 나에 대한 비난으로 주제가 바뀜을 느꼈고 "왜 아빠는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는가?"로 주제가 전환되었다. 나는 순간 이런 말을 했다. "진실은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그렇게 얘기하니 본인들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고 하고 솔직하게 말해 줄 것을 요구받았다. 그래서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한 내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몇 개 끄집어 내 얘기를 해줬고 가족회의를 마쳤다.
나도 그렇지만 사람은 그 마음속 깊은 곳의 이야기는 좀체 하기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의 이야기는 좋은 얘기가 있는 게 아니다. 나의 아픔의 근원이 있기에 남들에게 들키기 싫다. 그게 가족이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번에 강아지를 다른 곳에 보내는 문제로 나의 마음속 깊은 곳의 이야기를 꺼내 얘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속 깊은 진실은 그리 유쾌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 자체였다. 대학생 때 상담시간에 배운 바에 의하면 바로 '콤플렉스'라 하여 얽히고설킨 감정의 덩어리였다.
세월이 흘러도 콤플렉스는 그리 쉽게 변하는 게 아닌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