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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윗 Mar 02. 2024

아프리카에서

일본의 신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그 후 국내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던 중 일본의 신학교에서 기별이 왔습니다.


교단의 감독께서 한 번 만났으면 하신다고 다음날 서울의 힐튼호텔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만난 감독은 도쿄에 있는 신학교의 신학생들을 케나로 옮겨 몇 년간을 선교훈련을 하는데 음악선생으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섬기던 교회를 어렵게 사임을 하고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던 형제들과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아프리카로 향했습니다.


케냐의 외곽 마을에 있는 작은 호텔을 통째로 빌려 도쿄의 신학교는 아프리카에서 선교훈련과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호텔의 강당에서 현지인들과 예배를 드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마사이 마을을 오가며 그들을 돌아보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저는 예배시간에 찬양을 드리는 사역을 했습니다.

간혹 일본 교단의 행사가 있는 때는 일본으로 날아가 찬양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마사이 마을에 학교를 짓고 병원을 세우고 이곳저곳 순회하는 사역을 모두가 어울려 감당을 했습니다.


함께 사역하는 일본인 목사님들과 신학생들은 언제나 침착하고 조용하고 순종적이었습니다.


신학생들과 함께 지방도시로 사역을 위해 떠날 때면 감독님은 우리  팀을 위해 전세비행기를 띄워주셨습니다.


선교지는 힘들고 낙후했지만 사역자들은 그곳에서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교단에선 호텔이나 식사나 교통편은 항상 최고로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인 여성 목사님 두 분이 마사이 마을에서 어린이들을 싣고 호텔로 오는 도로에서 갑자기 벌판을 가로지르는 소떼를 만나 급정거를 하다 사고가 났습니다.


그 사고로 차가 몇 번을 굴러 전복하는 바람에 운전을 하던 목사님과 두 명의 마사이 어린이가 사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참혹한 사고가 있었음에도 그 수습과정은 침착하고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선교캠프 베이스는 케냐의 나이로비에 있었지만 우리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복음을 나르는 사역을 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현지사역자들을 세워 교회를 세우고 현지인들의 가정들을 방문하고 그들을 만나 교제를 했습니다.


그러던 2001년 5월 7일에 나이로비에서 아들 다윗이 태어났습니다.


그날이 있기 전 3년 전 저는 어느 수요일에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 저희 집에서는 사고로 저의 아들이 천국으로 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다윗이었습니다.


그 일은 저의 인생에서 가장 슬픈 기억이 되었습니다.


그 아들 다윗이 저희 곁을 떠나고 그 후 우리는 아프리카로 가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떠났던 그날로 정확히 3년이 되었던 날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아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의 이름을 다시 다윗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는 저를 위로한 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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