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자격이 있으신가요?"
이건 무슨 돼먹지 않은 질문인가? 싶지만 내가 올해 어느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에게 직접 들을 말이다. 아이들 피구 경기 중에 내가 봤을 때 아웃인데 끝까지 인이라고 우기는 아이에게 나무라고 했는데 그 옆에 있는 여학생의 태도가 이상해서 수업 후에 잠깐 얘기를 나누자고 했던 대뜸 한다는 말이 이 말이었다. 나는 놀라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체육 경기 중에 심판의 말을 듣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었나? 무조건 우긴다고 아웃이 인이 되지는 않는다. 나는 그렇게 배워왔고 그것을 실행할 뿐인데 요즘 아이들은 무조건 자기 의견이 맞다고 하니 기분이 상하고 게다가 이런 말까지 들으니 자괴감마저 들었다.
"뭐라고?" 나는 잠시 말을 못 하고 있다가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얘가 왜 이러지? 분명 괜찮은 아이였는데.' 마음을 추스르고
"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넌 분명 괜찮은 아이였다. 그건 알고 있지?"
"예"
"그런데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야?"
"..." 더 이상 말을 안 해 그 이유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에 아픔이 있는 듯싶었다. 정말 우연일까? 며칠 전 중학교 입학을 하게 된다고 하여 책상 위에 서류를 우연하게 봤는데 첫 장에 이 여학생의 자료가 눈에 띄었다. 보려고 본건 아닌데 가정 형편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좋은 아이인데 사정이 딱하게 생겼군' 이렇게 생각하고 지나간 일이 생각난다. 그런데 오래전 그 수업 후에 이 아이가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들을 상대하다 보면 별의별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오랫동안 생각나게 하는 아이도 있다. 이번일이 아마도 그게 아닐까 싶다. 학기 초 이 학생의 발표를 들으며 "참 발표 잘한다."라며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한마디로 우수한 아이였다. 그런데 수학여행을 가서 장소를 이동하려고 하는데 한 명이 보이지 않아 찾느라 애를 먹은 기억이 있다. 역시 이 아이였다. 졸업식을 하는데 축하공연으로 장기자랑을 했다. 그중 피아노를 잘 쳐서 1등으로 장기자랑을 하던 아이도 이 아이였다.
그렇게 좋은 아이가 나에게 이토록 뼈아픈 말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세상은 내가 한 말은 반드시 본인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나도 그것을 보아왔고 정말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내가 남에게 상처를 주면 본인도 상처를 받는다. 아마도 이 여학생은 이번 일로 본인도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가정에서 상처를 받았을 테고 그 상처를 남에게 갚았을 것이고 또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즉, 상처뿐인 여학생이었다.
차라리 둔감해서 상처를 받지 않은 여학생이라면 나에게 이렇게 심한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똑똑하고 상처받으니 남에게 이렇게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벼랑 끝에 서있지만 나는 도울 수 없었다. 어느 누구도 이런 말을 들은 이상 도움을 줄 수는 없다.
오늘 아침 집사람이 요즘 머리 숱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요즘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아서 그런가?"라며 웃어넘겼는데 가끔 거울 속의 나의 모습은 웃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소중한 머리숱 또한 현저하게 빠져나가고 있다고 예전부터 느끼고 있던 바였다. 나야 이제 저물어가는 태양인데 그 여학생이 떠오른다. 이제 새롭게 뜨는 태양이며 실력도 좋은데 오직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 여학생이 더 이상 상처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