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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윗 Mar 30. 2024

시베리아 산속에서 만난 천사

바이칼 호숫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말로예 갈라우스노예'라고 불리는 마을의 이름 속에도 작다는 뜻이 담겨있었습니다.


교회가 없었던 그 마을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우린 그 마을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마을  한가운데에 주민들의 생필품을 공급하는 작은 가게가 하나 있고 그곳에선 보드카를 음성적으로 만들어서 팔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마을에는 주정꾼이 많았습니다.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차로 한 시간 삼십 분은 족히 달려야 하는 거리에 있는 그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몇 개의 시골마을을 지나고 자작나무숲이 가득한 산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날은 일본제 중고 자동차를 구입한 날이었습니다.

그간 그 마을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있던 차에 다시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아직 갓난아이였던 아들은 엄마품에 안기고 어린 딸은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인적이나 차량의 통행이 드문 도로는 계속 내리는 눈으로 얼어 있었습니다.


오르막길이 끝나고 내리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차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밟은 브레이크로 인해 차는 한 바퀴를 돌아다 언덕에 아슬하게 걸렸습니다.


조심스레 내려보니 오른쪽 길 끝에 몸체가 잘려나간 작은 나무를 의지한 채 차가 걸려있었습니다.


시동은 걸려있었지만 차를 후진할 수도 없고 섣불리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리게 했습니다.


시베리아의 산속 바람은 차가왔습니다.


어둠이 일찍 찾아오는 겨울철이라 빨리 그곳을 빠져나갈 방도를 찾아야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겨울잠에 빠진 곰이 깨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멀리서 차가 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검은색 지프차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또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가 우리를 도울 사람인지, 혹은 해칠 사람인지 분간할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엷은 미소를 띠며 가벼운 목례를 하며 차에서 내린 남자는 위험스레 낭떠러지에 걸려있는 우리 차를 살피더니 자신의 차로 가서 로프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고는 우리 차의 뒤쪽 고리를 묶고 자신의 차 앞부분 고리에 연결하여 후진을 했습니다.


우리 차는 순식간에 도로로 올라왔습니다.


저는 오른쪽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을 쥐었습니다.

사례를 해야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로프를 차에서 풀어 둘둘 말던 남자는 제가 고맙다는 말도 채 하기도 전에 자신의 차에 올라타 손을 흔들며 떠났습니다.


그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우리 가족은 다시 조심스레 차를 몰고 '말로예 갈라우스노예' 마을로 향했습니다.


눈길을 헤치며 가는 길에 아내는 우리를 구해준 그 남자는 분명 러시아인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깊은 시베리아 산속에서 유럽사람 같기도 한 여행자가 있다는 것도 쉬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끝내 우리는 그가 천사였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도 그 엷은 미소를 띤 그의 얼굴을 어렴풋이 기억해 낼 수가 있습니다.


그가 진짜 천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날 우리 앞에 나타나서 우리를 구해준 그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시베리아의 천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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