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삼켜라

4부 용기 있는 삶을 살아가길 원하는 당신을 위한 4일간의 묵상여행

by 김다윗

크신 주님을 찬양한다.

이번 여행에서의 목표는 당신의 삶에서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용기는 시동 모터와 같아서 옳은 일을 향해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게 한다. 용기는 그 삶에 추진력이 된다. 옳은 줄 알고도 망설임으로 그 주변을 서성이게 될 때 용기는 비겁함을 쫓아내고 근본을 향해 돌진하는 힘이 된다.

이반 나흘간의 여행에서 당신은 용기를 끌어 모아야 한다. 옳은 줄 알면서도 살지 못했던 비겁함을 떨치고, 필요한 줄 알면서도 일어나지 못했던 게으름을 몰아내어 당신의 삶에 기름이 흐르게 해야 한다. 아까운 인생을 더 이상 허비함으로 당신을 기대하는 하나님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당신은 모세의 어머니였던 요게벳 여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용기로 똘똘 뭉쳤던 그 강철과도 여인에게서 당신은 참된 용기를 배우게 될 것이다. 용기 없는 삶이 얼마나 역사를 모독하는 것인지를 당신을 알게 될 것이다.

둘째 날에는 그리스도의 제자였던 사도 마태를 만나 그가 얻은 그 위대한 사명을 위해 그가 얼마나 몸부림쳤으며 그것을 마침내 이루기 위해 그가 얼마나 큰 용기를 내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귀신들린 딸을 가졌던 이방 여인이었던 한 어머니에게서 용기야 말로 사람을 살리는 가장 고귀한 에너지임을 그녀가 흘리는 눈물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날 만나는 세상의 한 스승에게서 용기 없는 지성이야 말로 굴러다니는 걸레 조각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하게 될 것이다.

당신을 참으로 사랑하는 저자로부터.


15일

역사를 삼켜라

-어머니는 여자보다 강하다.

이집트의 나일 강물이 끊임없이 역사를 실어 흐르고 흘러 보내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그 땅을 다스리고 있었을 때 하나님의 축복받은 야곱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성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그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번성함을 두려워했던 세상의 왕이 그들을 학대하기로 작정했으나 그럴수록 더욱 번창해지는 이스라엘 자손을 두려워하여 마침내 히브리 산파들을 위협하여 태어나는 사내아이들을 다 죽이게 했다. 하지만 파라오의 말보다 하나님을 두려워 한 산파들의 거룩한 행동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해지며 그로인해 산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이에 당황한 이집트의 파라오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후로 태어나는 아이들 가운데 여아(女兒)는 살리고 남자아이는 나일 강에 던지라고 명령한다.

험악한 시대에 태어난 너무나도 준수한 아이

요셉이 아이를 잘 갖지 못하던 어머니들을 통해 태어난 반면 모세는 아이를 잘 출산하는 어머니를 통해서 세상에 태어났다. 위로 형과 누나가 있는 가정의 셋째아이로 그는 이 세상을 출발했다.

하지만 그는 태어나서는 안 될 시대에 태어난 사내 아이였다.

아이를 출산한 어머니들이 태어난 아이가 여아이면 하늘을 향해 감사의 절을 올리고 남자아이를 낳으면 누웠던 방바닥을 치며 통곡했던 그 시절, 요게벳은 울음도 우렁찬 잘 생긴 사내아이를 낳아 안고 고통과 절망의 눈물을 삼켜야 했다.


용감하고 무모했던 믿음의 어머니

자신의 배를 가르고 낳은 아이가 예쁘지 않은 어머니가 있을까?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아이를 낳아 그의 준수함을 보았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자신이 낳아 첫 젖을 물리던 아이를 자신은 살겠다고 강물로 던지는 당시의 어머니들이 살고 있던 애굽 땅에서 모세를 낳아 안았던 요게벳은 그 아이가 너무 예뻐서 몰래 숨긴 것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서 시대의 사명을 보았기에 그에게서 특별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여기서 나는 모세의 부모였던 레위지파 부부에게서 그 시대의 보통의 부모들과는 다른 사명을 가슴에 안고 있는 거장들에게서만 있는 기름 부으심의 향내를 맡는다.

겁 없는 여인 요게벳은 하나님이 주신 아들을 몰래 숨겨 키운다. 이로써 그녀는 역사 속에서 숨 쉬었던 수많은 거장들의 어머니들처럼 자신의 평안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어머니로 기록된다.

용기를 우리가 ‘용기’라 부르는 것은 그것이 위험을 딛고 일어선 행동이기 때문이다. ‘고난’의 때에 필요한 것은 ‘거룩’이고 ‘위험’한 시절에 절실한 것은 ‘용기’이다. 거룩함은 고난의 때를 단축시키고 용기로운 행동은 위험의 불꽃을 끄는 빗물이 된다.


죽음의 강, 나일 강

당시에 태어난 사내아이들은 어머니의 가슴팍에서 그 어머니들의 눈물의 세례를 받으며 나일 강으로 던져졌다. 그 가벼운 육체가 가라앉고 뜨기를 몇 번을 거듭하면서 그들은 결국 죽음의 강을 넘어 하루살이처럼 이 땅을 떠났다. 그들은 헤롯의 칼에 죽어간 예수 시대의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처럼 그렇게 죽어갔다. 이름조차도 없는 순교자가 되어 밀알처럼 썩었다. 나일 강은 죽음을 삼키며 흐르는 시대의 어두운 강물이었다.


사탄은 아는가, 영웅의 탄생을.

역사는 되풀이 된다. 오랜 세월 동안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과 고통을 아셨던 하나님은 그 백성을 구원하시려 그의 종 모세를 보내시는데 이를 알아 차렸던 사탄은 그를 죽이려 이집트의 파라오를 충동질해 태어나는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도록 명령했다.

그 후 죄로 인해 죽음을 향해 치달리는 인류를 구원하시러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게 되는데 그 사실을 안 사탄은 헤롯을 그의 부하삼아 그 당시의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도록 했다.

하지만 영원한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 종 모세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넘실대는 나일 강의 이빨 속에서나 헤롯의 칼날에서 죽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았다.


지금도 세상은 아이들을 나일 강에 던지라 한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나일 강은 흐르고 그 강가의 궁전엔 파라오가 살아있다. 지금도 자신의 자리를 철옹성처럼 보호하고 자기의 권력을 튼튼히 하기 위해 사탄은 하나님의 아이들을 나일 강으로 던지라 한다.

21세기의 세상 역시 파라오의 시대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의 영을 더럽히고 그들의 육을 죽인 피로 세속사회의 밑거름이 되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큰 소리 치기도 하고 구슬리기도 하고 때때로 위협하기도 한다.

세속 사회와 정부는 하나님의 아이들에겐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영을 빼앗고 하나님의 젊은이들에겐 생존이라는 이유를 들어 세상의 올무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십대엔 대학 입시라는 명제를 들어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을 방해하며 이십대가 된 뒤에는 성공이라는 그럴싸한 타깃을 앞에 세워두어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에 큰 부담을 안게 한다.

그 결과 이 땅의 젊은이들은 고귀하고 높은 이상을 한때의 꿈 정도로만 생각하며 이론과 실제는 다르며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안 것으로 지난날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생존- 정확한 표현은 먹고사는 일을 위해서라면 이다- 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이해되고 용서받는다는 사실을 습득해 버린다.

그래서 그들의 삶에서 진리는 살아나지 못하고 그저 술자리에서만 안주 삼아 자주 등장하는 메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이다.

그들에겐 ‘진리’며 ‘진실’이며 ‘비전’과 ‘하나님 나라’등의 단어들은 말 그대로 꿈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슬픈 개념들이다.


갈대상자를 가져다가

자신의 아이를 나일 강에 던지고 돌아 온 어머니들도 자신들이 낳은 그 아이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잠시 일터에서 특별 휴가-파라오의 명령을 받들어 자신의 아이를 버리러 간다는데 허락하지 않을 감독이 있을 까-를 내어 집으로 돌아와 울 힘도 없이 맥을 놓고 앉아있는 자신의 아내대신 아이를 그 강에 던지고 돌아왔던 식민 시대의 히브리 남자들도 그 아이들의 생명을 만드신 분이 여호와이심을 모르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들이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고 애써 핑계하던 그 당시의 부모들은 유아들을 나일 강으로 던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깨어있던 한 어머니는 갈대상자를 생각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하고 소중한 아이를 그냥 그렇게는 버릴 수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가 그 갈대상자를 가져왔지만 그것은 그 당시 어디에도 늘려있던, 지금 같으면 휴지통만큼이나 흔한 것이었다. 그것은 금과 은으로 만든 귀중품도 아니고 부자들만 가질 수 있는 특별소비세가 붙는 상품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눈만 돌리면 구할 수 있는 흔한 박스였다.

하지만 갈대상자 그것만으로 아이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명을 구하는 일은 번쩍이는 아이디어나 새로운 방법의 시도가 아니라 그 생명을 지으신 자 앞에서 꿇는 무릎이며 그 조물주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의 경청이며 순종이다.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그 갈대상자의 약함을 알아 역청과 나무진을 발랐다. 역청과 나무진으로 무장되지 않은 갈대상자는 아이를 실어 나를 수 없다.

그 누가 뭐래도 갈대상자는 교회이고 역청과 나무진은 무릎 꿇는 기도이며 경청하며 순종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지만 쉬지 않는 기도와 순종되어지는 말씀이 아니면 그 교회는 세상 사람들을 다 담지 못한다.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구하며 양육하는 유일한 상자이다. 하지만 그곳에 선포되어지는 말씀과 순종, 세상과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이어지지 못하면 교회는 그냥 건물이 된다. 교회가 ‘만민의 기도하는 집-원래의 뜻은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집이다-’이 되지 못하면 나일강을 넘을 수 없다.

갓 태어난 아이는 갈대상자가 없이는 강에서 구원받을 수 없듯이 그 누구라도 자신을 담을 교회가 없으면 이 세상에서 구원받기가 어렵다. 그 교회에서 말씀으로 양육 받고 함께 두 손 모아 드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 중심으로 나아가 이 땅을 고치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아이는 바로의 궁을 향하고

백일을 앞둔 사내아이를 담기에는 그 갈대상자가 그리 안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상자의 안팎을 눈물로 기도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역청과 나무진을 발랐던 그 어머니의 갈대상자는 나일 강의 물결이 삼키지 못하고 그 강의 악어 떼가 헤치 못하고 유유히 흘러 바로의 궁으로 향한다.

위대한 어머니 요게벳은 그 연약한 갈대상자에 그의 아들을 실었지만 그녀는 뜨거운 눈물의 기도로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렸다. 많은 어머니들이 자신의 아들들을 그저 나일 강에 던졌지만 요게벳은 같은 강이라도 그녀는 그 아들을 하나님께 맡겼다.

많은 어머니들이 내던진 아이들은 죽음으로 향해 갔지만 갈대상자의 아이는 생명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를 발견한 것은 파라오의 공주였지만 그녀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아이를 보게 하신 분은 여호와이셨다. 그녀의 아버지는 백성들을 명하여 모든 사내아이들을 나일 강에 던지라 했지만 그 강을 따라 떠내려 오는 아이를 건져 올리게 하신 분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이셨다. 흐르고 흐르는 것이 역사이지만 그 역사의 주관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세상은 결국 하나님의 사람들을 알아보지만 그들을 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과 용기 있는 행동이다. 믿음 없는 용기는 만용이 되고 용기 없는 믿음은 결국은 사그라진다.

믿음의 어머니의 용기 있는 행동은 그 연약한 아들을 세상의 중심에 서게 했다.


삯을 받고 자신의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인

항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정하고 그 길을 따르면 하나님은 그 길을 여시고 복을 주신다. 요셉의 길을 통해서도 우린 그 사실을 확인했다. 물론 사람에 따라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때와 기한과 방법은 다르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시대든지 이 땅에 살아서 역사를 움직였다.

몇 시간전만해도 슬픈 가슴으로 아들을 나일 강에 띄웠던 갈대상자의 어머니는 파라오의 공주로부터 대가를 받고 자식을 양육하는 기 막히는 반전을 경험한다.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 주인이 어느 것을 사용하시던 그것은 그 주인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그 자신의 사람들을 위해 세상의 어느 것이든 그의 합당하신 뜻대로 움직이시고 사용하신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단 한 푼의 돈도 상속받지 못했지만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은 그를 위해 애굽의 창고를 여셨고 그의 손으로 온 세상을 살리셨다. 고아들의 아버지로 살았던 조지 뮬러는 그 자신은 가난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아이들을 돌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으므로 그는 평생 오만번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 그 기도 응답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이 살고 생명을 찾았다.


자신의 가슴으로 왕자를 키우는 식민지의 어머니

나일강의 희생이 되어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아들을 기적적으로 다시 찾아 젖을 물리며 어린 아들속에 깃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그 어린 아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의 아이로 양육하는 요게벳은 진정 위대한 어머니다. 전 이집트를 통틀어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여성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다.


이 세상의 어둠이 아무리 깊어도

1. 진리 되신 주님의 빛 앞에서 그것은 구멍 속에 갇힌 어둠이다.

세상의 부조리가 아무리 심해도 하나님의 사람을 넘어뜨리지는 못한다. 넘어뜨리는 것은 자기 자신 외에는 없다.

2. 교회만이 이 땅에서의 유일한 구원의 방편이 되지만 당신이 기도와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무용지물이다.

3. 역청과 나무진은 거듭거듭 발라야 한다. 바르는 만큼 그것은 견고해지며 바르는 만큼 그것은 안전해진다. 말씀과 기도는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당신에게 호흡처럼 지속적이고 습관처럼 익숙해져야 한다.

4. 당신이 결정하면 하나님은 움직이신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기로 결정하면 그후의 책임은 하나님의 것이다.

5. 파라오의 궁궐은 나일강을 지나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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