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슴이라도 괜찮아.

by 정수TV

어찌 보면 이번 건은 내가 나의 성격 중 어느 작은 부분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 듯싶다. 올해도 학교 선생님들과 전문적 학습공동체란 것을 만들어 열심히 운영하고 있었다. 연말 쯤되어가니 모든 계획했던 활동이 끝났고 이제 남은 예산만 잘 쓰면 되는 것이라 기분이 가벼웠다.

"선생님들 이번에 가을도 되었으니 산행 가시죠?"

매해 쓰고 남은 예산으로 산행도 가고 맛있는 음식도 먹는 참 좋은 모임이었다. 이 모든 일의 담당자인 나는 장소 선정, 산행 코스 답사, 예산 준비, 출장신청 등 열심히 준비했다. 학교에 근무하는 공무원이기에 정규수업이 모두 끝나고 퇴근시간 전에 나간다는 것은 기관장의 승인이 있어야 했다. 나는 복수 출장이라고 하여 내가 누군가를 싫어하여 복수하는 게 아니라 나를 포함한 여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출장을 결재받는 시스템을 부른다. 이번에도 복수 출장을 신청해 이미 허가가 나 있었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에 같이 모여 기분 좋게 산으로 출발할 일만 남아 책상 위를 정리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예" 모임 회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으신 선생님이었다.

"나 오늘 개인 사정으로 모임에 빠질지도 몰라요."

"예?"

"일이 있어 만약 내가 안 가도 찾지 말아요"

"아~~~, 예."

그렇게 전화를 끊고 깊은 고민에 잠겼다. 만약 이 선생님이 우리와 함께 산에 가지 않고 개인적인 볼 일을 보다 접촉 사고라고 날시 공무원 복무에 심히 중대한 잘못이 있고 게다가 이 모든 일을 계획한 나에게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 선생님을 찾아가서 말씀드렸다.

"선생님, 출장지에서 얼굴 한 번만 보여주세요. 안 그러면 다른 회원님들에게 말이 나와요."

나는 정말 고민 고민 끝에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대로 였다.

"아유~ 선생님은 참 새가슴이세요."

"예, 맞아요. 하하하" 그렇게 쓴웃음으로 넘겼지만 사실 나는 군대 시절 이와 관련된 아픈 기억이 생각난다.

입대하여 군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어느덧 병장을 달게 되었고 나보다 선배 병장들도 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군대는 분대장이라는 감투를 나에게 씌어줬다. 그렇게 분대장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저녁 점호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부대는 70~80명 정도였고 그날도 내가 모든 부대원의 인원 파악을 하고 보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빳빳하게 코팅된 B4 크기의 흰색 종이 위에 각 내무반별 인원과 근무상황, 휴가 인원, 기타 등등 한명라도 틀리면 부대원의 전체 숫자가 맞지 않았다. 나는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각 내무반을 돌며 현재 인원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속한 내무반에 나보다 선임이며 평소에 괜찮게 생각하여 친하게 지냈던 병장 하나가 나에게 부탁을 했다.

"조 병장, 나 점호시간에 정비실에서 작업 좀 하면 안 될까?"

"예?... 알겠습니다." 평소에도 야간작업이 있을 때가 있으니 별일 아니라고 생각 들었고 그 병장이 평소의 행실이 다른 일 할 사람이 아니기에 쉽게 좋다고 했다. 게다가 평소 정비실에 근무하는 그 병장이 뭔가 할 일이 남았나 보다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흰색 현황판에 "정비실 작업 : 1"이라고 적었다. 그렇게 점호시간이 되어 모든 부대원이 연병장에 모여 일직사령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나는 평소처럼 보고하고 있었는데 일직사령이었던 중사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야! 작업 1이 어디 있어?"

갑자기 분위기가 심각해지고 보고하는 나와 우리 부대원 전부 어리둥절하였다.

"예, OOO병장 정비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병장이 나에게 얘기한 것을 그대로 얘기했다. 하지만, 보고사실과 다르게 정비실에서 작업은 없었으며 그냥 빈둥대며 놀고 있다가 그 모습을 일직사령에게 점호 전에 발각되었던 것이다. 그랬는데 내가 점호 보고를 하니 일직사령의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 이후의 일은 참혹하여 차마 모두 이야기하기가 괴롭다. 나는 허위 보고로 완전 군장을 메고 연병장을 돌아야 했고 얼마나 돌았는지 처음에는 달이 눈과 직선으로 뜨더니 나중에는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었다. 몇 시간을 뛰었던가? 나는 내무반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나를 이렇게 만들어준 그 병장은 무릎이라고 꿇고 싶은 표정으로 잘못했다고 빌었고 나의 땀으로 젖은 옷과 군장은 내무반 원들이 정리해줬고 모든 부대원들의 위로를 뒤로 한채 아무 말 없이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침상에 누워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뭐라 말할 기운조차 없었다.

내가 그때 완전 군장을 메고 연병장을 뛰며 느꼈던 감정을 생각해 보자면 나와 친하다는 이유로 잘못을 눈감아 줘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언젠가는 그것이 드러나게 되고 나에게까지 피해를 준다는 점이었다.

이번에 그 선생님도 그때의 그 병장과 다를 바 없다. 본인이야 내가 준비한 복수 출장에 이름만 넣어 편하게 개인 볼 일 보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군 시절처럼 나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계획을 벗어난 개별적인 행동에는 문제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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