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지금이 12월 2일이니 이제 곧 한 달만 있으면 한국 나이로 50살이 된다. 50살... 누군가에는 삶의 분기점이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정리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나는 과연 둘 중 무엇일까? 생각 든다. 내가 왜 50살에 의미를 부여하는가는 바로 나의 부모님 때문이다. 할아버지께서 50살에 잘 다니던 좋은 직장을 그만두셨다. 삼촌과 고모들이 학생이었는데 이 모든 것을 첫째인 아버님과 어머니께서 책임져야 했다. 어머님은 이게 참 한이라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한참 벌 나이에 지방의 고급 공무원으로 좋은 직장을 그만 두신 바람에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형제들의 학비를 마련하시느라 엄청 고생하셨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아버님도 50살에 큰 병이 걸려 다음 해에 돌아가셨다. 아직 대학생이었던 나에겐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얼마 전 학교에서 근무하는데 옆 빈 교실에서 아이들이 장난으로 핫팩을 뜯어 뿌리는 장난을 쳤다. 얼마나 심하게 뿌렸던 지 깨끗했던 교실이 앞부터 뒤까지 모두 검은색 핫팩 가루로 얼룩졌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내가 그놈을 찾겠다고 혈안이 되어 "내가 이 놈을 찾으면 가루를 면상에 뿌려주겠어!"라며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말을 하며 학교를 돌아다녔다. 끝내 내가 얼마나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녔던지 겁에 질린 아이들 둘이 찾아와 자기가 그랬다며 실토를 했다. 나는 더 이상 이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희한한 것은 아이들이 사실대로 얘기하면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고 어떠한 잘못도 쉽게 넘어가는 성격이다.
오늘 아이들과 축구를 하는데 몇 명의 아이들이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들이 맞다며 나의 지도를 거부하고 마음대로 행동했다. 얼마나 화가 나던지 사무실로 데려와 한 대씩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말로써 타일렀다. 하지만, 좀체 내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말이 옳다고 하는데 더 이상 얘기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 정말 너무 화가 나고 마음이 아팠다. 뻔히 틀린 일이데도 끝까지 자기 말이 맞다며 나의 지도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빠지고 슬펐다. 그 고집 피우는 아이들 덕분에 더 이상 그 반은 체육수업을 하지 않고 스포츠 관련 영상으로 수업을 하기로 했다.
나이가 들어가니 주위에는 승진된 사람도 많은데 나는 도태되는 거 같고 매일 아이들과 이런 문제로 얼굴 붉히며 지내는 내 모습이 참 초라해지기도 한다. 나도 승진된 사람들처럼 윗자리에서 좋은 말로 이야기하고 싶은데 현실은 매일 화를 내고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지내고 있다. 너무도 슬프다. 하루는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만약 상황이 좋지 않다고 그만둔다면 나야 마음 편하게 할아버지처럼 인생을 사는데 나의 아이들을 서포트 못하고 내 인생도 새길을 찾지 못하면 저무는 수밖에 없다. 어느 날 집사람이 회식이 있어 아이들과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먹을 게 없어 근처 마트에 간 적이 있다. 삼겹살을 구워줄까? 생각하고 고기를 둘러보다 사장님이 "오늘 소고기 좋아요. 맛있어요!"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한우를 내 카트에 잔뜩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과 맛있게 소고기 파티를 하고 멍하니 쉬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내가 만약 내 기분 나쁘다고 직장을 그만 두면 아이들에게 오늘처럼 쉽게 소고기를 못 사줄 것이다. 아마도 돼지고기 정도로 만족할 수도 있고 그보다 못할 수도 있다.
아이들 나의 지도를 잘 따르지 않더라도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는 거 같다. 나는 나의 길이 있고 그 아이들은 아이들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길은 아마도 맛있는 소고기를 사는 길이 아닐까 싶다. 직장생활이 조금 그렇더라도 나의 조상님들처럼 그만두지 말고 정년까지 해서 나의 자녀들의 그 배우자들이 고통받는 일을 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